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자 칼럼] 집권 4년차 증후군

입력 2020-09-13 18:07   수정 2020-09-14 00:13

‘대통령 선거는 앞날의 희망과 기대, 국회의원 총선거는 권력에 대한 평가와 단죄.’ 정치 논평가들의 분석을 들어보면 한국의 양대 공직선거에서 표심은 이렇게 사뭇 다르다. 대선의 키워드가 ‘미래’라면 총선은 ‘과거’에 가깝다.

보다 나은 한국, 멋진 신세계를 기대하며 장밋빛 공약과 구호에 매료된 채 ‘1호 공무원’ 격인 대통령을 뽑지만, 한국 유권자들은 변덕도 심하다. 역대 정부를 보면 집권 4년차에 어김없이 ‘레임덕’ 조짐이 나타났다. 무엇보다 그간 ‘정책 성적표’가 나오면서 뭘 해도 잘 안 먹히는 것이다. 최근의 부동산 대책이 대표적이다. 개성 남북협력사무소를 폭파하며 우리 정부를 노골적으로 무시하는 북한 행태도 그런 맥락에서 볼 수 있다.

권력형 비리가 드러나고, 공직 내부에서 비리 폭로가 나오는 것도 주로 이때다. 관가가 어수선해지면서 ‘늘공’들이 청와대 근무를 기피할 때쯤이면 여권에서 청와대에 공공연히 반기를 드는 일도 잦아진다. 대통령의 실제 임기는 ‘3년6개월’이라는 지적이 나올 만도 하다.

레임덕이 시작되는 ‘집권 4년차 증후군’은 다분히 한국적 현상이다. 5년 단임의 역대 어느 정권도 예외가 없었다. 김대중 정부 때는 권력형 비리가 잇따라 불거진 뒤 내부 권력다툼 끝에 대통령이 탈당하면서 비롯됐다. 노무현 정부도 여당의 공격으로 당시 이해찬 총리가 낙마한 뒤 탈당한 대통령은 힘을 잃었다. 이명박 정부는 ‘세종시 수정안’이 국회에서 부결됐던 3년차부터 레임덕이었다는 평가다. 탄핵을 당한 박근혜 정부는 말할 것도 없다. 더 거슬러 가면 노태우 정부가 ‘수서 특혜비리’로 무력해진 것이나, 김영삼 정부가 아들 비리로 ‘식물 청와대’가 된 것도 4년차 증후군이었다.

집권 4년차쯤 되면 새로운 정책비전이나 정치적 반전을 기대하는 유권자가 늘어날 때다. 변덕일 수도 있고, 피로감일 수도 있다. 느닷없이 대대적 공직감찰에 돌입한다는 청와대 발표도 ‘5년짜리 대통령 시계’의 일정표에 대입해보면 배경이 이해된다. 하지만 사정당국의 은밀한 통상 업무를 청와대 민정수석실이 드러내놓고 사전 발표하는 것부터 ‘과시형’ 또는 ‘겁주기형’이란 인상을 준다. 헌법기관인 감사원까지 끌어들인 것도 모양새가 좋지 않다. ‘추미애 사태’까지 겹쳐 여러 가지로 오해 살 만한 상황에서의 공직기강 다잡기다.

청와대의 공직감찰은 4년차 증후군에 대한 문재인 정부의 우려가 반영된 것 같다. 이미 증후군이 나타났다는 것을 역설적으로 보여주는지도 모른다.

허원순 논설위원 huhws@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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