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 공정위 전 간부 "삼성물산 주식처분에 청와대 개입"

입력 2020-09-12 09:30   수정 2020-09-12 15:44


삼성SDI가 보유한 삼성물산 지분을 모두 처분하도록 한 공정거래위원회의 2017년 결정에 청와대가 개입했다는 공정위 전 고위 간부의 증언이 나왔다. 당시 공정위원장이던 김상조 청와대 정책실장은 처분할 필요가 없다는 입장이었지만 청와대의 요구로 공정위의 판단이 바뀌었다는 것이다.

2017년 12월 공정위는 "삼성물산과 제일모직 합병 과정에서 새로운 순환출자 고리가 형성됐다"며 삼성SDI가 보유하고 있는 삼성물산 지분을 모두 처분하도록 결정했다. 2년 전인 2015년 12월 "기존 순환출자가 강화된 것에 해당한다"며 합병 과정에서 늘어난 부분만 처분하도록 했던 결정을 스스로 뒤집어 당시에도 논란이 됐다.

유선주 전 공정위 심판관리관(국장급)은 11일 대전에 있는 자신의 사무실에서 기자와 만나 "김상조 실장은 2017년 7월 공정위 위원장에 취임한 이후 여러 차례에 걸쳐 '2015년 결정이 문제 없다'는 입장을 밝혔다"며 "하지만 불과 5개월 뒤 변칙적인 방법을 동원해 정반대의 조치를 취하도록 했다"고 말했다.
김상조 "2015년 판단 문제 없다"고 하고선

심판관리관은 공정위 전원회의에 상정된 안건이 투명하고 공정하게 심의될 수 있도록 지원·보좌하는 역할을 한다. 전원회의와 소회의 등 주요 회의에 배석해 기록하는 역할도 한다. 유 전 국장은 대전고등법원 등에서 판사로 재직하다 2014년 공정위 심판관리관에 임명됐다.

유 전 국장은 "김상조 실장과 여러 차례에 걸쳐 삼성SDI의 삼성물산 지분 처분 문제를 논의했다"고 말했다. 국정농단 재판 과정에서 2015년 결정이 삼성의 로비에 의해 이뤄졌다는 주장이 제기되고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김 실장은 "문제가 없다"는 입장을 반복했다. 다음은 유 전 국장이 전한 당시 김 실장의 말이다.

"내가 특검에 가서 관련 문서를 모두 봤다. 다 안다. 더 들을 것 없다. 2015년 공정위의 판단은 문제가 없었다. 보기에 따라서 이렇게 볼 수도 있고 저렇게 볼 수도 있는 사안이다. 만약 법원에서 잘못이 있다고 판결하면 그걸로 하면 된다."

하지만 김 실장은 5개월이 지난 12월 돌연 정반대로 입장을 바꾸고 전원회의를 열어 자신의 생각은 물론, 공정위의 2015년 결정과 반대되는 결론을 내렸다는 것이 유 전 국장의 판단이다. 김 실장은 직접 기자들 앞에서 이를 발표하며 "과거 공정위가 잘못된 결정을 내렸던 것에 대해 통렬히 반성한다"며 사과까지 했다.

유 전 국장은 "이같은 급격한 입장 변화는 청와대의 개입이 없이는 불가능한 일"이라며 "국정농단 사건을 통해 집권한만큼 정권의 정당성이 되는 부분을 해결하라는 요청이 있었을 것으로 생각한다"고 말했다. 그는 "김 실장은 공정위 간부들에게 '장하성 청와대 정책실장과 매일 통화하면서 국정을 논의한다'고 말하는 등 청와대와의 밀접한 관계를 수시로 자랑삼아 이야기했다"고 덧붙였다.
회의 과정도 변칙
삼성의 로비로 청와대가 공정위를 압박해 2015년 12월 삼성SDI가 삼성물산 주식을 일부만 처분하도록 하는 결정이 나왔다는 혐의는 2016년 2월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의 구속 과정에서도 중요한 근거가 됐다. 하지만 법원 재판에서는 해당 사건을 포함해 개별 사안에 대한 청탁과 결과의 인과관계를 확증할 수 없는 것으로 결론이 났다.

삼성 관계자는 "공정위 관계자를 찾아가 만난 적은 있지만 통상적인 의견 표명을 벗어나지 않은 것으로 인정됐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2017년 공정위 결정에 따라 이듬해 삼성SDI는 삼성물산 지분을 모두 팔았다.

