"딱지계약 무효"…2기 신도시 '소송 광풍'

입력 2020-07-13 17:04   수정 2020-07-14 02:18


경기 평택 고덕과 하남 위례, 수원 광교 등 2기 신도시에서 이주자택지 분양권(딱지)의 계약 무효와 관련한 소송 광풍이 불고 있다. 원주민으로부터 ‘딱지’를 사들인 매수인이 타깃이다. 전문 브로커(중개업자)와 변호사가 나서 원주민 몰래 소송을 제기하고, 소송 취하 명목으로 매수인에게 합의금 수억원을 뜯어내는 사례까지 나왔다.

13일 광교 고덕 위례 등 2기 신도시 주민들에 따르면 딱지 계약 무효를 노리는 브로커와 변호사들의 기획소송이 기승을 부리고 있다. 딱지는 신도시 등 택지를 개발할 때 원주민에게 보상하는 분양권이다. 이들은 원주민 대신 계약무효 소송을 매수인에게 제기한 뒤 합의금과 성공보수를 요구하고 있다. 일부 브로커는 부동산 중개업소에 제출된 서류를 법무법인에 넘겨 원주민 동의 없이 계약무효 소송을 진행했다. 원주민과 ‘대리소송 계약을 파기하면 택지 공급가의 30%를 위약금으로 지급하라’는 노예성 계약을 맺은 법무법인도 있다.

이 소송은 매수인이 매입한 딱지를 원주민에게 다시 돌려주라는 것이 주된 내용이다. 지난해 대법원이 ‘전매 딱지의 권리의무 승계 계약은 무효’라고 판결한 데 따른 후폭풍이다. 대법원은 2017년 10월에 이어 지난해 3월 그동안 관행적으로 인정된 딱지 전매 효력을 부정하는 판결을 내렸다. 고덕국제신도시는 이주자택지 1060개 필지 중 500여 개 필지에서 소송에 휘말린 것으로 알려졌다. 광교와 위례, 고양 향동 등 신도시에서도 관련 소송이 대여섯 건씩 제기됐다.

매수인들은 어쩔 수 없이 브로커와 변호사들에게 수억원의 합의금을 주고 있다. 지난해 대법원 판결 이후 계약무효 소송에서 매수인들이 줄줄이 패소하고 있기 때문이다. 지금까지 수원지방법원 평택지원에서 이뤄진 딱지 계약무효 소송 40여 건 중 전매가 한 차례만 이뤄진 3건을 제외하고는 전부 패소했다. 한 부동산 전문가는 “남양주 왕숙, 인천 계양 등 3기 신도시에서도 딱지 거래가 활발해 소송전이 이어질 가능성이 있다”고 지적했다.
평택 고덕 원주민 몰래 소송, 합의금 절반 요구…법조 브로커 기승
2기 신도시 휩쓰는 "딱지 계약 무효" 소송 광풍
2016년 경기 고덕국제신도시에서 이주자택지 분양권(딱지)을 매입한 이모씨는 지난달 ‘딱지’ 계약무효 소송을 당했다. 고발인은 이 땅의 원주민인 A씨. 이씨는 이 땅을 5억2000만원에 매입한 뒤 공사비 8억원을 들여 4층 상가주택을 지었다. 뒤늦게 황당한 고발장을 받은 그는 A씨에게 전화를 걸었다. 그러자 그는 “계약무효 소송을 제기한 적이 없다”고 했다. 알고 보니 딱지 계약 시 중개업소에 제출한 서류를 중개업자가 A씨 몰래 법무법인에 전달해 계약무효 소송을 건 것이었다. 이씨는 “살던 아파트를 팔고 퇴직금과 대출금까지 합쳐 마련한 땅과 건물인데 소유권을 잃거나 변호사가 요구한 합의금 1억원을 내야 할 처지”라고 호소했다.
계약 파기 시 위약금 ‘노예계약’
이 같은 기획 소송의 발단은 지난해 대법원 판결이다. 딱지는 신도시 등 택지를 개발할 때 원주민에게 보상하는 분양권이다. 보상 대상자 선정, 택지 추첨, 계약 순으로 이뤄진다. 이때 원주민은 택지를 추첨받고 계약금을 낸 뒤 딱지를 한 차례 팔 권한이 주어진다. 계약금을 내기 전 딱지를 전매하면 불법이다.

