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나 매각 17개월 만에 결렬…코로나에 불신·불통 겹쳤다 [마켓인사이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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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2020-09-03 16:01   수정 2020-09-03 16:14

아시아나 매각 17개월 만에 결렬…코로나에 불신·불통 겹쳤다 [마켓인사이트]

≪이 기사는 09월03일(15:51) 자본시장의 혜안 ‘마켓인사이트’에 게재된 기사입니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 이후의 아시아나항공은 HDC현대산업개발에게 버거운 물건이었다. 정몽규 HDC그룹 회장의 아시아나항공 인수 의지는 강했다. 하지만 코로나19로 인해 비행기가 뜨지 못하게 된 지 벌써 7개월이 돼 가고, 언제 다시 원래의 운항을 회복할지 장담할 수 없는 상황에서는 섣불리 인수하겠다는 말을 꺼낼 수가 없었다. HDC그룹의 '모빌리티 그룹'으로의 전환 꿈은 당분간 뒤로 미뤄질 전망이다.

3일 정부 및 채권단 관계자들에 따르면 계약 당사자인 금호산업과 아시아나항공은 HDC현대산업개발에 조만간 계약 해제를 통보할 계획이다. 통보 시점은 기간산업안정기금 신청 문제와 맞물려 다소 유동적이다. 이르면 이번주가 될 수도 있지만, 다음 주 중일 가능성도 높다.

기간산업안정기금 운용위원회 위원들이 아시아나항공 지원에 동의해야 하는데 아직 중지가 모이지 않아서다. 위원 중 일부는 쌍용차처럼 '원래 어려운 기업'을 지원하는 것은 기금 취지에 맞지 않는다는 점을 지적하고 있다. 하지만 코로나19 이후 항공업이 직격탄을 맞은 것은 명백한 만큼, 다소 진통을 겪더라도 지원 자체가 무산되지는 않으리라는 전망이 많다.

◆17개월간의 1차 매각전 '수포'

작년 4월부터 1년 5개월간 끌어 온 아시아나 1차 매각전은 결실을 맺지 못한 채 끝나게 됐다. 아시아나항공이 매물로 나온 것은 박삼구 전 금호아시아나그룹 회장의 '그룹 재건'이라는 꿈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글로벌 금융위기 전 대한통운과 대우건설을 인수하며 덩치를 불렸던 금호그룹은 금융위기 후 어려움을 겪고 채권단 관리체제에 들어갔다.

주요 기업들이 채권단 관리를 하나 둘 벗어나며 박 전 회장은 금호의 전성기를 되살리고 싶어했고, 아시아나항공의 각종 자산을 지렛대 삼아 그룹 재건을 시도했다. 30년 기내식 사업권 매각이나 금호터미널의 소유주 변경 등이 이런 맥락에서 이뤄졌다.

하지만 2019년 초, 금호아시아나그룹은 이런 저런 채무 상환에 다시 한 번 몰리는 처지가 됐다. 박 전 회장 일가-금호고속-금호산업-아시아나항공으로 이어지는 지배구조에서 아시아나항공을 팔라는 이동걸 산은 회장의 압박이 강하게 들어왔다. 대신 금호산업이 자발적으로 아시아나항공을 파는 형식을 취함으로써, 금호산업이 보유한 구주(31.07%)에 대한 가치를 받아갈 수 있도록 구조를 짰다.

이 회장은 직접 대기업들을 접촉해서 아시아나항공 인수전 참여를 독려하는 등 노력했다. 애경그룹-스톤브릿지캐피탈 컨소시엄과 HDC현산-미래에셋대우 컨소시엄이 최종 본입찰에서 겨뤘다. 결과는 HDC현산 컨소시엄의 압승이었다. 2조5000억원 가량을 써내 1조원 이상 경쟁자를 따돌렸다. 구주 값 3228억원과 신주 유상증자 2조1771억원을 적었다.

◆'모빌리티 꿈' 접어넣은 HDC그룹

작년 11월 8일 본입찰에서 승리한 뒤 정몽규 HDC그룹 회장은 직접 기자회견을 열어 '모빌리티 회사'로 가겠다고 발표했다. '포니 정'으로 불렸던 부친 정세영 회장의 스토리와, 30대 초반에 현대자동차 회장 자리에 올랐다가 물러난 정 회장의 이야기가 다시 한 번 언론에 크게 다뤄졌다.

