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의 추락·추격은 현재진행형…경제시스템이 차이 낳는다

입력 2020-07-20 09:00  

‘자력갱생’ ‘우리민족끼리’. 이 단어는 아마 북한으로 인해 우리가 굉장히 익숙한 말일 듯싶다. 자력갱생(自力更生)이란 말은 자신의 힘으로 생존을 추구한다는 뜻이다. 1960년대 북한이 자력으로 경제를 발전시키고 운영해가겠다는 정책기조로, 북한은 현재까지도 이 자력갱생을 최고지도자의 신년사에서 쓰고 있다. 우리민족끼리 역시 북한이 지금도 즐겨 쓰는 문구며, 북한의 선전용 웹 사이트의 이름이기도 하다.
급격한 추락과 추격을 경험한 국가들
이 ‘자력갱생’과 ‘우리(민족)끼리’라는 두 단어는 놀랍게도 1962년부터 1988년까지 26년간 미얀마의 ‘버마식 사회주의’의 국가적 모토(National motto)이기도 하다. 이 기간 미얀마는 최악의 경제적인 추락을 경험하게 된다. 한때 세계 최대의 쌀 수출국이자, 동남아시아 최고의 부유한 국가라는 타이틀을 지니고 있었던 미얀마는 결과적으로 세계의 최빈국이 되고 만다. 미얀마는 2012년이 돼서야 시장경제와 전면개방을 선언하고 본격적인 경제적 추격을 하고 있다. 미얀마는 시장경제체제 도입 이후 연평균 7~8%의 경제성장을 하고 있고, 필자가 미얀마를 처음 방문했던 2013년의 경제지표 및 최대 도시 양곤의 시내 모습과 6년이 지난 2019년 다시 방문한 미얀마의 경제 규모와 양곤 중심부의 도심 풍경은 놀랄 만큼 달라져 있었다.

오랜 전쟁 끝에 1975년 통일을 이룬 베트남은 아이러니하게도 종전 이후 10년 동안 철저한 경제적 추락을 경험하게 된다. 급진적인 사회주의 정책, 국유화, 화폐개혁이 주요한 원인이고 이로 인해 베트남의 생산성은 크게 악화된다. 전 분야의 생산성 저하는 1년 3모작의 광대하고 비옥한 토지를 보유한 베트남이 오히려 식량을 수입하게 되는 상황까지 이르게 했다. 이런 경제적 어려움과 사유재산의 부정은 베트남 내에서 약 100만 명의 사람들이 보트를 타고 베트남을 탈출하는 상황을 만들어내게 된다. 10년간의 추락 이후 대반전은 1986년 도이머이(Doi Moi: 쇄신, 혁신) 정책을 통해 경제를 시장경제체제로 전환하고 대외개방정책을 공식화함으로써 시작된다. 시장경제 도입과 개방정책을 시행한 지 30년 만에 베트남은 수많은 경쟁국가들을 추격했고, 이제 베트남을 방문하면 수도 하노이나 경제 중심도시 호찌민의 스카이라인은 서울과 크게 다르지 않음을 느낄 것이다.

캄보디아 역시 20세기에 철저한 추락과 극적인 추격을 경험한 국가다. 이념이 다르다고 자기 동족을 100만 명이나 학살한 끔찍한 사건인 ‘킬링필드’가 불과 40년 전에 일어났고, 크메르루주 집권기 시행한 중국 마오주의식의 사회주의 농업개혁은 개혁이라는 말이 무색하게 수많은 사람을 기아로 사망하게 했다. 프랑스 약품을 배척하면서 만들어 ‘자력갱생’ ‘우리끼리’의 상징이 된 캄보디아의 ‘인민약품’ 역시 수많은 국민을 말라리아로 사망하게 했다. 아마 20세기에 발생한 가장 처절한 국가의 추락이 아니었을까? 캄보디아는 이후 시장경제체제로 전환해 2003년 세계무역기구(WTO)에 가입하게 됐으며, 현재는 부지런히 산업화를 진행하면서 연평균 경제성장률 7%의 신흥국 대열에 합류했다.
경제적 유인과 사유재산이 경제발전의 원동력
한 나라 경제가 어느 경우 추락하고, 어느 경우 발전할까에 대해 다양한 의견이 있을 수 있지만, 이 분야를 오랫동안 연구해온 대런 애쓰모글루 매사추세츠공대(MIT) 경제학과 교수, 클레이튼 크리스텐슨 하버드대 경영대학원 교수, 이근 서울대 경제학부 교수의 저서와 논문들을 보면 그 원인에 대한 공통분모가 존재한다. 그것은 ‘경제시스템’의 차이다. 매우 원론적이고 당연한 이야기처럼 들리지만 아주 정확한 해답이다. 애쓰모글루 교수는 국가 간 빈부 격차의 원인을 경제적 유인(incentive)에서 찾았고, 제도가 국가 빈곤 문제의 가장 핵심적인 변수라고 봤다. 그는 미국과 멕시코의 국경도시 노갤러스(Nogales)를 사례로 들며 지리적 조건, 인종, 문화, 언어가 같음에도 미국 쪽과 멕시코 쪽의 소득이 세 배 이상 차이 나는 점을 지적한다. 크리스텐슨 교수도 최근 저서 《번영의 역설》에서 아프리카에 필요한 건 우물이 아니라 ‘시장’이라는 점을 강조하고 있고, 이근 교수 역시 한국을 포함한 동아시아 경제발전의 근간에는 ‘국가 혁신시스템’이 존재한다는 점을 지적했다.

우리도 19세기 말 최악의 추락 역사와 20세기의 극적인 추격 스토리가 있다. 그리고 현재 같은 지리적 조건, 동일한 언어와 유전자를 공유하지만 ‘자력갱생과 우리민족끼리’를 고집하는 북한과 이웃하고 있다. 대한민국과 북한의 경제시스템은 완전히 다르며, 다른 경제시스템은 분단 50년 동안 소득을 23배 차이 나게 했다. 대한민국에는 개개인의 생산성을 향상시킬 수 있는 경제적 유인에 기반한 경제시스템이 존재했기에 우리는 그 기반 위에서 추격의 이야기를 쓸 수 있었다. 경제적 유인과 사유재산은 자유와 직결되는 인간의 가장 소중한 가치이자 경제발전의 원동력이며 국가의 생산성과 직결된다.

앞에서 배운 세 신흥국가의 공통점은 경제적 유인을 갖춘 경제체제를 구축한 국가가 부강해진다는 것이다. 21세기 국가의 추격과 추월, 추락은 현재 진행 중이다. 우리가 지금 기억해야 할 것은 대한민국이 어떤 경제시스템에서 추격을 해왔냐는 것과 국가는 언제든지 추락할 수 있다는 점이다.

오철 < 상명대 글로벌경영학과 교수 >
NIE 포인트
① 미얀마 베트남 캄보디아 등 급격한 경제적 추락과 추격을 경험한 국가들의 공통점과 인구, 자원, 자본 축적 등 경제여건의 차이는 각각 어떠할까.

② 사회주의와 자본주의의 대결이 끝났다면 같은 자본주의 경제시스템 내에서도 국가 간 경제성장의 차이가 나타나는 이유는 왜일까.

③ 국가 혁신시스템으로 경제성장을 이끌어온 대한민국이 앞으로도 정부 주도의 경제성장을 지속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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