히트상품 너도나도 베끼기…'K푸드' 거저먹으려다 체합니다

입력 2020-08-24 17:28   수정 2020-09-28 16:42


“국내에서도 ‘원조’로서 지식재산권을 인정받지 못하는데 해외 짝퉁에 어떻게 대응합니까.”

한 식품 대기업 임원의 말이다. 그는 “지난해 중국 온라인 쇼핑몰에서 팔린 자사 짝퉁 제품이 수천 건에 달한다”고 하소연했다. 국내 식품업계는 수십 년간 ‘미투 제품’을 서로 눈감아줬다. 한 제품이 히트를 치면 비슷한 포장 디자인의 제품이 매대를 뒤덮었다.

최근 들어 분위기가 달라졌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를 계기로 K푸드 수출이 급증하자 이런 관행에 대한 문제의식이 커지기 시작했다. ‘1등 제품’으로 글로벌 도약을 꿈꾸는 식품회사들은 제품 포장 디자인 자산 보호를 위한 소송전에 대비해 ‘물밑 작업’을 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한 식품회사 관계자는 “이대로는 글로벌 시장에서 압도적 경쟁력을 갖기 어렵다고 판단해 법무팀 등을 중심으로 대응에 나섰다”고 말했다.
“K푸드 브랜드는 국가 자산”
올해 상반기 농식품 수출은 지난해보다 4.4% 증가한 36억784만달러(약 4조2880억원)로 사상 최대였다. 특히 라면, 김치, 쌀 가공식품 등 가공식품 수출 증가율이 두 자릿수를 기록했다. 코로나19로 집밥을 먹어야 했던 세계인들이 K푸드의 맛을 알아보기 시작했다. 농심과 CJ제일제당은 미국 등 해외법인에서 사상 최대 실적을 냈다. 풀무원도 중국 진출 10년, 미국 진출 29년 만에 첫 분기 흑자를 냈다.

K푸드 수출이 급증하자 짝퉁 제품에 대한 잘못된 관행을 바로잡아야 한다는 지적이 나오기 시작했다. 가장 최근 계기가 된 제품은 동원양반의 국물요리였다. 동원양반 신제품 포장 디자인이 비비고 국물요리와 비슷해 비비고 국물요리인 줄 알고 구매하는 사례가 나왔다. 실제 대형마트와 편의점에는 “C사 제품인 줄 알고 샀는데 집에 와서 보니 D사 제품이었다”며 환불이나 교환을 요구하는 사례가 많아졌다.

식품 포장 디자인은 첨단 전자기기 등에 비해 모방하기가 쉽다. 단가가 낮아 소비자가 잘못 인지해 유사 제품을 사더라도 크게 문제삼지 않았다. 식품업계는 “그럴 수도 있지”라며 짝퉁 제품에 적극적으로 대응하지 않았다.
네슬레는 져도 계속 싸운다
국내 법이 걸음마 단계란 것도 문제로 꼽힌다. CJ제일제당은 큰 용기에 요리를 넣고 그 위에 햇반을 얹은 형태의 ‘햇반컵반’을 2015년 첫 출시했다. 이후 동원, 오뚜기 등이 제품 패키지와 형태를 그대로 따라했다. 2017년 모방 가처분 신청을 제기했지만 기각됐다. 삼양식품도 팔도가 불낙볶음면을 내놨을 때 판매금지 가처분 소송을 제기했으나 기각됐다. 오리온 초코파이도 롯데의 상표 등록 문제 등을 제기했지만 패소했다.

글로벌 기업들은 다르다. 대표적인 예가 네슬레다. 스위스 식품업체 네슬레는 커피 브랜드 네스카페의 상징인 ‘레드컵’을 지키기 위해 수십 년째 16개국에서 소송을 하고 있다. 승률이 37%로 승소보다 패소 사례가 더 많지만 경쟁사에 경각심을 주고, 소비자에게 ‘네슬레의 디자인은 중요하다’는 인식을 심어주기 위해 소송을 멈추지 않는다. 미국 식품업체 크래프트도 과자 오레오의 카피 제품 때문에 10여 개 국가에서 소송전을 벌이고 있다.

박규원 브랜드디자인학회 이사장은 “식품 포장 디자인은 기업의 고유 자산일 뿐만 아니라 국가적 자산”이라며 “글로벌 시장에서 K푸드 브랜드를 보호하기 위해선 국내부터 포장 디자인 자산에 대한 인식을 바꿔야 한다”고 말했다.

김보라 기자 destinybr@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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