입장을 번복한 김상조 실장이 공정위 입장을 뒤집는 과정도 변칙적으로 이뤄졌다는 것이 유 전 국장의 설명이다.

그는 "모든 회의에는 심판관리관실 직원들이 배석하지만 해당 안건을 논의할 때는 이례적으로 직원들을 모두 퇴장하게 했다"고 말했다. 이 과정에서 회의기록이 파기되기도 했다. 유 전 국장의 말이다.

"2015년 9월 제정한 공정위 내부 회의록 지침 규정 중 '회의녹음 보관의무' 규정이 제대로 지켜지지 않고 있었다. 2017년 10월에 내가 직접 김상조 당시 위원장에게 요청해서 회의녹음을 시작할 수있게 됐다. 그날도 녹음기를 켜고 회의를 시작했는데, 돌연 김 위원장이 나를 비로한 직원들을 모두 나가라고 해서 퇴실할 수 밖에 없었다.그래도 녹음기는 회의장 내에 켜뒀다. 하지만 나중에 이를 발견한 공정위 상임위원이 녹음기 관리 직원에게 화를 내며 녹음기를 뺏었다. 이 상임위원은 다음날 해당 직원을 불러 자신이 보는 앞에서 해당 녹음파일을 삭제하도록 한 뒤 녹음기를 돌려줬다."

이에 따라 당일 회의는 공정위 내부 지침과 달리 기록으로 남겨지지 못한 것으로 전해졌다. 유 전 국장은 "회의 녹음에 대한 지침이
사문화된 이듬해 3월까지 5개월간 기록으로 남지 못한 회의는 그날이 유일했다"고 말했다.

당시 회의에 참석했던 민간 비상임위원들도 회의내용을 밝힐 수는 없지만 과정에 진통이 있었다고 했다. 회의에 참가했던 한 인물은 "2015년 입장을 뒤집는 것에 반대가 많았던 것은 물론 안건 상정 자체를 반대하는 위원도 있었다"며 "김 실장이 위원들에게 '협조를 부탁드린다'는 말을 자주했다"고 전했다. 다른 인물도 "민간 출신 비상임위원들이 대체로 결정 번복을 반대하는 가운데 공정위 공무원들로 구성된 상임위원들이 강하게 주장했다"고 말했다. 또 다른 전 비상임위원은 "답변을 하지 않겠다"고 했다.
"박근혜 정부와 무슨 차이인가"
유 전 국장은 당초 2015년 결정이 잘못됐다는 생각을 갖고 있었다. 당시 회의에 제출된 자료에도 "삼성SDI가 삼성물산 지분을 전부 처분하는게 맞다"는 의견을 밝혔다는 기록이 남아있다. 김상조 실장이 공정위원장에 임명된 직후부터 내부에서 문제를 제기했던 이유다.

결과적으로는 자신의 생각대로 바뀐 공정위 판단에도 문제를 제기하는 이유에 대해 다음과 같이 밝혔다.

"결론이 문제가 아니라 결론에 이르기까지의 과정이 문제다. 이처럼 중요한 사안을 청와대 요구에 따라 공정위가 입장을 바꿔서는 안된다. 2014년 CJ E&M에 대한 공정위 고발 조치가 우병우 전 청와대 민정수석이 요구로 이뤄졌다며 검찰이 기소하지 않았나. 촛불로 들어선 정부가 박근혜 정부와 똑같이 불법적인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다고 밖에 볼 수 없다."

이같은 유 전 국장의 주장을 공정위는 모두 부정했다. 공정위 관계자는 "당시 해석 변경은 2017년 8월 이재용 부회장에 대한 1심 법원 판결과 10월 국정감사에서 절차적 문제가 제기된데 따른 것"이라며 "청와대의 압력이 있었다는 말은 사실무근"이라고 밝혔다. 녹음기를 뺏고 음성파일을 임의로 삭제했다는 주장에 대해서도 "그런 사실이 없고 정상적인 기록이 이뤄졌다"고 했다.

김상조 실장과는 여러 차례 통화를 시도하고, 관련 내용에 대해 문자메시지로 질문을 남겼지만 답이 오지 않았다.

노경목 기자 autonomy@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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