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인의 기억 곱씹으면 그동안 몰랐던 '나'를 찾을 수 있죠"

입력 2020-07-14 17:53   수정 2020-07-15 00:25

“어린 시절 기억들은 성인이 된 눈으로 걸러진 기억이겠구나 생각했어요. 문득 어린아이 시점으로 돌아가 과거 나에 대한 타인의 기억들을 곱씹으며 그동안 몰랐던 자신의 존재를 깨닫는 이야기를 쓰고 싶었어요.”

소설가 손보미는 최근 출간한 두 번째 장편 《작은 동네》(문학과지성사)를 이렇게 소개했다. 지난 10일 서울 서교동 한 카페에서 만난 그는 “사람은 자신의 가치관뿐 아니라 같이 살았던 사람들이나 사회, 국가와 함께 구성된다”며 “주인공이 과거 엄마가 말한 기억들과 현재 아버지의 말을 통해 자기 기억의 실체를 알아가는 이야기”라고 덧붙였다.

젊은 작가상 대상, 김준성문학상, 대산문학상 등을 수상한 손보미는 첫 장편 《디어 랄프 로렌》 등을 통해 ‘한국 소설의 미학적 지형을 흔드는 신선함을 갖춘 작가’라는 평가를 받아 왔다.

새 소설은 1인칭 화자인 ‘나’의 현재와 내가 살았던 ‘작은 동네’에서의 과거를 오가며 전개된다. ‘나’는 아무도 말해주지 않았고 기억에서마저 지워진 과거 자기 존재를 세상을 떠난 엄마의 과거 서술 속 여러 기억을 바탕으로 퍼즐 맞추듯 하나씩 추리해 간다. 어린 시절 여러 에피소드에서 엄마는 계속해서 동네 사람들과 가족에 대한 거짓 이야기를 열 살배기 ‘나’에게 들려준다. “동네에 화재가 생겨 가족을 잃은 사람들이 슬픔을 극복하기 위해 개를 키운다고 말하는 장면을 비롯해 엄마가 들려주는 이야기 상당수는 자기 세계 안에 딸을 가두기 위함이었어요. 그 세계는 세상의 위험으로부터 벗어난 안전한 공간이죠.”

왜 가둬두려 했을까. 작가는 과거 간첩 누명을 쓰고 복역한 실제 납북 선원 이야기를 꺼냈다. 그는 납북 선원이 15년 만에 감옥에서 출소했지만 그 사이 간첩의 자식이라는 이유로 불이익을 받고 손가락질당한 선원의 아들이 결국 자살했다는 기사를 보고 큰 충격을 받았다고 한다.

“이 이야기를 글로 다뤄보고 싶었어요. 소설 속 엄마는 처음엔 포부와 꿈이 있던 여성이었지만 딸을 얻게 된 후 어떤 말할 수 없는 이유로 ‘딸을 보호해야 한다’는 걸 지상과제로 품은 채 세상과 울타리를 치고 살아가요. 어찌 보면 엄마의 삶은 납북 선원의 아들처럼 사회에 의해 결정된 거죠. 소설을 통해 나와 상관없을 것 같은 어떤 폭력적 힘이 한 사람의 삶에 영향을 미치고 결정지을 수 있다는 걸 강조하고 싶었어요.”

소설에는 ‘나’와 스스로 폐쇄된 삶을 선택해야 했던 엄마, 조용히 사라진 여배우, 자살한 여가수 등 네 명의 여성이 나온다. 이들을 통해 작가는 사회적으로 낙인찍힌 사람들을 바라보는 시선에 대해 고찰한다. “소설 속 마을 사람들의 여러 시선은 부정적으로 보이긴 하지만 한편으론 자연스러운 것 같아요. 뒤에서 수군거리다 결국 아무런 관심도 주지 않는 것, 지금 우리가 타인을 바라보는 시선과 같죠.”

소설에는 통상적으로 들어가는 ‘작가의 말’이 없다. 작가의 의도적 배제였다. “제가 원래 ‘작가의 말’을 구구절절하게 쓰는 편인데요. 이번 소설에서는 작가의 말을 쓰면 뭔가 작품을 한정시키는 느낌이 강해질 것 같았어요. 독자들이 자신만의 시각으로 작품의 의미를 찾아보는 재미를 느꼈으면 합니다.”

글=은정진/사진=김영우 기자 silver@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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