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예인만 '부캐' 있냐…나도 퇴근 후엔 요가 강사·코딩 교사·작가로 변신 [김과장 & 이대리]

입력 2020-08-10 16:58   수정 2020-08-11 01:18


공기업에 다니는 임 과장은 주말엔 ‘요기니(요가를 즐기는 여성)’가 된다. 우선 명상과 호흡으로 ‘업무 스위치’를 완전히 끈다. 요기니들끼리 모여 풍경 좋은 곳을 찾는 ‘수련 여행’을 다니고, 맥주를 마시며 수련하는 이색 요가도 종종 즐긴다.

한 공연 준비 업체에서 일하는 김 대리는 취미로 하는 발레를 위해 좋아하던 와인을 끊었다. 올해 말 아마추어 발레 콩쿠르에 나갈 준비를 하고 있다. 매일 퇴근 후 토슈즈를 들고 학원으로 향한다. 땀을 흠뻑 흘리고 나면 근육통이 찾아오곤 하지만 목표가 있어 기분이 좋다. 댄서가 되고 싶던 어릴 적 꿈을 접고 평범한 직장인이 된 게 못내 아쉽다는 생각이 들곤 한다.
이효리의 린다G…부캐 열풍
임 과장, 김 대리 같은 직장인이 요즘 크게 늘었다. ‘부캐(부캐릭터)’ 열풍이란 말까지 나온다. 미국 전역에 200개 헤어숍을 운영하다가 뒤늦게 가수로 데뷔했다는 콘셉트로 나온 가수 이효리의 ‘린다G’, 개그우먼 김신영의 둘째 이모 콘셉트 ‘김다비’ 등 연예인들의 부캐가 큰 인기를 끌자 일반인 사이에서도 또 다른 나를 찾는 게 화두다.

이들은 ‘플랜테리어(식물 인테리어)’ ‘라탄 공예’ 등 다양한 취미를 통해 다음주를 버텨낼 마음의 근육을 다지며 본업을 그만둔 이후의 미래를 준비한다. 취미를 즐기다 얼떨결에 두 번째 직업을 갖게 된 이들도 넓게는 ‘부캐족(族)’에 속한다.
퇴근 뒤엔 댄스 강사, 고깃집 대표로
평범한 직장인들은 페르소나(가면)를 몇 겹씩 쓰고 있다. 회사에 맞춰 생활하는 절제된 ‘본캐(본캐릭터)’다. 행여 꼬투리라도 잡힐까 자신의 본모습을 드러내지 않는 사람이 많다. 하지만 퇴근 후와 주말은 오롯이 나를 위한 시간이다. 직장에서의 가면을 벗어던지고 부캐로 변신한다.

대학 시절 스트리트 댄스 동아리에서 활동한 오 대리는 매주 두 번 ‘몸치 탈출’ 댄스 수업을 연다. 또래 직장인에게 댄스 기본기를 가르친다. ‘회식 2차 노래방에서 적당히 분위기 띄우는 춤’ 등 간단한 팁을 알려준다. 그는 “몸을 움직이다 보면 직장생활에서 받은 스트레스가 날아간다”며 “‘온앤오프(on and off)’가 확실한 지금의 생활에 만족한다”고 말했다.

한 대기업 회계팀에서 일하는 전 대리는 조만간 동료들을 놀라게 할 ‘몸짱 부캐’를 인스타그램에 공개할 예정이다. 올여름이 끝나기 전 비키니 차림의 프로필 사진을 업로드하는 걸 목표로 막바지 운동에 여념이 없다. 과거엔 다이어트를 위해 운동하던 여성들이 요즘은 건강미 넘치는 모습을 위해 땀을 흘린다.

