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알못] "푼돈 버느라 고생하지 말고 집에서 살림이나 해"

입력 2020-08-15 13:46   수정 2020-08-15 13:55



"당신이 밖에 나가서 고생하는 거 싫어."
"푼돈 버느라 고생 말고, 내가 주는 카드 쓰면서 살림이나 해."
"아이도 가져야 하니, 일 그만두고 준비를 하는게 좋지 않겠어?"


회사를 그만두라는 남편의 말을 듣고 회사를 쉬다가 4개월 만에 이혼 위기에 놓인 여성의 사연이 화제다.

A 씨는 회사 생활 9년차 직장인이다. 결혼 후에도 일을 쉬지 않은 덕분에 나름 전문성을 인정받고, 조금만 더하면 원하는 위치까지 갈 수 있는 상황이다.

문제는 남편이다. 사업가인 남편 B 씨는 중국과 큰 계약을 체결한 후 "더이상 힘들게 일하지 말고, 집에서 쉬라"고 말했다. 자신의 커리어를 인정해주지 않는 남편과 다투기도 했지만 모든게 자신을 걱정해서라고 생각했다.

A 씨는 직장인으로의 보람과 남편의 요구 사이에서 고민하다가 일단 3개월 휴직을 해보기로 결정했다.

A 씨는 "남편에게는 휴직했다는 말을 하지 않았다"면서 "출근을 하지 않으니 남편이 처음 한 달은 정말 잘 해줬다"고 전했다.

A 씨의 남편은 "퇴직금은 따로 당신 쓰고 싶은 데 쓰라"면서 자기의 카드를 줬고, 경제권도 전부 넘겼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A 씨는 남편이 '선을 넘는 것 같다'는 우려가 생겼다.

B 씨는 퇴근 후 냉장고 문을 열어보고, "이건 내가 안 먹는 건데 왜 이렇게 많이 샀냐", "이건 좀 넉넉하게 사두지, 내가 카드도 줬는데"라고 말하면서 한숨을 쉬었다.

A 씨는 "알고보니 카드 사용 내역이 남편에게도 문자로 갔고, 본인 기준에 좀 많이 긁혔다 싶으면 냉장고 검사를 했던 것"이라고 전했다.

이후에 B 씨는 A 씨에게 "내 일을 도와줄 수 없겠냐"고 제안했다. A 씨는 자신의 전공과 지금껏 해왔던 분야와 전혀 다른 남편의 사업에 관심도 없었고, 그의 회사에서 아무나 할 수 있는 일을 하고 싶지도 않았다.

A 씨는 경영학 책을 던져 주면서 "그것도 모르냐"고 무시를 하고, 업무 때문에 영어와 불어를 능숙하게 해 왔는데 "요즘 누가 그런 따분한 언어를 하냐. 중국어도 안배우고 뭐했냐"는 B 씨의 태도에 모멸감을 느꼈다. 심지어 "차도 타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남편의 말에 달라진 태도를 절감했다.

무엇보다 A 씨를 분노케 한 건 "넌 먹고, 자고, 나중에 아이 낳는 거 말곤 할 줄 아는 게 뭐냐"던 남편의 말이었다. 격분한 A 씨가 "다시 일을 하겠다"고 하자, 남편은 "밖에서 돈 벌어오는 게 집에서 카드 긁는 것처럼 쉬운 건 줄 아냐"고 답했다.


결국 A 씨는 회사 복직을 결정했고, 남편은 "그동안 퇴사했다고 해놓고 지금까지 날 속인거였냐"면서 분노했다.

A 씨는 "그동안 모아두었던 소소한 언어폭력, 인격모독성 발언들, 전부 이혼할 때 증거로 쓰려한다"며 "남편은 아내가 아니라 돈 안쓰는 가정부에 돈 안드는 보모를 원했다는 걸 인정하기 싫은가 보다"라고 전했다.

A 씨의 후기에 "충격적"이라는 반응과 응원이 이어졌다.

한 네티즌은 "남편이 자기 사업체 인건비 아끼려고 아내보고 회사 그만두라고 했겠냐"며 "그냥 밖에서 받은 스트레스 풀 샌드백이 필요했고, 카드 내역은 그냥 구박할 구실이다. 남편 말대로 경영학 공부 시작하면, '이것도 모르냐'며 또 다른 조롱이 시작됐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또 다른 사람들도 "저렇게 아내 경력 단절시키고, 가스라이팅하는 남편들이 한 둘이 아니라는게 문제다", "결혼해도 절대 일은 그만두면 안된다", "남편과 아이는 배신해도 열심히 일한 내 업무 성과는 배신하지 않는다" 등의 반응이 이어졌다.

