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한카드, 임금·소비마마·후궁 병원비…참신한 언어유희로 눈길 끈 '신한 페이판'

입력 2020-09-02 15:23   수정 2020-09-02 15:26


사극은 패러디와 풍자를 위한 최적의 장르다. 조금 더 확장하면 사극과 공상과학(SF) 영화는 본질적으로 비슷하다. 여기가 아닌 어딘가, 지금이 아닌 언젠가를 무대로 하는 이유는 현실에서는 다소 하기 힘든 이야기나 표현하기 힘든 것들도 제한 없이 마음껏 펼칠 수 있기 때문이다. 그곳이 미래인지 과거인지는 중요한 문제가 아니다. 무대를 다른 시공간으로 옮겼을 때 진짜 주인공은 다름 아닌 무대 그 자체이기 때문이다.

신한카드의 디지털 서비스 ‘신한페이판’ 광고는 이 점을 영리하게 활용한 풍자적인 광고다. 신한페이판은 신한카드의 간편결제 서비스인 ‘FAN페이’를 기반으로 한 금융 서비스다. 다른 서비스에 비해 도드라지는 점은 단순히 결제 서비스만 제공하는 것을 넘어 개인 자산관리사와 같은 역할도 수행한다는 것이다. ‘MY 리포트’ ‘소비 패턴 분석’ 등을 통해 현명한 소비를 돕는 생활밀착형 자산 플랫폼이다. 다소 딱딱할 수 있는 이런 정보를 광고는 사극의 풍자와 유머 코드로 부드럽고 재밌게 녹여낸다.

조선의 구중궁궐, 집무를 보는 편전에 임금이 행차한다. “주상전하 납시오”라는 외침에 편전에 먼저 와 있는 소비마마가 눈을 흘겨보며 임금을 맞이한다. 한눈에 봐도 임금과 소비마마는 대립 관계다. 임금은 사치스럽게 꾸며진 편전을 보면서 소비마마를 비판하고, 소비마마는 “왕실의 위엄을 위한 것”이란 명분을 내세운다. 임금은 “이렇게 막 나가시면 다른 비들은 어쩌라고 그러십니까”라고 다그치고 이어 줄줄이 비들의 모습이 등장한다. 골골 앓는 병원비, 꾸벅꾸벅 졸면서 홀로 공부 중인 교육비, 자린고비처럼 생선 매달아놓고 고봉밥을 먹고 있는 외식비까지. 이쯤 되면 사극을 빌린 이 광고가 어디로 향하는지 명확히 보인다. ‘신한페이판’ 광고는 조선시대 사극의 시공간을 빌려 언어유희로 우리를 즐겁게 하는 기발한 풍자물이다.

‘신한페이판 궁중소비실록’의 접근 방식은 간단하다. 동음이의어를 통한 말장난으로 임금, 비용, 자산관리 등을 의인화하는 것이다. 이를 통해 정보를 빠르고 정확하게 전달할 수 있을 뿐 아니라 유머 코드로 소비자의 시선도 붙들어 둔다. 왕을 뜻하는 ‘임금’은 월급을 뜻하는 임금(賃金)과 같다. 왕의 부인을 지칭하는 ‘비(妃)’는 여러 가지 비용을 뜻하는 말인 비(費)와 겹쳐진다.

소비마마는 문자 그대로 제어 불가능한 ‘소비’에 빠진 분이다. 윗사람이 소비에 빠져 있으니 밑에 있는 병원비, 교육비, 외식비 등 상식적으로 우선순위 앞에 놓여야 할 존재들이 줄줄이 힘들어 한다. 해외 직구로 택배원 존까지 등장할 지경에 놓이자 도저히 자신만의 힘으로 관리가 힘들어진 임금은 관리들을 부른다. 이윽고 임금의 명으로 소환된 자산관리, 예산관리, 신용관리, 주간관리, 혜택관리 등 관리들의 면면이 화면 위에 자막으로 박힌다. 관리들이 소비마마의 소비 행태를 ‘뼈 때리는 팩트 폭력’으로 지적한 뒤, 드디어 등장하는 훤칠한 외모의 젊은 관리. 그가 바로 우리의 무분별한 소비생활을 바로잡아 줄 ‘신, 한페이판’이다.

패러디와 풍자가 위력을 발휘하려면 진지해야 한다. 세계관 안에서 역할을 수행하는 이들이 진지하면 진지할수록 풍자를 통한 묘사 자체가 웃음을 이끌어 내는 법이다. 신한페이판의 광고는 이 점을 정확하게 공략한다. 임금과 비의 갈등, 이를 바로잡는 관리들이 조언하는 상황은 마치 정극에 가깝게 그려진다. 특히 장영남 배우(소비마마 역)의 연기는 신의 한수다. 강렬한 카리스마를 지닌 역할을 자주 소화했던 장영남 배우가 진지하고 무거운 연기를 펼칠수록 시청자는 이 쓸데없이 심각한 상황을 재미있게 즐길 수 있다.

물론 소비마마의 화려한 구두나 임금님의 에어 운동화, 시대에 맞지 않는 해외 배송 택배원처럼 사이마다 깨알 같은 개그 코드를 적재적소에 배치하는 호흡도 잊지 않는다. 다소 복잡하고 어려울 수 있는 정보를 쉽고 친절하게 전달할 비유법으로는 웃음과 풍자만한 마법의 무대도 없다.

송경원 < 영화칼럼니스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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