제약회사에 근무하는 박 과장은 한 친구의 제안으로 고깃집 사장이 됐다. 친구 네 명이 8000만원을 모아 40㎡ 남짓한 가게를 얻었다. 식당을 운영하는 한 친구가 관리를 총괄한다. 고깃집에 있는 방 세 개는 예약제로 운영한다. 바쁠 때는 다들 모여 일을 돕는다. 본업에 영향을 주지 않는 선에서 최대한 서로 일정을 조율한다. 매달 얻는 수익이 쏠쏠하다. 이들은 “가끔씩 지인을 식당으로 초대할 수도 있어 더 좋다”고 했다.
뜻하지 않은 ‘장년 부캐’도
등산, 낚시, 골프 등 과거 중장년층이 선호하던 취미를 즐기는 2030 직장인이 늘고 있다. 주말농장을 넘어 농부 전업을 고민하는 젊은 직장인도 꽤 많다. 건강을 챙기기 시작하는 시기도 예전보다 앞당겨졌다. 야외 활동에 제약이 생긴 올해 들어 이런 경향이 더 강해졌다고 한다.

경기 고양시에 사는 문 과장의 부캐는 농부다. 주말엔 파주 부모님댁에서 논밭일을 돕는다. 농작물을 트랙터로 옮기고, 비닐하우스를 설치하는 간단한 농사일은 거뜬하다. 문 과장은 “힘들긴 하지만 각종 지원금이 많고 대출 조건도 괜찮아 전업으로 해볼 만하다”고 했다.

제조업체에 근무하는 김 대리는 요즘 몸이 좀 안 좋아지는 걸 느낀다. 이른바 ‘건강 염려증 부캐’다. 건강기능식품 쇼핑몰을 살펴보는 게 습관이 됐다. 종합비타민은 물론 루테인, 마그네슘, 사유(蛇油·뱀기름) 캡슐 등 온갖 영양제를 잔뜩 마련해뒀다. 동료들에게 ‘몸 생각하는 건 부장님급’이라는 말을 듣기도 하지만 ‘나를 돌보는 건 나밖에 없다’는 게 그의 생각이다.
‘전업 작가’ 돼볼까?
부캐를 본캐로 ‘승화’하려는 시도도 있다. 정치외교학을 전공한 채 대리는 석 달 전부터 1주일 두 번 학원에 나가 비전공자를 위한 코딩 수업을 듣고 있다. 수업이 없는 날에는 다른 수강생들과 스터디를 한다. 그가 코딩 공부를 시작한 건 나중에 이직이나 창업을 할 때 필요할지도 모른다는 생각 때문이다. 주변에 채 대리처럼 문과 출신임에도 소프트웨어 개발자나 프로젝트매니저(PM)로 진로를 바꾼 사람이 적지 않다.

대기업 소프트웨어 개발자인 양 대리는 40대가 되면 코딩 교사로 전직할 생각이다. 자신의 전공을 살리면서도 워라밸(일과 삶의 균형)이 보장되는 교사로 제2의 커리어를 준비하고 있다. 그는 “교직 이수를 위한 대학원 진학과 관련 자격증 취득 방법을 알아보고 있다”며 “지금은 준비 중인 부캐지만 나중엔 본캐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각종 콘텐츠 플랫폼이 활성화하면서 웹소설이나 에세이를 써 돈을 버는 사람도 있다. 재능 공유 플랫폼 ‘탈잉’ ‘클래스101’ 등에서 관련 강좌를 수강하는 예비 작가가 늘고 있다. 인기를 끌면 부캐 수익이 본캐를 넘어설 때도 있다. 한 스타트업에서 근무하는 장씨는 카카오의 블로그 커뮤니티 ‘브런치’ 작가에 도전해 1주일에 두 편의 에세이를 올리고 있다. 간단한 일상과 회사에서 겪는 일이 주제다. 장씨는 “지금은 부업에 불과하지만 좋은 기회가 생기면 전업 작가로 전향할 생각도 있다”고 말했다.

한 소비재 기업에 다니는 강 대리는 부캐 전직 제의를 받았다. 그는 2년 전 필라테스 강사 자격증을 딴 뒤 서울 강남의 한 필라테스 학원에서 수시로 수업을 하고 있다. 최근 전업 강사가 돼보지 않겠느냐는 제안을 받고 고심 끝에 거절했다. 부캐는 부캐일 때 매력적이지 본업으로 삼는 순간 재미가 없어질 것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김대훈 기자 daepun@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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