통계청 조사에 따르면 2019년 기준 경력단절여성 규모는 25세~54세 기혼여성 중 19.2%를 차지했다. 여성가족부의 '2019 경력단절 여성들의 경제활동 실태조사'에서도 25세~54세 여성 중 결혼, 출산, 양육 등으로 경력단절을 경험한 사람은 3명 중 1명에 달했다.

하지만 한 번 일을 그만두먼 재취업이 어려운 만큼 정부에서도 적절한 일자리 창출과 질을 제고하기 위해 다양한 정책을 투입하고 있지만 재취업은 여럽다는게 현실이다. 경력단절여성들이 재취업을 하기에는 평균 7~8년 정도가 걸리며, 첫 일자리 월 임금은 이전의 87.6% 정도 걸린다고.

경력이 단절된 후엔 남편의 폭력이나 외도에도 적극적으로 대처할 수 없다는 것도 문제점으로 꼽힌다.

실제로 '황혼 이혼'이 늘어나는 것도 경제적으로 독립하기 힘든 상황에서 자녀가 다 자랄때까지 기다리는 여성들이 늘어나기 때문이라는 분석도 있다.

가사에 대한 부부갈등은 맞벌이부부건 전업주부건 가리지 않고 찾아올 수 있다.

육아 등을 이유로 경력단절 여성이 된 후 그로 인해 갈등을 겪는 경우도 많다.

그렇다면 이 사례와 같은 부부갈등에 법알못(법을 알지 못하다) 자문단 이인철 변호사는 어떤 조언을 들려줄까.
"남편이 나를 가사도우미 취급합니다."

요즘 경기가 어렵고 젊은이들의 취업이 상당히 어렵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대부분의 사람들은 취업에 고군분투 노력하고 있습니다. 특히 여성들도 자신의 능력과 전공을 살려 직장을 다니고 있습니다.

그런데 여성들이 결혼하고 나서 직장생활과 가사를 병행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닙니다. 특히 임신과 출산의 과정을 거치게 되면 가사, 육아에 직장생활까지 해야 하므로 그 어려움이 배가된다고 할 수 있습니다.

이 경우 남편이 아내를 배려해서 가사, 육아를 적극적으로 하게 되면 도움이 될 수 있지만 그렇지 않는다면 아내들은 힘들고 고민될 수 있고, 일부 여성들은 회사를 휴직하거나 퇴사를 결심하게 됩니다.

그런데 변호사사무실에 찾아오는 부부 중 이런 문제로 부부간의 갈등을 겪고 이혼을 결심하는 경우가 상당수 있습니다.

"남편이 결혼 후에 퇴직을 강요해서 퇴직하였는데 집안일과 육아가 쉬운 것도 아니고 남편이 집안 일을 도와주는 것도 아니고 무엇보다 힘든 것이 남편이 가사도우미 취급하고 인격무시 하는 것이 가장 서럽습니다."

남편들은 "아내를 배려하려고 힘든 직장을 그만두고 편하게 집안 일만 하라고 권유한 것을
강요했다고 하니 억울하다"면서 "아내가 직장을 그만두니 아내 몫까지 더 일해서 가정경제를 유지해야 해서 나도 힘들다. 일하고 집에 와서 조금 휴식을 취하려고 하면 아내가 또 집안일을 시키고 잔소리도 하고 퇴근 후 집에서도 너무 힘들다"고 하소연을 합니다.
법적인 판단에서는 누구의 잘못이 더 클까요?

만약 이런 사유로 이혼소송을 한다면 법원에서는 당사자 모두 이혼을 원할 경우 이혼은 성립될 수 있지만 부부 모두 큰 귀책사유는 없어 위자료청구는 기각될 가능성이 있습니다. 일방이이혼을 원하지 않으면 이혼 자체가 기각될 가능성도 있습니다.

사연에서 아내는 남편이 소소한 언어폭력, 인격모독성 발언을 했다고 주장합니다.

그러나 법정에서 남편이 사실을 인정하지 않는다면 아내는 이 사실을 입증해야 합니다. 이혼하려면 녹음이나 문자, 각서 등 증거를 확보해야 합니다.

