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우절 거짓말이었으면…사진에 담은 '코로나 공포'

입력 2020-08-26 16:45   수정 2020-08-27 10:17


오전 9시45분. 하얀 위생장갑을 낀 남자가 텅 빈 마트 주차장에서 카트를 밀고 장을 보러 간다. 매장의 상품 진열대는 텅 비어 있다. 남아 있는 물건이 별로 없다. 공포에 질린 사람들의 사재기 때문이다. 계산대에 앉아 있는 직원은 투명 아크릴 차단막 뒤에서 혹시나 있을지 모를 바이러스로부터 자신을 보호한다. 남자는 이 모든 상황 앞에서 절망과 공포를 느낀다.


네덜란드를 대표하는 사진작가 어윈 올라프(61)의 신작 ‘2020년 만우절(April fool 2020)’ 시리즈다. 올해 초부터 전 세계적으로 확산되고 있는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으로 인한 충격과 공포 속에서 작가 자신의 감정을 자화상처럼 담아낸 작품들이다. 제목은 말 그대로 이 모든 사태가 4월 1일 만우절의 장난기 섞인 거짓말이기를 바라는 마음을 담았다.

서울 삼청동 공근혜갤러리가 다음달 2~30일 올라프 개인전을 열고 신작 시리즈 10여 점을 소개한다. 지난 5월 젠박 개인전에 이은 ‘포스트 코로나’ 특별기획전의 두 번째 전시다.

올라프는 자신이 사는 암스테르담을 배경으로 한 작품에 직접 등장해 믿고 싶지 않은 현실의 풍경과 자신의 감정을 생생하게 전한다. ‘2020년 만우절’ 연작은 오전 9시15분부터 11시30분까지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 등장 인물은 모두 얼굴에 흰색 분을 잔뜩 바른 채 만우절 거짓말에 속아 바보가 돼 버린 광대 분장을 하고 있다.


오전 10시15분, 올라프는 암스테르담의 텅 빈 공원 벤치에 홀로 앉아 어깨를 늘어뜨리고 있다. 코로나19로 인해 거리두기를 하면서 격리된 우리 모두의 모습과 다르지 않다. 11시15분, 작업실로 돌아온 그는 자신의 모습을 담기 위한 촬영 작업을 한다. 카메라를 등지고 벽을 향해 구부정하게 서 있는 그의 그림자가 오히려 꼿꼿하다.


이번 전시에는 3개 패널로 이뤄진 비디오 영상 작품도 전시된다. 라디오를 통해 흘러나오는 다양한 언어의 뉴스들이 각국의 팬데믹(대유행) 상황을 긴박하게 전한다. 집안에 갇혀 홀로 식사하고, 드리웠던 커튼을 살짝 젖히고 창밖을 내려다보는 올라프의 얼굴에 불안과 수심이 가득하다. 이번 연작 전반을 지배하는 검푸른 빛은 전 세계인이 겪고 있는 ‘코로나 블루’를 상징한다. 그 안에는 졸지에 일상이 무너진 사람들의 불안과 두려움이 담겨 있다.


올라프는 공근혜갤러리를 통한 서면 인터뷰에서 “팬데믹이 발생한 첫 주 동안 미지의 것에 대한 전례 없는 두려움으로 거의 마비된 느낌이었다”고 털어놓았다. 사람들은 모두 벽 뒤로 숨었고, 전화를 걸어도 응답이 없었다고 한다. 그는 “전례 없는 이 공포를 담아낸 것이 이번 신작”이라며 “대머리 광대 화장과 뾰족한 고깔 모자는 요즘 느끼는 감정과 내 자신에게서 지금까지 본 적이 없던 감정을 상징한다”고 설명했다.


암스테르담을 기반으로 활동 중인 올라프는 사진기자로 일하다 작가로 전업했다. 수상 이력이 화려하다. 1988년 ‘체스맨(Chessman)’ 시리즈로 ‘젊은 유럽 사진작가상’을 받았고, 지난해에는 네덜란드 정부로부터 황금사자 기사 작위 훈장을 받았다. 파리 퐁피두미술관, 모스크바 현대미술관, 헤이그 시립미술관, 암스테르담 라익스 국립미술관 등 유럽 주요 미술관에서 개인전을 열어왔으며, 내년에는 뮌헨미술관, 코펜하겐 왕립도서관, 수원시립미술관에서 전시를 열 예정이다.

서화동 선임기자 fireboy@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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