정 회장은 이 자리에서 인수전을 이끌었던 주역을 일일이 소개했고, 곧이어 연말 연초에는 이들을 핵심 보직으로 승진 발령했다. HDC그룹의 가장 우수한 인재들을 모아 아시아나항공 인수단으로 파견했다. 금호아시아나그룹에서 구주 가격을 더 쳐달라고 계속 요청하자 작년 11월 정 회장이 직접 이동걸 산은 회장을 찾아가 '안 된다'고 잘라 말하고 돌아온 일도 있었다.



HDC현산이 외부와 소통을 급격히 줄이기 시작한 것은 코로나19가 본격화된 지 한참 후인 4월초부터였다. 아시아나항공의 부채 규모가 갑자기 4조5000억원 늘어난 것으로 나타났다. 외부에서는 잘 이해하지 못하는 부분이지만, 당시 HDC그룹 내 충격은 대단히 컸다. 이때부터 '내용증명 커뮤니케이션'이 시작됐다.

HDC현산이 인수의지가 없다, 정몽규 회장의 인수 의지가 없다는 불만이 산은 안팎에서 끝없이 쏟아져 나왔다. '살 생각도 없으면서 계약금 떼이는 게 싫어서' 내용증명을 발송한다고들 생각했다. 정부와 채권단이 가장 싫어하는 커뮤니케이션 방식이었다.

외부에선 정 회장이 인수 의지가 없다고들 했지만, 정 회장과 가장 가까운 이들의 전언은 반대였다. '아시아나항공을 정말 갖고 싶어한다'는 쪽이었다. 사는 쪽은 살 생각이 있었고 파는 쪽은 가격 등 모든 조건을 맞춰줄 의사가 있었다.

◆'계약해제 통보' 압박, 이번이 3번째

그런데 왜 일이 잘 되지 않았을까? 직접적인 요인은 물론 코로나19였다. 지난 1분기 연결기준 아시아나항공의 영업손실은 2920억원, 당기순손실은 6832억원에 달했다. HDC현산의 지난해 영업이익이 5514억원이었다. HDC현산이 한 해 농사지은 결과물을 아시아나항공은 한 분기에 쉽사리 털어먹는다는 생각이 들 수 밖에 없었다. HDC 내에선 “우리가 너무 왜소하게 느껴진다”는 표현들이 나왔다.

여기에 금호아시아나그룹에 대한 불신이 겹쳤다. HDC현산은 지난 4월부터 계속 금호산업과 아시아나항공에 요청한 자료를 제대로 받지 못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특별히 인수 의지를 어필하지 않았다.

채권단은 몇 차례에 걸쳐서 HDC현산을 압박했다. 가장 먼저 '계약해제'를 논한 것은 6월초였다. "안 할 거면 빨리 말하라"며 "6월27일까지 의사를 밝히라"고 요구하자, 6월9일 HDC현산은 "인수 의지가 있지만 재협상을 원한다"는 보도자료를 냈다.

4월 이후 약 약 2달 넘게 지속된 침묵을 깬 자료였다. 이 자료에서 HDC현산은 속내를 비교적 솔직하게 밝혔다. 특히 회계적인 문제를 강조했다. "(계약일로부터) 불과 5개월도 지나지 않았지만 아시아나항공은 계약 체결 당시와 비교해 작년 말 기준 2조8000억원의 부채가 추가로 인식되고, 1조7000억원 추가 차입으로 부채가 무려 4조5000억원 증가했다"는 점을 문제로 지목했다. HDC현산은 여전히 금호그룹의 회계관리 등 아시아나항공 내에 인수를 가로막는 수많은 지뢰밭이 있다고 보고 있다. 한마디로 '불신'이다.

또 HDC현산은 당시 보도자료에서 채권단에 대한 불신도 표현했다. "아시아나항공이 지난 4월21일 (항공업 지원을 위한) 긴급자금 1조7000억원 추가 차입 등을 통보만 하고 사전 동의 없이 다음날 이사회에서 이를 승인했다"고 지적한 대목이다. 정 회장은 이 문제에 대해서도 크게 화를 낸 것으로 알려졌다. 사는 사람이 정해져 있는데 적어도 이렇게 하겠다는 언질은 줬어야 하는 것 아니냐는 얘기다. 게다가 당시엔 영구채 규모가 정해지지 않았고, 전환사채 형태의 영구채인데 향후 주식으로의 전환 단가 등에 대해서도 전혀 정보가 없었다는 게 HDC현산 설명이다.