그런데 소소한 언어폭력이 점점 더 커져서 심한 언어폭력과 인격무시가 될 수 있고 이혼소송과정을 거치면 그 싸움은 더 커져서 부부간 전쟁이 시작됩니다. 전쟁에서는 전략을 잘 세우고 더 좋은 무기를 확보한 측이 승리하듯이 이혼재판도 처음부터 치밀하게 준비하고 더 확실하고 강한 증거를 많이 확보한 측이 승리하게 됩니다.

그러나 이 과정에서 부부 모두 큰 상처를 입게 됩니다. 유명한 ‘죄수의 딜레마’이론이 있습니다.

갑과 을이 친구 사이로 주가조작 사기범행의 공범입니다. 수사기관에서 각자 다른 방에서 조사 받고 있습니다. 두 명을 기소하기 위한 증거는 부족하고 이들의 자백만이 유일한 증거입니다.

검사가 각 범죄자를 대상으로 신문을 합니다. 검사는 두 공범에게 동일한 제안을 합니다. “다른 공범에 대해 범행을 자백하면 자백한 당신은 1년형으로 감경되고, 다른 공범은 중형인 징역 10년을 받게 된다”누구든 자백하면 자백한 사람은 가볍게 처벌되지만 상대편 공범은 중형을 받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합리적인 판단으로는 자백하는 것이 더 유리합니다. 그런데 이들에게 최상의 선택은 이들이 모두 상대방을 믿고 혐의를 끝까지 부인 또는 묵비권을 행사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모두 증거불충분으로 석방될 수 있습니다.

이혼재판에서도 비슷한 상황이 발생합니다.

제가 직접 만든 법칙인데요. (‘이혼에서의 부부의 딜레마 법칙’) 부부는 상대방의 약점과 잘못을 너무 잘 알고 있습니다. 만약 이혼재판에서 서로의 잘못을 밝히지 않으면(묵비권 행사) 서로 상처받을 일도 있고 원만히 신속하게 재판은 끝나게 됩니다.

그러나 이혼과정에서 유리한 고지를 차지하기 위해서 상대방의 치부와 약점을 발설하려는 유혹에 빠지게 됩니다. 감정이 상해서 상대방을 공격하기도 합니다.

그런데 일방이 상대방 배우자의 잘못을 밝히고 공격하면 배우자도 역시 상대방 잘못을 밝히고 공격할 것이고, 결국 기나긴 진흙탕 싸움이 되어 서로 상처받게 됩니다.

심지어는 비리행위로 진정을 당하여 직장에서 징계를 받거나 수사기관에 고소, 고발당해 범죄행위로 처벌받는 경우도 발생합니다.

그러므로 부부싸움은 서로 상처주지 않고 원만하게 합의나 조정으로 해결하는 것이 서로에게 가장 유리한 해결방법입니다.

위 사연에서도 남편은 아내가 자신의 능력과 적성과 경력을 포기하고 전업주부가 된 것에 대해 진심으로 그 결단을 인정해주고, 아내도 남편이 회사에서 열심히 일하는 것을 고마워하고 집에 오면 따뜻하게 위로해주었다면 어떻게 되었을까요?

전쟁과 평화는 상황을 바라보는 관점의 차이로 결정됩니다.

“부처님 눈에는 부처가 보이고 돼지 눈에는 돼지가 보입니다” 무학 스님의 말씀입니다.
부부는 물론이고 타인을 보거나 평가할 때 항상 상대방의 단점을 먼저 보고 부정적인 의견만 표현하는 사람이 있고, 반면 상대방의 장점을 보고 부족한 점에 대하여는 위로와 격려를 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국가, 사회, 직장, 가정생활 모두 힘든 시기입니다. 서로 위로하고 배려하는 따뜻한 말 한마디! 지금 건네보면 어떨까요?

도움말 = 이인철 법무법인리 대표변호사


※[법알못]은 우리가 일상 속에서 피해를 당한 사연을 다양한 독자들과 나누는 코너입니다. 사건의 구체적 사실과 정황 등에 따라 법규정 해석에 대한 이견이 있을 수 있습니다. 답변은 일반적인 경우에 대한 변호사 소견으로, 답변과 관련하여 답변 변호사나 사업자의 법률적 책임이 없음을 알려드립니다. 갑질이나 각종 범죄 등으로 피해를 입었거나 고발하고픈 사연이 있다면 jebo@hankyung.com로 보내주세요. 아울러 특정인에 대한 비난과 욕설 등의 댓글은 명예훼손, 모욕이 될 수 있습니다.

이미나/김소연 한경닷컴 기자 sue123@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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