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마을] 궁상맞고 찌질하지만 이 모든 게 사랑

입력 2020-08-06 17:39   수정 2020-08-07 02:27

1999년 등단한 소설가 이기호는 국내 대표 이야기꾼이다. 특유의 ‘개념 있는 유쾌함’을 담아낸 작품들로 동인문학상, 이효석문학상, 김승옥문학상, 한국일보문학상, 황순원문학상 등 국내 거의 모든 문학상을 받았다.

《누가 봐도 연애소설》은 책 제목처럼 그가 등단 20여 년 만에 처음 낸 연애소설집이다. 페이지 수가 석 장 반을 넘지 않는 초단편 소설 30편을 묶었다. 수록된 단편들은 ‘누가 봐도’ 별 볼 일 없는 사람들의 특별한 사랑 이야기다. 책 제목에 연애소설이 붙었지만 그의 사랑 이야기는 로맨틱하지도 않고, 진한 멜로 향도 느껴지지 않는다. 곰곰이 곱씹어 봐야 ‘아! 사랑이었구나’ 하고 느낄 법하다.

그가 풀어낸 여러 사랑 이야기 중에서 연애는 그저 거들뿐이다. 그 안에는 팍팍한 현실 속 삶의 풍경이 녹아 있다. 공무원 시험에 떨어져 PC방에만 들락거리다 이별 통보를 받은 백수, 7년째 다닌 대학원을 자퇴하고 편의점 아르바이트를 시작한 20대 여성, 미래가 불투명한 연구소 계약직 직원, 공공근로를 다니는 노인, 편의점에서 1+1 물품에 집착하는 여성 등 우리 옆집에 사는 평범한 이웃 같은 이들이 소설 속에 그려진다.

등장인물들의 공통점은 몸이든 마음이든 하나같이 어딘가가 아프다는 것이다. 이들은 암에 걸렸거나, 치매에 걸렸거나, 애인에게 이별 통보를 받았거나, 시험에 떨어졌거나, 이혼을 했다. 얼핏 보면 사랑할 여유도 없어 보이는, 어딘가 짠해 보이는 이들이지만 각자 삶 속에서 최선을 다해 누군가를 사랑하고 있다. 치매에 걸린 80세 남편을 끝내 요양병원에 보내지 못한 채 어디든 함께 다니려는 아내의 안타까운 모습, 티격태격하며 싸운 끝에 집을 나간 70대 남편의 변비약과 전립선약을 아들 손에 대신 쥐여주는 할머니의 염려 섞인 사랑은 세상을 향한 작가의 애정 가득한 시선을 느끼게 한다.

심각한 상황을 심각하지 않게 보여주는 작가 특유의 문체와 능청스러운 유머도 ‘이기호 표 연애소설’의 매력이다. 이별 후 함께 키운 개를 데려가는 전 여자친구에게 “개만 데려가고 난 왜 안 데려가냐”고 울먹이는 백수에게선 우스우면서도 애잔한 연민이 느껴진다. 작가는 “소설을 쓴다는 것은 누군가를 그리워하고 아끼는 마음이 절반”이라며 “그런 게 무슨 사랑이냐고 할 법하지만 그게 진짜 우리가 사는 삶이고, 누가 뭐래도 우리가 겪는 모든 게 사랑”이라고 속삭인다.

은정진 기자 silver@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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