◆ 코로나19에 금호 불신까지

이에 대해 채권단이나 금호아시아나그룹 반응은 HDC현산 입장을 이해하기보다는 "황당하다"는 쪽이었다. 리스회계 변경 등 대부분 설명가능한 변화이며, 영구채 지원을 하지 않으면 회사를 죽일 작정이냐는 것이다. HDC현산 역시 회계를 몰라서 하는 얘기는 아니었지만, 서로 보는 지점이 너무 벌어졌다. 6월25일 정 회장과 이 회장이 만났으나 특별한 진전은 없었다.

두 번째 압박은 7월 중순에 있었다. 마지막 걸림돌로 꼽혔던 러시아 정부의 기업결합심사가 7월 초 마무리됐기 때문이었다. 금호산업은 7월14일자로 선행조건이 다 충족됐으니 조금 기다려주더라도 8월12일까지는 계약을 이행하라고 통보했다. 물론 이는 이행되지 않았고, 8월26일 정 회장과 이 회장의 회담으로 다시 이어졌다. 그리고 9월 초, 채권단은 계약해제를 통보하겠다는 뜻을 세 번째로 밝혔다. 이번엔 위협이 아니다. HDC현산에서 특별한 행동을 취하지 않는 이상 실행에 옮겨질 예정이다.

양측의 접점은 지난 5개월 내내 거의 좁혀지지 않았다. 게다가 이해 당사자가 너무 많았다. 금호산업, 아시아나항공, 산업은행, 그 위에 금융위, 그 위에 청와대 모두가 이해 당사자였다. 김현미 국토교통부 장관이 뜬금없이 정 회장을 불러서 인수를 당부하고 보도자료를 배포한 일도 있었다. HDC현산으로서는 대하기 어려운 상대였을 것이다. 이해 당사자가 많고 서로 오해가 잦았던 것은 HDC현산 측이 내용증명 커뮤니케이션을 택한 이유 중 하나이기도 했다. 반대로 보면, HDC그룹에 이런 상황을 잘 다룰 만한 역량이 부족했다고 볼 수도 있다.

◆ 채권단, 즉각 재매각 시도할 듯

채권단은 마지막까지 딜이 마무리 될 수 있도록 상당히 노력한 편이다. 1조5000억원씩 공동으로 유상증자에 참여하자는 제안 등은 이 회장의 배짱 아니면 산은이 먼저 제시하기 쉽지 않은 것이었다. 일을 성사시키는 것보다 특혜 시비를 두려워하는 게 공공기관의 속성이다.

하지만 주는 쪽에서 생각하는 제안의 가치와 받는 쪽에서 생각하는 제안의 가치는 서로 달랐다. HDC그룹은 지난달 26일 정 회장과 이 회장의 회동 이후 수없이 회의를 열어 고민을 했던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다시 한 번 재실사 요구를 하는 것 외에는 별다른 결론을 내지 못했다. 사실상 ‘계약해제 통보를 받더라도 할 수 없다’는 쪽에 가깝다. 계약해제 통보를 먼저 내지 않은 이상 향후 소송전에서 유리한 위치를 점할 수 있다는 계산도 없지는 않을 것이다.

계약해제 통보가 이뤄지면 이후 양측의 소송전이 불가피하다. HDC현산 측에서는 계약금을 돌려달라고 할 수도 있고, 계약 대상자의 지위를 부당하게 박탈당했다고 주장할 수도 있다. 채권단은 즉각 재매각을 시도할 것으로 예상된다. 아시아나항공을 운영하는 일이 다른 기업과 달리 상당히 까다롭고, 채권단 관리가 길어지는 것을 꺼리는 이 회장의 평소 방침도 있어서다.

아예 처음부터 아시아나항공을 채권단이 맡아서 운영하거나 법정관리를 보내서 채무를 대규모로 탕감하는 등 '전통적인' 구조조정을 했어야 했다는 의견도 있다. 이 경우에는 이해당사자를 줄이고, 처음부터 구주 매각 등은 제외한 채 '깔끔한 거래'를 할 수 있었을 것이다. 부채 규모를 줄이고 기존 관행과의 절연도 확실히 이뤄졌을 수 있다. 하지만 코로나19로 인한 타격이 직접적인 결렬의 원인 중 하나인 만큼, 이렇게 했더라도 딜이 성사되지 않았을 가능성은 여전히 있다.

이상은 기자 selee@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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