UDT 꿈꾸던 20대, 물놀이 중 사망…유족 "다리 공사 때문"

입력 2020-08-27 10:49   수정 2020-08-27 17:08

지난 18일 전라북도 전주시 대성동 색장리에 있는 하천에서 물놀이를 하다 20대 남성이 숨지는 사고가 발생했다. 유족 측은 사고 원인이 한국도로공사가 발주한 공사 현장(시공사 대림산업)에 안전시설이 제대로 갖춰지지 않은 데 있다고 주장하고 있다. 한국도로공사와 대림산업 측은 개인 과실이라고 반박하고 있다.

사고는 새만금~전주 고속도로 건설을 위해 설치된 임시 다리(교량) 아래에서 일어났다. 전주에 사는 박모씨(24)는 이날 오후 12시30분쯤 친구 4명과 동네 인근의 전주천을 찾아 물놀이를 하던 도중 숨졌다. 깊이가 무릎 수준인 인근 하천과 달리 크게 패인 웅덩이에 빠지면서다.


경찰 조사결과 사고지점 수심은 성인 남성의 키를 훌쩍 넘는 2.5m에 달했다. 50㎝ 안팎인 주변 수심과 2m 가량 차이가 났다. 공사 현장에서 다리를 설치한 영향으로 특정 구역의 수심이 깊어졌을 거란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당시 박씨와 친구들은 이 웅덩이에 빠졌다. 다른 4명은 가까스로 웅덩이에서 빠져 나왔지만 박씨는 숨졌다. 이곳은 박씨 일행이 과거에도 종종 찾아 물놀이를 즐기던 곳이었다. 사고 현장에 있었던 박씨의 친구 A씨는 “여러 번 왔던 곳이고 수심이 얕은 줄 알고 있었다”고 진술한 것으로 알려졌다.
유족 “공사현장 안전시설 미흡”
유족 측은 이 웅덩이 주변에 ‘접근 금지’나 ‘안전 주의’를 알리는 표지판 등의 안전시설이 없었다는 점을 문제 삼고 있다. 박씨의 아버지 박제원씨(55)는 27일 한국경제신문과 인터뷰에서 “다리 밑 특정 구역에만 깊은 웅덩이가 파인 것은 공사 영향일 수 있다”며 “공사장 주변은 안전관리대책을 세우고 안전시설을 설치해야 하는 법령이 있는데도 이를 무시한 한국도로공사와 대림산업 측에 책임이 있다”고 주장했다.


건설기술진흥법(제99조 안전관리계획의 수립 기준)에 따르면 공사장 주변엔 안전관리대책을 수립하는 게 의무다. 안전관리계획에 따라 외부인의 출입을 통제하기 위해 주변에 차단시설, 접근금지 등을 알리는 안전시설을 설치해야 한다.

사고 현장에 다리가 지어진 것은 지난해 12월이다. 하지만 사고 당일까지 8개월이 넘도록 다리 아래 하천 인근에는 별도의 경고문이나 안전시설이 없었다. 사고 직후 경찰이 “다리 아래에서도 잘 보이도록 안전시설을 설치하라”고 한 뒤에야 20일께 다리 중앙 플래카드와 펜스 등을 마련했다.

박씨는 “위험하니 접근하지 말라는 최소한의 안전 표시만 있었어도 사고는 일어나지 않았을 것”이라며 “공사 발주처와 시공사의 안전불감증이 심각하다”고 토로했다. 전주 완산경찰서 관계자는 “해당 사고의 경위와 안전시설 미흡 등에 대해 조사하고 있다”고 말했다.
도로공사·대림산업 “개인 과실”
한국도로공사와 대림산업 측은 박씨의 개인 과실로 인한 사고라고 주장했다. 한국도로공사 측은 다리 공사현장 윗쪽 출입구에 외부인의 출입을 통제하기 위한 안전시설을 설치해놨기 때문에 문제가 없다는 입장이다. 한국도로공사 관계자는 “박씨의 사망 사고는 안타깝지만 공사 현장 관리에서 책임을 물을 사항은 없는 것 같다”고 말했다.

당시 이 안전시설은 다리 밑 하천가에선 육안으로 보이지 않았던 것으로 전해졌다. 대림산업 측은 “아파트 공장현장 같으면 펜스를 둘렀겠지만 물이 흐르는 하천에는 별도로 설치할 방안이 없었다”며 “장비가 왔다갔다하는데 (박씨 측이) 공사현장인 걸 몰랐겠느냐”고 했다.


한국도로공사와 대림산업 측은 장마철 집중호우로 웅덩이가 생겼을 가능성도 제기했다. 대림산업 관계자는 “폭우 때문에 평소보다 수위가 높아졌을 수도 있다”며 “다리 공사가 사고 원인이었는지는 경찰 조사 등을 통해 더 따져봐야 할 부분”이라고 말했다.

