별 보기가 힘든 여름이었다. 8월 하순, 태풍이 오기 전 짧게 하늘이 걷혔다. 여름 내내 거의 보지 못하던 은하수가 밝게 떴고, 오른쪽으로 낮게 전갈자리가 멋진 모습을 보였다. 왼쪽으로는 궁수자리와 그 아래 희미한 왕관자리가 보였고, 밝은 목성과 토성이 눈길을 끌었다. 머리 위로 견우와 직녀를 찾을 수 있었고, 북쪽 하늘엔 북극성을 두고 좌우로 북두칠성과 카시오페이아자리가 뚜렷이 보였다. 이제 곧 가을로 넘어가면 카시오페이아자리가 더 높게 떠오르고, 안드로메다은하도 훨씬 쉽게 찾을 수 있을 것이다.8월이 지나도 후텁지근한 날이 계속되니 여름이 지난 건지 모호하다. 재확산하고 있는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과 관련된 여러 소식은 무더위를 더 크게 느끼게 하는 듯하다. 그래도 1100m 고지의 보현산천문대에는 억새가 펴서 하얗게 변하기 시작했고, 곧 산의 푸른색도 변해서 아래로 내려가기 시작할 것이다. 그러면 화창한 가을 풍경은 제쳐두고 다가올 겨울을 생각한다. 눈 덮인 도로를 어렵게 오르내려야 하고, 아주 낮은 기온은 장비가 오작동하게 만들기도 한다. 그래서 미리부터 마음을 다잡는다.

첨단 장비를 다루는 천문대지만 의외로 단순 노동력이 많이 든다. 증착하기 위해서는 반사거울 표면을 중성 세제로 씻어낸 후 전 직원이 빙 둘러서서 천이나 전용 세척 종이로 열심히 닦는다. 닦는 과정에 땀이 맺혀 한 방울이라도 표면에 떨어지면 처음부터 다시 해야 한다. 한 시간 반 이상 씻고 닦은 뒤 크레인으로 들어서 증착기에 넣어 알루미늄을 입힌다. 1.8m 거울은 무게가 중형승용차 무게인 1.5t이나 돼 다루기가 여간 어렵지 않다. 한여름에 습도를 낮추기 위해 바깥보다 조금 더 기온을 높여야 하는 증착실에서 먼지와 침방울이 튀는 걸 예방하기 위해 방진복을 입기도 하고, 마스크와 모자, 장갑까지 무장하고 작업을 하니 끝나고 나면 땀에 흠뻑 젖는다. 짧은 시간이지만 감염병 현장에 있는 의료진의 고충을 우리는 이미 몸으로 체득하고 있는 셈이다. 그래서 몇 배로 감사함을 더 느낀다.
주경과 부경의 재증착과는 별개로 망원경 본체도 분해해 구동 모터와 구석구석 모두를 점검하고, 필요하면 내부의 여러 선을 교체하기도 한다. 관측 기간에는 할 수 없는 관측기기의 점검과 개선도 이 기간에 모아서 한다. 1년간 묵힌 돔 내부 청소도 빼놓을 수 없는 작업이다.
보통 8월 초순이면 끝날 작업이 올해는 월말까지 이어졌다. 태풍 매미가 보현산을 초토화할 당시엔 9월 하순까지 망원경 정비의 마지막 작업을 못 하기도 했다. 올해는 그래도 정상적으로 마무리한 셈이다. 긴 여름의 정기 점검으로 1.8m 망원경이 별과 함께 다시 움직인다.
전영범 < 한국천문연구원 책임연구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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