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 돈 풀기에 미래 수익률 떨어지는 역설 [노경목의 미래노트]

입력 2020-09-05 03:23   수정 2020-09-05 09:40


신종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확산 이후 각국 정부와 중앙은행은 자국 주요 기업의 파산을 사실상 중지시켰다. 경영 사정이 어려워진 기업들이 필요한만큼 자금을 조달할 수 있도록 하고 있기 때문이다.

미국 중앙은행(Fed)은 직접 어려워진 기업들의 회사채를 매입해 자금을 수혈한다. 한국 정부와 한국은행은 금융기관과 채권시장에 자금을 공급하는 방식으로 기업 도산을 막고 있다.

하지만 이같은 정책은 코로나가 물러간 이후 경제 회복 속도를 늦출 수 있다. 경기 불황기에 나타나는 부실 기업 도산과 산업 구조조정이 일어나지 않으면서 기업 전반의 수익률 상승폭도 줄어들 것이기 때문이다.
실적 악화에도 재무안정성 올라가는 수수께끼
파이낸셜타임스(FT)는 최근 흥미로운 지표를 공개했다. 코로나19로 미국 S&P500을 구성하는 기업들의 이익률이 크게 줄었지만, 자체 평가 결과 재무건전성은 오히려 좋아진 것으로 나타났다.

구체적으로 S&P500 기업들의 법인세 부과 이전 이익은 올해 상반기에 전년 동기 대비 26% 감소했다. 하지만 FT의 재무 안정성 평가에서 긍정적인 점수를 받은 기업들의 비중은 같은 기간 3%포인트 늘어나 59%에 이르렀다.

실제로 이들 기업들은 수익 감소에도 보유 현금이 늘었다. 지난 6월말 기준 S&P500 기업들 중 비금융 회사들의 현금 보유고는 1조3500억달러로 작년 연말 대비 39% 증가했다.

기업 실적과 재무 안정성이 따로 노는 대표적인 예가 디즈니다. 팬데믹으로 리조트와 테마파크 운영이 중단되며 이 회사는 2분기에 50억달러의 손실을 입었다. 하지만 자금 시장에서 110억달러의 현금을 수혈해 재무건전성은 오히려 높아졌다.

이는 앞서 이야기한 정부와 중앙은행의 유동성 공급 정책 때문이다. Fed는 지난 3월 회사채를 직접 매입해주기로 한 이래 1조2500억달러를 관련 시장에 풀었다. 보잉이 250억달러, 포드가 80억달러의 자금을 여기서 조달했다.

한국도 상황은 크게 다르지 않다. 올해 상반기 코스피 상장사들의 영업이익률은 전년 동기 대비 37% 감소했지만 기업들에 수혈되는 돈을 늘었다. 금융감독원에 따르면 상반기에 발행된 비금융사 회사채는 27조7720억원으로 전년 동기 대비 7.8% 증가했다.
돈풀기에 기업 구조조정 지연
하지만 코로나19의 타격을 입은 세계 경제의 회복이 예상보다 지연되면서 이같은 현금이 기업들의 성장동력으로 기능하기는 어려울 전망이다. 신용평가기관 S&P에 따르면 미국 부실회사채의 부도위험률은 내년 3월 15.5%까지 올라 글로벌 금융위기가 있었던 2009년 이후 최대치를 기록할 전망이다.

한국도 신용등급이 강등되는 기업이 늘고 있다. 한국기업평가에 따르면 평가대상 381개 기업 중 올해 상반기 신용등급이 하락한 기업은 20개로 등급 상승기업의 5배였다.

기업들에 대한 자금 공급으로 본격적인 구조조정이 이뤄지지 않는 가운데 미약한 성장세가 이어지면서 좀비 기업들이 크게 증가할 전망이다. S&P는 올해 6월을 기준으로 세계 부실기업의 15%가 디폴트 수준에 근접하고 있는 것으로 평가했다.

불확실성을 대비해 기업들이 현금을 조달하고 있지만 지속되는 불경기로 이같은 자금이 현재의 경영 안정성을 유지하는 데에만 사용되고 있다. 평상시였으면 퇴출됐을 기업들이 유동성 축제 속에 살아남아 같은 업종 내 다른 기업들의 수익 창출 능력도 떨어뜨리는 상황이다.
내년 이후 증시에 부담으로 작용할 수도
그렇다고 산업 내 구조조정을 위해 각국 정부와 중앙은행에 돈풀기를 중단하라고 요구할 수도 없다. 코로나19로 내수가 크게 위축된 가운데 기업 도산까지 본격화되면 국민들의 경제적 고통이 높아질 수 밖에 없다. 이들을 구제하는데 들어가는 비용은 기업에 대한 자금 지원 규모를 상회할 수도 있다.

외환위기나 재정위기에 직면하지 않는한 주요국 정부들은 계속 공적 자금으로 한계상황에 다다른 기업들을 지원할 수 밖에 없다.

하지만 풍부한 유동성으로 왜곡된 시장과 산업 지형이 부를 미래도 명확하다. 경쟁력 없는 기업들이 시장의 한켠을 차지하면서, 정부 도움 없이도 살아남았을 건전한 기업들이 기대보다 낮은 수익을 올리게 된다.

기업들을 살리겠다는 각국 정부의 돈 풀기로 코로나가 종식된 이후 기업 수익률 회복이 지연되는 역설이다. 이는 내년 이후 증권 등 자산시장에 또 하나의 부담으로 작용할 가능성이 있다.

노경목 기자 autonomy@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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