이같은 주장에 대해 박씨는 “물살이 빠르거나 압력이 세서 파였다면 왜 하필 다리 공사현장 바로 아래에만 생겼겠느냐”며 “자연적으로 생길 수준의 웅덩이가 아니라고 본다”고 반박했다. 박씨는 다리 공사과정에서 포크레인 등으로 이 곳을 파냈을 가능성도 언급했다. 박씨는 “공사 때문에 파헤쳤다면 매립을 해놨어야 하는 것 아니냐”고 덧붙였다.
“안전관리자도 없었다”
이 사고를 둘러싼 쟁점은 몇 가지 더 있다. 하나는 안전관리자 배치 문제다. 유족 측은 사고 당시 안전관리자가 없었다는 점도 문제를 삼고 있다. 박씨는 “공사 현장에는 안전관리자를 두는 게 마땅한데 기본적인 안전관리 시설을 제대로 갖추지 않았다”며 “시공사는 안전 의무를 소홀히 했고 발주처도 이를 제대로 관리감독하지 않았는데도 책임을 회피하려 한다”고 말했다.

산업안전보건법(제17조 안전관리자 등)에 따르면 공사 현장에는 안전관리자를 의무적으로 배치해야 한다. 한국도로공사 측은 “법령에 따라 해당 다리에는 안전관리자 3명을 배치하고 있었다”며 “사고 당일 안전관리자는 4.28㎞에 달하는 공사 현장을 순회하면서 점검 업무를 수행 중이었다”고 말했다.

더불어 사고 당시는 점심시간이어서 현장에 안전관리자가 없었다고 해명했다. 또 현장 인부들이 상주하다가 사고 당시 구조작업을 도왔기 때문에 사실상 안전관리자 역할을 했다고 한국도로공사 측은 주장했다. 당시 웅덩이에 빠진 박씨 일행 중 한 명은 인부가 구한 것으로 파악됐다.

또 한국도로공사 측은 박씨 일행이 사고당일 오전 8시30분 이곳에 도착했을 때 다리 위에서 일하던 인부 한 명이 “이쪽에 오지 말라”고 했다는 점에서 안전경고는 이뤄졌다고 설명했다. 박씨 일행은 당시 이 곳을 벗어나 인근에서 고기를 구워 먹으며 소주 6병을 마셨다고 했다. 이후 12시30분께 이곳 하천가를 다시 찾아 물놀이를 하다가 사고가 발생한 것이다. 이 점은 한국도로공사와 대림산업 측이 박씨의 과실을 주장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이에 대해 박씨 측은 “5명이서 소주 6병을 3시간 여에 걸쳐 나눠마셨기 때문에 음주로 인한 과실이라는 주장은 본질을 흐리는 것”이라고 말했다. 숨진 박씨의 평소 주량은 소주 3병이어서 당시 취해서 몸을 가누지 못할 상태가 아니었다고도 했다.

사고가 발생하고 4일 뒤인 22일엔 대림산업 측이 해당 웅덩이를 메우려다 현장 훼손을 우려한 유족 측의 반발로 물러서는 일도 있었다. 박씨는 “경찰 조사가 끝난 것도 아닌데 사고난 지점을 돌로 메우려고 하더라”며 “이날 현장에 갔다가 상황을 목격하고 중단을 요청했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대림산업 측은 2차 사고를 막기 위해 사고지점을 매립하는 게 좋겠다는 경찰의 지시에 따른 것이라고 했다.
UDT 꿈꾸던 20대 청년
숨진 박씨는 해군특수전전단(UDT)을 꿈꾼 것으로 전해졌다. 박씨는 “아들이 대학을 못 가고 고등학교 졸업 후 바로 군대를 다녀왔다”며 “지난 5월 제대를 하면서 올 가을에 UDT 시험을 보겠다고 하던 모습이 아직 생생하다”고 말했다. 그는 “열심히 해보겠다고 했는데”라고 말을 잇다가 울음을 터뜨렸다.

박씨는 “아들이 UDT가 되려면 시력이 좋아야 한다면서 지난달엔 라식 수술까지 했다”고 했다. 이어 “라식 수술 후 한 달 가량은 물에도 못 들어가다가 오랜만에 친구들이랑 놀러간 자리에서”라고 말하다 흐느꼈다.

박씨는 이날 사고 후 현장을 찾았다가 ‘얕은 수심’에 놀랐다고 했다. 누구나 쉽게 들어갈 만한 ‘개울’ 수준의 하천에서 이런 사고가 발생할 줄은 아무도 몰랐을 거라는 얘기다.

박씨는 “한국도로공사나 대림산업 어느 쪽도 사과를 하지 않았다”며 “공사 현장 안전시설 미흡으로 인해 발생한 사고를 ‘눈 가리고 아웅’하는 식의 행태를 이해할 수 없다”고 말했다. 그는 “책임자가 공식 사과하고 재발 방지 대책을 약속해야 한다”며 “전국 어느 곳에서도 안전시설이 미흡한 공사 현장이 있어선 안 된다”고 강조했다.

정지은 기자 jeong@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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