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보라의 공간] 레옹의 화분과 바이오필릭 디자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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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2020-08-17 17:14   수정 2020-08-19 09:42

[김보라의 공간] 레옹의 화분과 바이오필릭 디자인



영화 ‘레옹’의 두 주인공은 말 없는 킬러 레옹과 슬픔을 짊어진 12세 소녀 마틸다다. 그 사이를 이어주는 건 초록색 식물. 레옹은 아침에 일어나자마자 화분을 창가에 옮겨놓고 해가 지면 방 안으로 옮긴다. 틈 날 때마다 잎을 정성껏 닦는다. 집 밖에서도 한 팔에 꼭 껴안고 다닌다. 마치 또 다른 자신인 것처럼. 킬러가 사랑한 이 화분 오브제는 영화를 새 장르로 이끌었다. 붉은 피가 낭자하는 그냥 누아르를 마음이 따뜻해지는 아름다운 감성 누아르로 변화시켰다.

레옹의 이런 모습은 사실 우리 모두의 본능이다. 흙을 만지고, 햇빛과 나무를 가까이 할 때 더 행복해진다는 것은 수많은 연구가 증명했다.

의학 심리학자 요제프 빌헬름 에거는 빛이 오래전부터 인간의 기분에 직접 영향을 끼쳐왔다고 봤다. 격한 감정을 안정시키거나 우울할 때 적당히 끌어올리는 역할도 한다. 실제 공원 및 녹지를 내다볼 수 있는 환경에서 일하는 사람들은 아파서 결근하는 빈도가 낮다. 우리가 비행기 좌석을 예약하거나 카페 등 상업공간에서 자리를 찾을 때 창가를 선호하는 이유도 더 많은 햇빛, 더 많은 자연을 느끼기 위해서다.
밀레니얼 세대 강타한 '가드닝' 열풍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으로 인한 비자발적 고립은 사람들을 자연으로 이끌었다. 2020년 라이프스타일을 바꾼 큰 흐름 두 가지는 ‘캠핑 열풍’과 식물로 실내를 꾸미는 ‘플랜테리어’다. 캠핑카는 주문이 밀려 지금 주문해도 3개월을 더 기다려야 하고, 텐트는 품귀다. 캠핑 이용 인구는 이전보다 세 배 이상 늘어났다.



꼭 코로나19 때문은 아니다. 우리는 그동안 도시화를 향해 전속력으로 달리며 자연과 함께하는 삶을 유예해왔다. 한국의 도시화 비율은 80%를 넘는다. 아시아 평균(49.9%)보다 훨씬 높고, 미국 유럽과 비슷하다. 10명 중 8명이 도시에 몰려 사는 세상. 이런 삶에 이미 피로감을 느낀 20~30대는 식물에 열광하고 있다. 인스타그램 등 SNS에는 세계 사용자들의 식물 콘텐츠가 수년째 넘쳐 난다. #어반정글, #플랜테리어, #몬스테라먼데이 등 관련 해시태그가 인스타그램에만 매일 수백 장씩 올라온다. 식물을 가꾸는 영상과 사진만으로 성공한 개인이 늘면서 ‘플랜트플루언서’라는 용어도 등장했다. ‘할머니의 취미’로 여겨지던 가드닝은 요즘 미국, 북유럽을 넘어 러시아와 남미 등 전 세계 밀레니얼 세대 사이에서 가장 ‘힙한’ 취미가 됐다. 골목마다 있는 동네 화원들도 다시 활기를 띤다.
세계적 흐름 된 바이오필릭 디자인
공간과 도시 디자인의 흐름도 그렇다. 세계 건축가들의 머릿속엔 지금 ‘바이오필릭’이 있다. 바이오필릭의 원개념인 ‘바이오필리아’는 살아있는 모든 것을 사랑한다는 뜻이다. 1964년 심리학자 에리히 프롬이 처음 얘기했고, 1980년대 하버드대 사회생물학자 에드워드 윌슨으로 인해 널리 알려졌다. 윌슨은 이렇게 말한다.



“우리 유전자에는 생명을 사랑하는 본능이 새겨져 있다. 다른 동식물과 친밀하게 지내려는 선천적인 욕구는 우리 뇌가 짠 프로그램의 일부와 같다.”

바이오필릭 디자인은 녹색도시 및 친환경 도시 개념과는 다르다. 녹색도시가 에너지 효율성에 집중한다면 바이오필릭은 그 공간 안에 있는 사람들의 삶의 질, 그리고 구체적이고 지속 가능한 건강에 더 집중한다. 물과 공기, 햇빛과 동물까지 자연스럽게 실내 공간으로 끌어들이는 것이다.

서울보다 조금 큰 도시국가 싱가포르는 공공 녹지 비율이 48%다. 세계 도시 중 노르웨이의 오슬로 다음으로 높다. 녹색의 고층 빌딩, 바이오필릭 디자인을 적용한 건축물, 대규모 공원과 이를 유기적으로 연결한 도보길들은 도시 전체를 정원으로 바꿔놨다. 도시에 정원을 짓는다는 개념이 아니라 도시 전체를 정원으로 조성한다는 비전이 만든 결과다. 도시화는 일반적으로 녹지율을 떨어뜨린다. 하지만 싱가포르는 인구 증가, 도시화와 동시에 녹지 면적도 늘렸다. 미국 밀워키는 ‘크림 도시’에서 ‘초록 도시’로의 전환을 선언했고, 영국 버밍엄과 미국 포틀랜드도 비슷한 길을 걷고 있다.

destinybr@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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