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용사 철학 담긴 펀드 내놓고…판매社 '계열사 밀어주기' 관행 없애야

입력 2020-07-21 17:36   수정 2020-07-22 02:09

“펀드 수수료는 계속 낮아질 수밖에 없다. 액티브 펀드는 더 투명해져야 하고, 더 액티브해져야 한다.”

글로벌 자산운용사 피델리티가 주최한 ‘앞으로 10년 뒤 세계’를 주제로 진행한 대담에서 전문가들은 자산관리산업의 미래에 대해 이같이 입을 모았다. 세계 인구에서 약 16%를 차지하는 밀레니얼 세대(1980년대 초반부터 2000년대 초반 출생)가 시장의 주축이 되는 데 맞춰 펀드도 변신해야 살아남을 수 있다는 얘기다.

2008년 134조원에 달했던 국내 주식형 공모펀드의 설정액은 2020년 50조원대로 쪼그라들었다. 코스피지수는 그 사이 등락을 거듭하면서도 상승 곡선을 그렸지만 공모펀드에선 투자 자금이 줄기차게 빠져나갔다. 2000년대 중반 중산층 재테크 붐을 일으켰던 펀드 전성기는 잊혀졌다. 전문가 못지않은 개인들의 정보 수집 능력, 상장지수펀드(ETF), 발달하는 알고리즘 기술 등 모두 공모펀드가 뚫어야 할 경쟁 상대다.

운용사 “더 액티브해질 것”
국내 공모펀드(주식형)의 위기는 당사자인 운용사가 자초했다. 액티브 펀드 매니저에 대한 기대는 단순히 벤치마크 수익률을 웃도는 수준에 그치지 않는다. ETF 등 패시브 전성시대라지만 액티브 펀드라면 고객 입장에서 보다 적극적으로 수익을 내줘야 한다는 얘기다.

결국 공모펀드 부활의 첫 번째 조건은 운용사와 매니저의 남다른 투자 철학과 원칙이다. 가치투자 1세대인 강방천 에셋플러스자산운용 회장은 “운용사들이 ‘좋은 펀드’가 아니라 ‘인기 있는 펀드’ 내놓기에 급급하다”고 했다. 눈앞의 수익률만 보다가 운용사의 색깔이나 매니저의 소신 없이 유행에 휩쓸려 펀드를 만들어 팔고 있다는 지적이다. 또 다른 운용업계 관계자는 “벤치마크인 코스피지수 수익률이 -10%면 펀드가 -8% 수익률만 내도 선방했다고 자랑하는 매니저도 많다”며 “매니저라면 혼을 담아 전문가다운 성과와 책임감을 가져야 한다”고 꼬집었다.

급속한 투자 환경 변화에도 매니저들이 수십 년간 이어온 관행에 얽매여 있다는 것 역시 문제다. 한 금융회사 임원은“펀드매니저들은 기업을 탐방하거나 수십 년째 같은 방식으로 기업가치를 계산해 투자하고 있다”고 했다. 마틴 드롭킨 피델리티 글로벌 채권 리서치 헤드는 “기업 펀더멘털 평가에 행동경제학적인 접근과 퀀트 활용까지 모든 것을 합칠 수 있어야 고객들이 요구하는 효율적인 분석에 가까워질 수 있다”고 말했다.

소비자 눈높이에 맞는 펀드의 투명성 도 신뢰 회복의 필수조건이다. 이는 인공지능(AI)과 빅데이터를 활용한 알고리즘에 기반한 퀀트 투자가 갈수록 각광받는 이유다. 기계 활용이 늘면서 펀드 수수료는 세계적으로 내려가는 추세다. 김경식 플레인바닐라투자자문 대표는 “펀드 운용보고서를 지금보다 더 짧은 주기로 공개해 투자자들에게 펀드가 뭘 사고파는지 더욱 투명하게 알릴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비쌀 때 우르르 파는 판매사도 문제”
증권사나 은행 등 펀드 판매사도 반성이 필요하다. 판매사들이 특정 테마의 펀드를 시장이 정점일 때 팔기 때문에 투자 실패 트라우마가 ‘공모펀드 포비아’로 이어졌다는 지적이다. 이채원 한국투자밸류자산운용 대표는 “판매사는 대부분 유망한 펀드보다 ‘지금 잘나가는 펀드’만 판다”며 “지나친 쏠림 현상이 나타날 경우 소프트 클로징(판매 중단)하는 용기도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판매사들의 계열사 펀드 및 고보수 펀드 선호 등 ‘도덕적 해이’도 빼놓을 수 없다. 펀드 판매사들이 비슷한 상품이라면 같은 금융그룹 내 운용사 상품이나 조금이라도 판매보수가 높은 상품을 선호하는 것은 자산운용업계에선 널리 알려진 사실이다. 금융투자협회에 따르면 주요 증권사와 은행 등에서 많게는 총 펀드 판매 금액 중 계열사 상품이 40~70%를 차지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기본소득 대신 펀드 세제 혜택 줘라”
업계에선 공모펀드 활성화에 무관심한 금융당국에 대한 아쉬움을 토로하기도 한다. 정부가 바뀔 때마다 나왔던 흔한 ‘공모펀드 활성화’ 방안은 언제 나왔는지 기억하기 힘들 정도다. 강 회장은 “국가가 기본소득, 재난지원금을 챙기기보다 펀드로 개인이 가처분소득을 늘리고 부자가 될 수 있게 해줘야 한다”며 “펀드에 3~5년 이상 장기 투자한다면 정부가 인센티브를 주는 방안도 고려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 대표도 “펀드 가입 연령이 높아진다는 점도 문제”라며 “사회 초년생을 위한 세제 혜택 펀드 등 유인책이 절실하다”고 했다.

미국 등 선진국처럼 펀드를 통해 부를 축적하는 문화를 확산시켜야 한다는 제안도 나왔다. 존 리 메리츠자산운용 대표는 “미국에선 한 세대를 관통하는 ‘30년 펀드’ 투자도 드물지 않다”며 “장기 투자라고 하면 고작 1~2년 정도를 생각하는 국내 투자자의 조급증도 개선해야 할 과제 중 하나”라고 말했다.

설지연 기자 sjy@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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