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땀 흘려 산 집, 왜 정부가 뺏나"…5000명 시민 '촛불' 들었다

입력 2020-07-26 09:51   수정 2020-07-26 11:44

"문재인 내려와 내려와"
"집값은 니들이 올렸지 우리가 올렸냐"
"국민이 정부의 현금지급기냐"
25일 오후 7시 30분 서울 다동 예금보험공사 앞. 정부의 부동산 정책을 규탄하는 5000여명의 시민들이 목에 핏대를 세우며 구호를 외쳤다. 이들의 손엔 LED(발광다이오드) 촛불이 들려 있었다. '촛불'로 탄생한 현 정부에 촛불로 저항하겠다는 의지를 드러낸 것이다.

부동산 대책 규탄 집회는 지난 4일과 18일에 이어 세 번째로 열렸다. 집회 참여 시민은 약 100명(4일), 500명(18일)에서 주최 측 추산 5000명(경찰 추산 1500명)으로 커졌다. 바뀐 건 참여자 수만이 아니다. 그동안엔 부동산 대책 비판에만 치중했다면 이날 집회에선 문재인 정부 자체에 대한 분노와 정권 퇴진을 외치는 목소리가 커졌다. "사유재산 보호하라", "이게 자유민주주의 국가냐" 등 근본적인 문제 제기를 하는 구호가 유난히 많이 나왔다.

집회 사회를 맡은 '자국민우선국민행동' 대표 이형오 씨는 "이 정부는 1시간 일한 사람과 10시간 일한 사람을 차별하면 안 된다는 의식을 갖고 있다"며 "부동산 대책도 이런 삐뚤어진 평등 의식에서 나왔고 서민들이 피땀흘려 번 재산을 강탈하려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한 30대 참여자는 "이건 부동산 정책 저항 운동이 아니라 사회주의 저항 운동"이라고 말했다. 그는 "나도 박근혜 정권 말 촛불 집회를 나갔고 문재인 정부를 지지했던 사람"이라며 "그런데 현 정부 내내 사유재산을 인정하지 않고 시장경제 체계를 망가뜨리는 정책을 밀어붙이는 걸 보면서 더 이상 대통령을 이 나라의 지도자로 인정할 수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했다.

'신발 투척 퍼포먼스'도 진행됐다. 사회자의 신호에 맞춰 시민들이 자신의 신발을 일제히 하늘로 던졌다. 16일 국회에서 50대 남성 정모씨가 문재인 대통령을 향해 "가짜 인권주의자"라며 신발을 집어 던진 것을 따라한 것이다. 무대 위엔 문재인 대통령이라는 이름표가 붙은 의자가 놓여 있었다. 주최 측은 대통령이 이 자리에 와서 시민들의 억울함을 들었어야 했다는 뜻으로 준비한 것이라고 했다. 참가자들은 텅 빈 의자를 향해서도 신발을 던졌다. 한 시민은 분에 못 이겨 의자에 붙인 이름표를 찢어버렸다.
참석자들, 부동산 규제로 억울한 사연 호소
시민들이 연단에 올라가 피해 사연을 소개하는 시간이 이어졌다. 인터넷 카페 '6·17 규제 소급 적용 피해자 구제를 위한 시민모임’ 운영자라고 소개한 한 여성은 "갑작스런 대출 규제로 이사가는 데 큰 차질이 생겼다"고 호소했다. 이 여성은 선천적으로 아픈 아이 때문에 대학 병원 근처로 이사하려고 아파트 분양권을 받았다고 했다. 그런데 갑자기 아파트가 있는 곳이 규제 지역이 되면서 잔금 대출이 막혔다.

