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전력은 오랜 기간 국민주로 불렸다. 민영화 과정에서 청약을 통해 국민에게 주식을 나눠준 ‘2호 국민주’였기 때문만은 아니다. 1990년부터 1999년까지 줄곧 시가총액 1위 자리를 지키며 투자자의 재산 형성에 기여했다. 특히 1997년 외환위기 때 폭락장에서 국민주임을 입증했다. 주가가 그해 11월부터 7개월 동안 4배 오르며 시장을 지켜냈다. 이후 주가가 떨어져도 장기적으로 항상 반등에 성공했다. ‘배신하지 않는 주식’이었다. 하지만 2016년까지였다. 이듬해 정권 교체 후 탈원전 정책과 전기료 할인으로 타격을 받았다. 이후 줄곧 내리막 길을 걸었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폭락장 급락분도 회복하지 못하고 있다. 그래도 국민(개인투자자)들은 믿음을 버리지 않고 있는 듯하다. 최근 대량 매수에 나섰다. 다시 반등에 성공할 것이란 기대 때문이다. 그러나 전망이 밝지만은 않다.
2만8500원으로 올해를 시작한 한전은 23일 1만9400원까지 내려왔다. 3월 폭락장에서 1만6000원대를 찍고 회복하는 듯했지만 다시 밀렸다. 현재 가격은 1997년 외환위기 직후 가격이다. 2016년 초 고점(6만3000원대)에 비해서는 70% 가까이 하락했다. 역사적 최저점이라는 평가가 지배적이다. 주가순자산비율(PBR) 기준으로는 0.19배다. 회사를 당장 청산해도 시가총액의 5배 이상은 받을 수 있다는 말이다. 한전의 시가총액은 12조4862억원. 현재 서울 도곡동 타워팰리스 4개 동의 가치(약 15조원)보다 낮다.
호재도 한전 주가에 별 영향을 주지 못했다. 국제 유가는 최근 미국 서부텍사스원유(WTI) 기준 배럴당 40달러대를 유지하고 있다. 발전 단가가 대폭 낮아졌다. 이에 힘입어 한전의 올해 영업이익은 3조3140억원을 기록할 것으로 예상된다. 3년 만의 흑자전환이다. 하지만 마지막 희망이었던 전력요금 개편 논의가 불투명해졌다는 시각이 호재를 압도하고 있다. 정혜정 KB증권 연구원은 “한전의 장기적인 수익성에 대한 우려가 주가를 짓누르고 있다”고 말했다. 이런 상황에서도 개인들은 탈원전 정책이 바뀌면 한전 주가가 다시 오를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또 다른 가치투자 운용사도 최근 한전 주식을 손절매했다. 이 운용사 매니저는 “여러 변수가 생기면서 장기 실적 추정이 어려워졌고, 부채도 많아 더 이상 가치주가 아니다”고 말했다.
박의명 기자 uimyung@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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