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동빈의 '8·13 환국'과 롯데의 반격 [박동휘 기자의 컨슈머 리포트]

입력 2020-08-19 08:04   수정 2020-08-19 08:15

신동빈 롯데그룹 회장의 8월13일 ‘깜짝 인사’는 환국(換局)이라 할 만했다. 조선의 왕들은 정국 반전을 위해 집권당을 일거에 바꿨는데 사가(史家)들은 이를 환국이라 불렀다. 신 회장은 명실상부 롯데의 ‘2인자’로 불렸던 황각규 롯데지주 대표이사 부회장을 일선에서 물러나게 했다. ‘황각규의 사람들’이라고 평가받던 롯데지주 경영전략실 핵심 4인방도 계열사로 돌아갔다. 그룹 전체에 만연해 있던 ‘무사안일’의 기류를 누구도 예상치 못했던 인적 쇄신으로 반전시켰다는 점에서 일단은 효과를 거뒀다는 게 재계의 분석이다.

‘8·13 환국’의 배경에 관해선 그룹 내부에서도 여러 설(說)들이 많다. 일각에선 황 전 부회장(현 롯데지주 이사회 의장)이 선을 넘었고, 이에 대한 경질성 인사라는 해석까지 나올 정도다. 신 회장과 황 의장의 인연은 각별하다. 신 회장이 1990년 롯데그룹에 처음 ‘입사’한 곳이 호남석유화학이었고, 여기에서 황 부회장과 인연을 맺었다. 동갑내기이기도 한 두 사람은 평소에도 휴대폰으로 자주 연락할 사이일 만큼 의견을 자주 나눴다고 한다. 이 과정에서 일종의 ‘월권’이 있었을 것이라는 게 호사가들의 얘기다. 하지만 이는 말을 지어내기 좋아하는 이들의 얘기일 가능성이 높다. 황 부회장은 평소 수행원없이 다니는 등 겸손한 성품으로 사내에서 평판이 높다. 롯데 특유의 문화를 감안하면 그룹 오너에게 항명이나 월권을 한다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다.

신 회장이 창사 이래 처음으로 비정기 인사를 단행한 건 구조조정과 세대교체를 서둘러야 한다는 강력한 메시지로 해석될 수 있다. 후속 인사가 이를 보여준다. 황 전 부회장의 자리를 대신하기로 한 이동우 롯데지주 신임 사장의 역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이 사장은 롯데그룹 내에선 ‘미스터 꼼꼼’으로 불린다. 양복의 바지주름조차 한 치의 흩트러짐이 없을 정도라고 한다. 안살림을 챙기는데 탁월한 실력을 여러 차례 입증했다. 롯데의 계열사들이 최악의 실적을 기록한 것과 대조적으로 ‘이동우의 롯데하이마트’는 수익성 개선을 달성했다. 돈이 새는 구멍을 잘 막아냈다는 의미다.

이런 이유로 그룹 내부에선 ‘이동우의 첫번째 미션’은 그룹의 체질 개선이라는데 이견을 달지 않는다. 과감한 세대교체와 함께 각 사업부별 구조조정을 단행함으로써 모든 계열사들이 돈을 버는 구조를 만드는데 총력을 기울일 것이란 전망이다. 롯데쇼핑만 해도 올 2분기 영업이익이 전년 동기 대비 98.5% 급감했다. 매출이 9.2% 줄었는데 이익이 이토록 떨어진 건 두 가지로 해석할 수 있다. 올 2분기 영업환경이 실제로 최악이었거나 재무팀이 그동안엔 주가 급락을 막기 위해 대외용 ‘재무 화장(化粧)’을 해왔지만 이번엔 이를 모두 털어내기로 작정했다는 추론도 가능하다. 이유야 어찌됐건 백화점 출신 이동우 사장은 소매 유통업의 생리를 너무나도 잘 안다는 점에서 롯데쇼핑의 환부를 과감히 도려낼 것으로 예상된다.

롯데지주 경영혁신실의 변화도 주목해봐야 한다. 새로 실장을 맡은 이훈기 전무는 서울대 화학공학과 출신으로 1990년 호남석유화학에 입사했다. 신 회장과 ‘입사 동기’인 셈이다. 호남석화에서 그는 주로 신규 사업을 발굴하는 역할을 맡았다. 2010년엔 롯데케미칼 타이탄 대표를 맡으며 말레이시아에서 해외 사업을 주관하기도 했다. 롯데지주에 오기 직전엔 롯데가 KT로부터 인수한 롯데렌탈의 경영을 책임졌다. 신 회장이 롯데월드타워 18층 자신의 집무실 바로 옆에 67년생 ‘입사 동기’를 앉힌 건 황 부회장이 해왔던 M&A(인수·합병) 및 신사업 전략을 좀 더 ‘젊은 감각’으로 해보라는 의미일 수 있다.

경영혁신실에 8월13일 인사 직후 새로 들어온 두 명의 상무 프로필에서도 미래 먹거리를 찾기 위한 신 회장의 고민을 읽을 수 있다. 김승욱 상무와 서승욱 상무가 주인공으로 ‘외부 출신, 70년대생’이라는 점에서 파격적이라는 평가가 나온다. 김 상무는 1974년생으로 서울대 경영학과, 뉴욕대를 나와 사모펀드인 론스타코리아를 거쳐 롯데 미래전략연구소에 영입된 인물이다. 1977년생인 서상무는 스탠퍼드대학 출신으로 역시 미래전략연구소에서 이번에 롯데지주로 옮겼다. 그룹 관계자는 “미래 전략을 그리고 실행하기 위해 신 회장이 직접 전면에 나서는 것으로 해석할 수 있다”며 “이동우 사장이 흐트러진 그룹 기강을 바로잡고 수익성 개선에 주력한다면 신 회장은 젊은 경영혁신실을 통해 롯데의 비전을 찾겠다는 의지를 보인 것”이라고 설명했다.

신 회장은 지난 ‘잃어버린 5년’ 동안 경영 일선에서 사실상 물러나 있었다. 롯데는 2014년부터 경영진이 검찰에 수시로 불려가야 했다. 경영권 분쟁에다 신 회장의 법정 구속까지 이어졌다. 올 초부터 신 회장은 본격적으로 경영 현안을 챙기기 시작한 것으로 알려졌다. 임원 회의에서 발언 횟수와 발언 강도도 전례없이 많고, 강했다는 게 그룹 임원들의 한결같은 얘기다. 6월부터 총 13차례에 걸쳐 현장을 방문했다. 경쟁사의 HMR(가정간편식)을 주문해서 직접 시식해보고, 롯데쇼핑의 제품 품질에 대해 비판적인 평가를 했다고 한다. 4월 오픈한 롯데의 통합 온라인 쇼핑몰인 롯데온을 직접 사용해 보고, 개선점에 대해 따갑게 질책한 것으로 알려졌다. 신 회장이 직접 키를 잡은 롯데가 반격의 전열을 가다듬고 있다.

박동휘 기자 donghuip@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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