은행에선 대출을 받으려면 6개월 안에 기존 집을 처분해야 한다고 했다. 하지만 기존 집은 매매 거래가 씨가 마른 지방에 있어서 6개월 안에 매도할 수 없고 분양권을 포기해야 할 위기에 처했다는 것이었다. 이 여성은 "피땀 흘려 모은 돈으로 산 집을 정부가 무슨 권리로 날리려 하냐"며 "정부가 자유시장경제 이념을 완전히 무시하고 집주인을 적폐로 몰아 세금을 수탈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이어 연단에 오른 40대 회사원은 "나라에서 내라는 재산세, 종합부동산세, 취득세를 다 냈고 한 번도 탈세한 적 없이 열심히 살았다"며 "2018년에 임대사업 등록을 하면 애국자라고 하더니 이제는 투기꾼으로 몰고 있다"고 말했다. 정부가 7·10 대책에서 임대사업자 제도를 폐지한 것을 비판한 것이다.



이날 참가자들은 40~60대가 주류를 이뤘지만 30대 이하 젊은층도 적지 않았다. 30대 김모씨는 최근 '징벌적 보유세' 소식을 들은 후 불면증에 시달린다고 했다.

"악착 같이 돈 모아서 집 두 채를 샀습니다. 세금을 아끼려고 법인을 등록해서 샀지만 적법한 절차를 다 따랐어요. 그런데 법인 주택은 세금 폭탄을 내린다고 합니다. 계산해보니 내년에만 보유세와 법인세가 2000만원 넘게 오르더군요. 평범한 회사원이 2000만원이 어디 있습니까. 당장 외식도 줄이고 어린 아이들에게 들어가는 돈을 졸라매고 있어요. 열심히 일한 대가를 인정하지 않는 이 상황이 정상입니까."
청년 무주택자 "내집 마련 꿈 멀어졌다"…"서울 천박한 도시라니" 분통

참가자 중엔 무주택자도 있었다. 30대 정모씨는 "2017년 8·2 대책과 임대주택 등록 활성화 방안 발표 이후 2018년 수도권 집값이 급등했다"며 "올해는 집값이 안정됐었는데 6·17 대책과 7·10 대책 이후 또 집값이 뛴다"고 지적했다. 이어 "정부는 투기꾼 때문에 집값이 오른다고 하는데 내 생각엔 정부의 실정(失政)이 집값 상승의 주범"이라며 "이 탓에 청년들의 내 집 마련의 꿈은 갈수록 멀어지고 있다"고 비판했다.

이해찬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24일 "서울은 천박한 도시"라고 말한 데 대한 비판도 나왔다. 60대 김모씨는 "서울 집값이 높다는 이유만으로 천박한 도시라고 하던데, 서울에 일자리와 교육 인프라가 쏠려 있으니 집값이 높을 수밖에 없는 거 아니냐"고 물었다. 이어 "그런데도 정부 여당은 서울 쏠림 현상을 해소하는 데는 손 놓으면서 서울 시민을 나쁜 사람으로만 몰고 있다"고 말했다.

이날 집회는 오후 7시부터 9시까지 약 2시간 동안 진행됐다. 인터넷 카페 6·17 규제 소급 적용 피해자 구제를 위한 시민모임, 7·10 취득세 소급 적용 피해자 모임, 임대사업자협회 추진위원회 등이 주최했다. 하지만 이날 참여자 상당수는 "인터넷 카페 회원이 아니지만 촛불집회가 열린다는 뉴스를 보고 나왔다"고 말했다. 6·17 시민모임 관계자는 "집회 참여자의 외연이 넓어지고 있다는 뜻"이라며 "앞으로도 매주 토요일 집회를 열 텐데 전국민적인 저항 운동으로 커질 것"이라고 내다봤다.

인터넷 공간에선 '실검(실시간 검색) 챌린지' 운동도 이어진다. 실검 챌린지는 정해진 시간에 특정 문구를 집중 검색해 높은 검색어 순위에 올리는 집단행동이다. 이날 오후 6시께엔 '나라가 니꺼냐'는 문구가 네이버의 실시간 급상승 검색어 1위에 오르기도 했다.

서민준 기자 morandol@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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