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자 칼럼] 법치와 민주공화국

입력 2020-08-05 17:34   수정 2020-08-06 00:16

인류 역사는 ‘법의 지배(rule of law)’를 상식으로 만들기 위한 투쟁의 기록으로 봐도 무방하다. 아리스토텔레스는 “법에 의해 통치되는 것이 시민 중 한 사람에 의해 통치되는 것보다 낫다”고 갈파했다. 로마 법률가 키케로도 “자유롭기 위해 법의 노예가 돼야 한다”고 했다.

‘법에 의한 지배가 모두에게 유리하다’는 이런 사고는 근대 이후 정치철학의 근간이다. 1955년 국제법률가협회는 “국가는 법의 지배 하에 있다”고 선언했고, 50년 뒤인 2005년 국제변호사협회는 “법의 지배는 문명사회의 토대”라는 내용의 결의문을 채택했다.

“아무도 법 위에 있을 수 없다”는 생각은 서구 자유민주주의 국가들만의 것이 아니다. 러시아의 푸틴은 ‘법의 지배 원칙’을 완전히 실행하는 것을 국가 최우선 과제의 하나로 꼽는다. 중국의 시진핑도 권좌에 오른 이듬해인 2014년부터 ‘법에 따른 국가 통치’를 강조하고 ‘의법치국(依法治國)위원회’를 운영 중이다. ‘세계 최장수 독재자’였던 짐바브웨의 무가베도 “법의 지배에 복종하는 정부만이 시민들에게 법의 지배에 복종할 것을 요구하는 도덕적 권리를 갖는다”고 했다.

신정훈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법의 지배는 무섭고 위험하다’는 난데없는 페이스북 포스팅으로 주목받고 있다. 윤석열 검찰총장이 신임검사 신고식에서 자유민주주의는 법의 지배를 통해 실현된다고 연설한 데 대해 “매우 충격적” “과감한 발상”이라고 비판하고 나선 것이다. 법의 지배에 대한 동서고금의 폭넓은 동의를 감안할 때 신 의원의 주장은 뒤통수를 때리는 듯 당혹스럽다. 절대자유주의자조차 ‘법안에서의 자유’라는 제한에 이의를 달지 않는 점을 감안하면 이해불가한 정신세계다.

형식적 법치주의인 ‘법에 의한 지배(rule by law)’와 혼동했다는 분석이 나온다. 히틀러는 수권법을 통해 자신의 명령을 법보다 우선하는 독재권력을 구축하고, 뉘른베르크법으로 홀로코스트의 문을 열었다. 이처럼 법이 통치자의 의지를 강요하는 수단으로 악용되는 것을 막기 위해 중요한 것이 자유 평등이란 공화가치를 지키는 일이다. 미국이 수정헌법 1조에서 ‘종교·표현·언론 자유와 집회 및 청원의 권리를 막는 입법의 금지 규정’을 둔 이유다.

신 의원은 1985년 서울 미문화원 점거농성에 가담한 운동권 출신 정치인이다. ‘선출된 권력은 무엇이든 할 수 있다’는 운동권 특유의 법 경시와 선민의식에서 벗어나지 못한다면 의원뿐만 아니라 민주공화국의 일원으로서도 자격 미달이다.

백광엽 논설위원 kecorep@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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