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자 칼럼] '안전한 대한민국'이란 공약

입력 2020-08-09 18:27   수정 2020-08-10 00:22

비의 종류도 다양하다. ‘눈비’라고 묶어 말하기도 하지만, 눈의 가짓수만큼이나 많다. 안개비, 는개, 이슬비, 가랑비부터 소나기, 여우비, 억수, 장대비, 장마까지 다 다르다. 폭우, 폭풍우, 호우, 집중호우 같은 한자말도 있다. 요즘처럼 길게도 퍼부어대는 무서운 비는 억수장마다.

비를 일컫는 말이 이렇게 다양한 것은 우리 삶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크기 때문일 것이다. 농경사회, 특히 논농사 문화에서 계절에 맞는 적절한 강우는 무엇보다 중요했다. 벼와 관련된 우리말이 무척이나 폭넓은 것과 같은 맥락이다.

촉촉이 사물을 적시는 봄날의 꽃비나 달아오른 대지를 잠시 식혀주는 여름철의 소나기는 현대인에게도 계절의 정취를 느끼게 해준다. 추수기의 가을비도 농부에게는 불청객이겠지만, 우산 속 연인들을 더 가깝게 해줄지 모른다. 어떻든 도시민에게도 비와 우천, 강우량은 늘 일상의 관심사다.

일기예보 역량과 그런 서비스를 경제 및 여가활동에 효율적으로 접목시키는 비즈니스가 ‘기상산업’이라는 개념으로 선보인 지도 한참 됐다. 하지만 예보능력은 부실하고, 호우 대처 수준도 미흡하기만 하다. 막대한 정부예산이 투입됐고 슈퍼컴퓨터까지 도입했건만, 며칠은커녕 당장 하루 뒤 예보도 틀리기 일쑤다.

저수지가 무너지고 강둑이 터지면서 곳곳이 물바다가 된 것을 보면 홍수 대비도 여전히 미흡하다. 장기간에 걸쳐 비가 많이 내린 것은 사실이지만, 큰비 때마다 물난리로 이어진다면 ‘튼튼한 나라, 안전사회’와는 거리가 멀다. 서울과 수도권이 이나마 선방하고 있는 것도 개발연대부터 건설했던 여러 개 다목적댐 덕이라는 사실도 이번에 재확인됐다.

세월호 사고 이후 안전사회에 대한 염원이 컸다. 문재인 정부도 ‘안전한 대한민국’을 공약으로 내걸었다. 자연·사회적 재해와 재난을 예방하고 생활안전을 강화하겠다고 약속했다. 그래도 배는 침몰했고, 안전부실형 화재사고도 잇따랐다.

‘하늘도 무심하다’는 말이 나오게 하는 이번 장마를 보면 안전한 사회가 아직도 요원한 것은 확실하다. 더구나 여당이 야당시절 틈만 나면 퍼부어댔던 ‘정부책임론’을 돌아보면, “집권 이후 도대체 뭘 했나”라고 묻지 않을 수 없다. 화재방지·수해예방 차원의 안전공약 이행에 과연 어떤 노력을 기울였는지 한번쯤 국민에게 설명해야 하는 것 아닌가. 당장은 수해복구 역량이 시험대에 올랐지만….

허원순 논설위원 huhws@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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