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국내 중고 PC의 집결지인 서울 용산전자상가 내 선인상가 4층. 11일 오후 이곳에서 중고 조립 PC를 취급하는 H업체의 전화벨이 연신 울려댔다. 주로 폐업을 앞두고 중고 PC 매입 단가를 문의하는 PC방 점주들의 전화다.
이 업체의 박모 대표는 “PC방 폐업 매물 관련 문의가 하루 10건 이상씩 들어오고 있다”고 말했다. “작년엔 하루 한 건 걸려올까 말까 했는데 지난달 정부의 집합금지 조치로 PC방 영업이 전면 중단된 후 문의가 급증했다”는 설명이다. 그는 “최근 일감이 늘면서 중고 PC에서 값어치 있는 부속을 떼는 일을 하는 아르바이트 직원 두 명을 새로 채용했다”고 했다.
너비 2m 남짓의 선인상가 통로 곳곳에는 중고 PC가 수십 대씩 벽돌처럼 쌓여있다. 고정비 부담을 못 견디고 폐업한 전국 PC방에서 쏟아져들어온 물건들이다.
선인상가는 크고 작은 상점 780여 개가 모인 컴퓨터 전문상가다. 한때 컴퓨터 관련 단일상가로는 동양 최대 규모를 자랑했다. 1997년 외환위기 때도 굳건했던 이 상가는 2000년대 들어 용산전자상가의 쇠락과 함께 내리막길을 걸었다. 온라인 최저가 비교 사이트가 생기면서 발품을 팔아 컴퓨터를 살 이유가 없어져서다.하지만 요즘 “20년 만에 다시 호황기가 찾아왔다”는 말이 나오고 있다. 폐업하는 PC방이 늘면서 중고 PC 매물이 넘쳐나는 가운데 직장인의 재택근무와 학생들의 비대면 학습 등으로 가정 내 데스크톱 수요가 증가하면서다. 유만식 선인상우회 회장은 “지난 7월부터 두 달가량 매출이 상가 전체적으로 30%가량 늘어난 것으로 추정된다”고 말했다.
선인상가에서 만난 안광일 몬스터컴 실장은 “폐업 PC방에서 대량으로 들어온 물건이 매번 빠르게 소진되면서 중고 PC 판매량이 예년보다 세 배는 늘었다”고 했다. 그는 “대부분 구매자는 개인 소비자”라며 “재택근무가 늘면서 모니터 화면이 큰 고사양의 컴퓨터, 그중에서도 가성비가 좋은 중고 PC를 찾는 손님이 많다”고 설명했다.
PC방 출입이 막히면서 중고 PC 렌털 서비스를 찾는 소비자도 늘었다. 한 PC 대여 전문업체의 하루평균 대여량은 40여 건으로 한 달 전보다 두 배가량 불어났다. 이 업체 관계자는 “집에서 PC방 환경 그대로 게임을 즐기려는 게이머들이 주 고객”이라고 전했다.
PC방 폐업 물건을 전문으로 취급하는 유모 사장은 “폐업으로 매물을 팔겠다는 문의가 쏟아지고 있지만 실제 계약이 성사되는 거래는 세 건 중 한 건 정도”라고 말했다. 중고 PC 한 대당 매입가(본체)는 최신 사양 기준으로 40만~50만원 수준. 그는 “PC방 사장들은 대당 5000원이라도 더 쳐달라고 하지만 수거에 드는 인건비와 유류비를 감안하면 양보하기가 어렵다”면서 “같은 자영업자로서 문 닫는 사장님들의 딱한 사정을 외면하는 것 같아 마음이 편치 않다”고 했다.
유만식 회장은 “PC방 같은 사업이 망가진다면 컴퓨터산업은 물론 선인상가의 전망도 장기적으로 어두울 수밖에 없다”고 우려했다.
민경진 기자 min@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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