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한국에서 기업하는 죄

입력 2020-09-01 17:52   수정 2020-09-02 00:14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과 삼성그룹 전·현직 핵심 간부들에 대한 기소는 ‘정치 늪’에 빠진 검찰의 현주소를 여실히 보여준다. 엄정한 법치 집행자로서 당연히 갖춰야 할 최소한의 논리가 빠진 공허한 주장을 늘어놓은 검찰의 행태가 안쓰럽기까지 하다.

검찰은 장고 끝에 기소결정을 내리면서 “자본시장법상 부정거래행위 및 시세조종, 업무상 배임 등에 대한 객관적 증거가 명백하다”고 강조했다. 경영권 승계를 위해 치밀한 계획 아래 제일모직과 삼성물산을 합병하고, 삼성바이오로직스(삼바)의 분식회계를 감행했다는 주장이다. 실소를 금할 수 없다. 수사 투명성과 공정성 확보를 위해 2년 전 스스로 설치한 ‘수사심의위원회’가 불기소를 권고한 게 불과 두 달 전이다. 수사심의위는 당시 압도적 표결로 수사 중단까지 권고했다. 이후 어떤 추가 사실도 나오지 않았는데 “증거가 명백하다”며 기소한 것은 검찰권 남용이다. 실형이 많은 배임죄까지 추가해 글로벌 기업의 사법 리스크를 증폭시켰다.

검찰 수사의 부실은 법원도 인정하고 있다. 삼바 분식회계를 주도한 혐의를 받는 회사 대표의 구속영장이 두 번이나 기각된 게 대표적이다. 대표의 분식 혐의가 인정되지 않는데도 그 상급자가 범죄를 지시했다는 주장은 비논리적이다. 검찰은 삼바가 ‘장부가 3000억원’인 회사의 가치를 시가평가를 통해 4조8000억원으로 높인 것을 분식이라 강조한다. 하지만 삼바의 현재 시가총액은 52조원이다. 이 정도면 기업가치를 4조8000억원으로 평가한 것은 오히려 ‘역(逆)분식’으로 봐야 할 정도다.

비상식적 기소는 ‘삼성을 겨냥한 모종의 정치적 음모가 있나’ 하는 의구심마저 부른다. 여당이 최근 발의한 보험업법 개정안도 수상하다. 보험사가 보유한 계열사 지분의 가치평가를 현행 ‘취득원가’에서 ‘시가’로 변경하는 내용의 이 법안이 발효되면 삼성의 지배구조에 큰 변화가 예상된다. 현재 20% 선인 삼성전자에 대한 오너 일가의 지배력이 절반으로 뚝 떨어져 국민연금(11.1%)보다 낮아진다. KT와 포스코처럼 ‘주인 없는 기업’이 될 개연성이 높아지는 것이다. 기업경영에 과도하게 개입한다는 지적을 받는 국민연금의 스튜어드십 코드 확대, 금융그룹감독법 제정 등 행정부의 행보에 비춰 꺼림직한 대목이다.

삼성뿐만이 아니다. 많은 기업과 기업인들이 ‘큰 기업을 일군 죄’ ‘한국에서 기업하는 죄’에 시달리고 있다. 상법·공정거래법 등 기업에 족쇄를 채우기 위한 규제법이 속도를 내고 있다. 경제 관련 법령 처벌조항의 83%가 기업과 함께 기업주를 처벌하는 양벌(兩罰)규정이다. ‘유전유죄(有錢有罪)’ ‘기업 성악설’ 같은 편견이 만연한 나라에서 어떻게 경제가 발전하고 국민 삶이 나아질 수 있겠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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