그동안 사법부는 이 같은 전매를 인정해왔다. 원주민과 매수인이 합의한 계약이고, LH(한국토지주택공사) 등 사업시행자의 사후 동의를 받았다는 이유에서다. 그러다 대법원이 지난해 사업시행자 동의를 거쳐도 전매 등 불법행위가 있으면 계약 무효로 판결했다.

대법원 판결 이후 고덕 위례 광교 등 2기 신도시에서 딱지 거래무효 소송이 빗발쳤다. 그 뒤에는 한 팀을 이룬 부동산 브로커와 변호사의 기획 소송이 있다. 부동산 중개업자인 브로커가 원주민 명단을 넘기면, 변호사는 원주민을 설득해 대리 소송을 한다. 이후 소송 취하를 명목으로 매수인에게 합의금을 요구한다. 필지 입지에 따라 합의금은 5000만~2억원 선인 것으로 알려졌다.

한국경제신문이 입수한 소송 위임계약서를 보면, 변호사들은 원주민에게 합의금의 50%를 성공 보수로 요구한다. 합의금 2억원을 받으면 1억원이 변호사 몫이다. 원주민이 매수인과 합의하려고 해도 쉽지 않다. 이들은 계약 파기 시 이주자택지 공급가액의 30%를 위약금으로 정했다. 원주민 심모씨는 “소송 절차가 번거로워 매수인과 합의하려고 했는데, 변호사가 ‘임의 합의 시 소송 비용과 성공 보수 요구 등 법적 대응을 하겠다’고 겁박했다”고 했다.

하지만 사실은 원주민이 변호사를 해임하고 소송을 취하하더라도 불이익은 없다. 소송위임계약서 자체가 위법 소지가 있어 원인 무효일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김은유 법무법인 강산 변호사는 “변호사 해임에 따른 위약금을 요구하는 행위는 변호사 윤리에 따라 변호사협회에서 징계받을 만한 사안”이라고 말했다.

브로커가 원주민 몰래 소송을 제기한 사례도 적지 않다. 최근 한 브로커는 원주민 김모씨(52) 동의 없이 딱지 계약무효 소송을 제기했다. 2018년 10월 김씨가 조성원가 소송 명목으로 낸 서류를 통해서다. 이 브로커는 현재 해당 법무법인의 사무장으로 일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수억원 들여 산 땅 잃게 생겨”
매수인들은 ‘울며 겨자 먹기 식’으로 변호인에게 합의금을 넘긴다. 대법원 판결에 따라 계약무효 소송에서 승소할 가능성이 없어서다. 계약무효 판결이 대법원에서까지 확정되면 소유권은 무효가 된다. 건물을 세워 세입자까지 받은 소유주와 이들에게 대출해 준 은행은 난감한 상황이다. 2016년 고덕국제신도시에서 딱지를 매입한 곽모씨는 “프리미엄을 3억원까지 붙여 딱지를 샀는데, 은행 대출이 안 나와 4년째 착공조차 못하고 있다”고 했다.

대법원의 소급 적용이 부당하다는 주장도 있다. 고덕 이주자택지는 2017년 10월 대법원 판결 전인 2016년 7월부터 명의변경이 가능했다. 매수인 상당수는 사업시행자인 LH 동의를 받아 합법적으로 권리의무승계를 받았다. 당시 추첨 전 전매 여부를 사업시행자인 LH도 모르고 있어 추첨 이후 이주자택지를 산 매수인은 억울하다는 주장이다. LH 관계자는 “보상 시점부터 공급 계약 때까지 명의 변경에 대한 유의 사항을 지속적으로 안내하고 있다”며 “딱지 전매는 신고 의무 대상이 아니어서 전전매 등 불법 행위에 대한 파악이 어렵다”고 했다.

평택=양길성 기자 vertigo@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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