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면에 새긴 돌의 기억…"우리들의 자화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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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2020-09-13 16:54   수정 2020-09-14 00:22

화면에 새긴 돌의 기억…"우리들의 자화상"


“10년 전쯤 강원 양구의 박수근미술관에 레지던시(입주 작가)로 있을 때였습니다. 박 선생님 작품의 거친 질감이 우리나라에 널리 분포된 화강암에서 모티브를 얻은 것임을 알고 무릎을 탁 쳤죠. 제가 표현하려는 주제인 ‘기억’을 담아내기에 돌만한 것이 없겠다 싶었습니다. 작품에 대한 첫 반응도 무척 좋았죠.”

14일부터 서울 중림동 한국경제신문사 1층 한경갤러리에서 초대전 ‘memories(기억의 변주)’를 여는 박흥선 작가(41)의 말이다. 그의 작품에는 자연에서 채취한 돌이 자주 등장한다. 돌의 이미지를 그려 넣기도 하고, 실제 돌을 평평하게 깎고 연마해서 삽입하기도 한다. 그가 지금까지 해오고 있는 ‘기억(Memory)’ 연작이다.

이번 전시에는 돌을 자르고 다듬었을 때 드러나는 평면의 거친 질감을 화면에 그대로 표현한 색면회화와 실제 돌을 평면으로 다듬어 캔버스에 배치한 ‘조각회화’ 등 근작 27점을 걸었다. 언뜻 봐선 어떤 게 실제 돌이 들어간 작품인지, 돌의 모양을 그려 넣은 것인지 구분하기가 쉽지 않다.

“돌은 시간의 기억이 축적된 오브제입니다. 거대한 암석이 오랜 시간에 걸쳐 풍화와 침식 등을 겪으면서 형성된 것이 지금의 돌이니까요. 저는 이 3차원의 오브제를 다듬어 2차원의 평면에 결합시킵니다. 그러면 돌은 조각과 평면회화의 경계를 넘나들게 되고, 구상과 추상의 성격을 모두 지닌 중의적 작품으로 재탄생하지요.”

박 작가가 자신의 작업에 ‘조각회화’라는 이름을 붙인 이유다. 그의 조각회화는 두 가지 상반되는 작업이 결합해 완성된다. 캔버스에 색을 칠하고 말리고 또 칠해서 색을 쌓아가는 작업과, 자연석에서 평면을 얻기 위해 깎고 다듬고 지우는 작업이다. 육체적으로 고된 것은 물론 정신적으로는 수행에 가까운 인내와 끈기가 필요한 과정이다.

캔버스에 배치된 하나 혹은 여럿의 돌은 보는 이로 하여금 여러 가지 상념을 갖게 한다. 여기서 돌은 각자의 기억을 불러일으키는 매개체 혹은 촉발제(트리거)다. 각각 푸른색과 옅은 회색으로 칠한 가로 145㎝, 세로 224㎝의 큰 화면에 딱 하나씩 놓인 돌이 주는 느낌은 특별하다. 푸른 바탕 위의 흰 돌은 광대무변한 우주의 시간을 연상케 한다. 깊이를 알 수 없는 바닷속으로 빠져드는 느낌을 주기도 한다. 회색 바탕의 검은 돌은 흐린 하늘에서 떨어지는 운석 같다.

크기와 모양이 제각각인 돌들은 작품마다 다른 수와 형태로 배치돼 그만큼이나 다양한 기억을 상기하고 소환한다. 수석(壽石) 수집가가 자연의 돌에서 그림을 찾듯이 작가가 돌을 깎아서 찾아낸 시간의 자국이 돌의 기억이다. 그럼으로써 무위자연(無爲自然)의 오브제였던 돌은 관람자 각각의 기억과 관계를 맺으면서 잊힌 풍경과 시공간의 이야기를 끌어낸다.

박 작가는 “돌을 매개로 한 작업이 불러일으키는 기억은 나의 자화상이지만 그것은 내게만 특정된 것”이라며 “관람객이 모두 각자의 기억을 되새기게 된다는 점에서 그것은 모두의 자화상”이라고 설명했다. 작품 속 돌은 기억의 큰 상징물로서 작가의 감정을 이입하는 수단이자 관람객과 기억을 공유하는 매개체라는 이야기다.

강원 홍천이 고향인 박 작가는 회화를 전공했지만 조형, 영상, 설치, 미디어아트, 퍼포먼스 등 다양한 장르를 넘나드는 작업을 선보여왔다. 대형 설치작품 ‘공존의 기억’ 시리즈를 국립춘천박물관(2017년), 춘천 중도 옛배터(2020년) 등에서 잇달아 선보여 주목받았다. 지난 7월에는 한국미술협회가 주최한 제39회 대한민국미술대전 비구상 부문(서양화)에서 회화 작품 ‘공존의 기억’으로 최우수상을 받았다. 평면작업과 영상을 결합시킨 작품도 곧 내놓을 계획이다. 전시는 10월 7일까지.

서화동 선임기자 fireboy@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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