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추석이라고 김영란법 유예…'자의 행정' 남발 경계해야

입력 2020-09-09 17:54   수정 2020-09-10 00:08

정부가 ‘부정청탁금지법’(김영란법)을 일시 완화해 농축수산물과 관련 가공품에 한해 추석선물 한도를 올리기로 했다. 공직자 등 이 법의 적용을 받는 대상자에 대한 해당 상품 선물가액 한도가 10만원에서 20만원으로 올라가는 것이다.

‘코로나 쇼크’ 와중에 긴 장마와 잇따른 태풍으로 인한 농·축산·어민과 관련 업계의 어려움은 헤아리고도 남는다. 소비와 투자 위축은 통상 특정 부문으로 쏠림이 있어, 체감경기는 통계로 나타나는 것 이상일 때도 많다. 영세 농어민과 가공 사업자의 어려움을 덜어주자는 차원이라면 선물보내기 캠페인을 벌이자고 한들 과할 게 없다.

하지만 이번 조치는 두 가지 문제점을 던진다. 그것은 “법 정신을 무시하고 뇌물성 고가 선물을 부추기냐”는 일방적 우려나 “농어민을 위하고 소비 진작을 도모한다면 한도 확대를 30만원, 50만원으로 하지, 왜 20만원인가”라는 식의 트집 차원이 아니다. 먼저 이 법 제정 때부터 제기됐던 과잉 입법의 비현실성과 실효성에 대해 차제에 점검하고 성찰해 보자는 것이고, 시혜성·선심성·땜질성·즉흥성의 ‘자의 행정’이 남발되면 어떤 일이 벌어질지 경각심을 갖고 보자는 것이다.

도입 논의부터 입법 과정까지 김영란법만큼 논란이 분분했던 법도 드물 것이다. 사철 민원인이 끊이지 않는 국회의원은 법 적용 대상에서 빼버린 것부터 선물·경조사비 상한선의 현실성, 공직자윤리법·형법 등과의 중복 문제 등은 아직도 미봉 상태 그대로다. 소비 위축 등 부작용도 추석기간의 이번 임시변통 완화에서 재확인됐을 뿐이다. 변수가 너무 많아 지키기 어려운 법이라면 법을 단순화하고, 그래도 안 되면 폐기하는 게 맞다.

더한 걱정은 모법(母法)에는 도덕 교과서처럼 두루뭉술하게 해놓고 시행령과 시행규칙에 온갖 복잡한 각론을 다 담을 때 빚어지는 ‘자의 행정’과 ‘행정 편의주의’다. 세법에 명시된 세율은 손대지 않은 채 ‘공정가액 반영률 인상’ ‘기준시가 올리기’ 같은 행정조치로 쉽게 증세를 해온 최근 부동산대책에서도 반복됐다. 법의 무력화요, ‘디테일에 악마가 있다’는 경고 그대로다. 만기친람의 ‘어버이 국가’식 자의 행정이 반복되면 그 과정에서도 민원·청탁이 생기기 마련이고, 표와 선심정책의 거래통로가 될 수 있다. 당장은 공직이 ‘위세’를 부리고 생색을 낼지 모르지만 집행자도 그 덫에 걸릴 수 있다. ‘시행령 정치’ ‘시행규칙 행정’을 남발하면 민주주의 원리인 ‘법의 지배’와 멀어질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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