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품만 승승장구, '공포 소비'에 예물수요까지 몰린 한국

입력 2020-08-28 15:48   수정 2020-08-28 16:00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이 재확산되는 와중에도 해외 명품 브랜드들은 잇달아 가격을 올리고 있다. 소비자 물가가 하락하고 내수도 위축됐지만, 여전히 값비싼 명품을 사려는 사람들은 많다는 판단에서다. 다음달부터 가격을 올리는 브랜드는 까르띠에, 피아제, 오메가, 태그호이어, 프레드 등 한두 곳이 아니다. 가격이 오를수록 더 갖고 싶어하는 ‘베블런 효과’의 측면도 있지만, 공포감을 느낄 때 금처럼 고가의 재화를 소유하려는 심리가 커진 것으로 전문가들은 분석하고 있다.
명품만 '나홀로 호황'

까르띠에와 오메가, 프레드 등이 내달 1일부터 가격을 올리기로 한 데 이어 피아제, 태그호이어도 일부 제품 가격을 다음달 인상키로 했다. 이미 지난 25일부터는 티파니가 4~8%가량 인기 제품 판매가를 올렸다. 티파니는 올해 6월 일부 제품가를 7~11%가량 올린 데 이어 올해만 벌써 두 번째 인상이다. 다음달 1일엔 까르띠에가 시계 2%, 주얼리 4~6%가량 가격을 올리고, 오메가도 5%가량 올리기로 했다. 지난달엔 디올과 불가리가 가격을 인상했다. 올 들어서 가격 인상을 결정한 브랜드만 해도 샤넬, 고야드, 롤렉스, 루이비통, 셀린, 티파니 등 총 10여개에 달한다.

명품업체들은 특히 예물 수요가 몰리는 봄·가을로 인상 시기를 잡는다. 예물로 인기가 많은 까르띠에 ‘탱크 솔로’ 시계는 570만원에서 600만원으로 5.3% 오를 예정이다. 남성들이 선호하는 시계인 오메가 ‘씨마스터 다이버300’ 제품은 현재 650만원에서 670만원으로 3.1% 오른다. 커플링으로 인기가 많은 티파니 ‘밴드링’은 지난 24일까지만 해도 1620만원 했던 게 25일부턴 1750만원으로 8% 인상됐고, 1890만원짜리는 2090만원으로 200만원(10.6%)나 올랐다.

가격을 올려도 명품은 ‘나홀로 호황’이다. 주요 백화점마다 코로나19로 인해 남성복, 여성복, 액세서리, 아동복 모두 고전을 면치 못한 반면, 해외 명품 브랜드들만 두 자릿수 이상 상승세를 기록하고 있다. 롯데백화점에서 올해 7월까지 해외 명품 매출은 작년보다 19% 증가했고 코로나19가 재확산된 8월 들어선 28%로 증가율이 더 올랐다. 여성복과 남성복 매출은 올해 7월까지 각 -23%, -12%였다. 잡화(-20%), 식품(-28%) 등도 부진했다.

현대백화점에서도 올 초부터 이달 27일까지 명품 매출이 26% 올랐다. 같은 기간 영패션은 -13.1%, 아동복 -14%, 잡화 -12.3%를 기록한 것과 대조적이다. 신세계백화점에서도 이달 27일까지 명품 매출이 26.1% 오른 반면 여성패션은 -13.8%, 남성패션은 -12.2%로 역신장했다.

통계청에 따르면 지난달 생활물가지수는 전월 대비 0.5% 하락했고 작년과는 동일했다. 장마 등으로 인해 식품만 전년 대비 2.8%올랐고 식품 이외 제품들은 1.6% 하락했다. 내수가 침체된 가운데 명품 브랜드만 4~8%가량 가격을 올린 셈이다.
가격 인상에도 명품이 잘 팔리는 이유는 여러 가지다. 비싸질수록 갖고 싶어하는 사람들이 많고(베블런 효과), 코로나19로 위축됐던 소비심리가 갑자가 폭발하면서 ‘보복소비’ 현상까지 더해졌다. “더 비싼 값에 살 순 없다”, “수 십만원에서 수 백만원을 아낄 수 있다”며 “명품은 하루라도 먼저 사는 게 이득”이라는 인식이 퍼진 것이다. 계속 가격이 오를 거기 때문에 나중에 중고로 되팔아도 산 가격보다 비싸게 팔 수 있을 거란 기대심리도 깔려있다. ‘샤테크’(샤넬+재테크) ‘롤테크’ ‘까테크’처럼 재테크의 수단으로 명품을 사두려는 사람들도 많다.

네이버의 한 명품 정보공유 카페에는 자주 가는 백화점 매장 매니저가 알려줬다며 까르띠에, 오메가, 피아제 등 인기 브랜드 제품을 인상 전에 사야 한다는 공유 글이 여럿 올라와있다. 한 소비자는 지난 25일 가격 인상 직전에 티파니 빅토리아 키 펜던트를 1763만원에 샀다는 글을 올렸다. 25일부터 이 제품은 4.5% 오른 1842만원에 판매되고 있다. 다이아몬드가 박힌 티파니 링크팔찌는 535만원에서 581만원으로 8.6% 올랐다.


한국인들의 명품 사랑은 유별난 편이다. 글로벌 시장 조사기관 유로모니터에 따르면 올해 코로나19 여파로 중국(-22%)과 미국(-25%) 모두 명품 매출이 부진했다. 그로 인해 세계 럭셔리 시장 규모가 작년보다 18%가량 축소될 것으로 예상했지만, 명품 매출 규모 세계 8위인 한국은 -1%로 작년과 비슷할 것이란 전망을 내놨다.

결혼식을 취소하거나 작은 결혼식으로 올릴 수밖에 없게 된 신혼부부들도 명품 소비에 적극적으로 나서고 있다. 해외로 신혼여행도 못 가게 된 만큼 예물만큼은 좋은 걸로 하자는 심리가 작용한 것이다. 이들은 각 백화점의 상품권 이벤트와 웨딩 프로모션 등을 비교해가며 혼수 관련 카페에서 정보를 공유하고 있다.

코로나19로 인한 사망자가 급증한 것도 공포 소비를 부추겼다는 분석이다. SK증권 리포트에 따르면 사람들이 죽음에 대한 두려움, 불안 등을 경험했을 때 럭셔리 브랜드에 대한 선호도가 올라간 것으로 조사(펜실베니아대학 테러 마케팅 논문)됐다. 생명이 위협받을수록 자기애가 강하게 작용하면서 사치재인 럭셔리 제품을 소비한다는 것이다. 실제로 코로나19가 시작된 올해 1분기에 명품 온라인 플랫폼인 파페치의 매출은 작년보다 45%나 늘었다.

전영현 SK증권 연구원은 “명품 소비에는 이성적 판단보다 심리적 요인이 더 크게 작용한다”며 “죽음에 대한 공포, 신변에 대한 위협을 느낀 뒤엔 럭셔리 브랜드 소비에 지갑을 여는 현상이 한국에서도 벌어지는 것”이라고 분석했다.

민지혜 기자 spop@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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