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의 맥] 중앙은행의 국채 매입, '국채의 화폐화' 논쟁 불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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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2020-09-15 17:10   수정 2020-09-16 00:10

[뉴스의 맥] 중앙은행의 국채 매입, '국채의 화폐화' 논쟁 불붙였다

韓銀 국고채 5조원 매입의 의미
지난 8일, 한국은행은 “올해 말까지 총 5조원 내외 규모의 국고채 단순매입을 실시한다”고 발표했다. 최근 정치권에서 논란의 주제가 된 1조원 규모 통신비 지원을 비롯해 4차 추가경정예산에 필요한 액수가 7조원 정도이니, 매입 규모가 어느 정도인지 쉽게 짐작할 수 있다. 단순매입은 국고채를 다시 사거나 팔겠다는 조건 없이 매입하는 것을 의미하며, 환매조건부증권(RP) 매매와 상대되는 개념이다.

RP 거래는 각국 중앙은행이 공개시장을 운영하는 방식 중 하나다. RP 거래란 유가증권을 매수(또는 매도)하고 일정 기간 뒤에 사전에 정해진 가격으로 다시 매도(매수)하는 것을 말하는데, 이 거래에 사용되는 유가증권의 대표적인 예가 국고채라고 할 수 있다. 한은이 시중 유동성을 흡수하기 위해 RP를 매각하면, 시중 금융기관에 채권을 매각하고 만기일에 채권을 다시 돌려받으면서 원금과 이자를 지급하게 된다. 이런 방식으로 공개시장을 운영하기 위해 한은은 국고채와 같은 채권이 필요하며, 이를 확보하기 위한 국고채 단순매입은 한은이 금융시장 상황과 무관하게 오랫동안 펴온 정책이다.

그런데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때 그리고 올해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로 금융시장 상황이 나빠지면서 여러 나라의 중앙은행이 국채 매입에 나섰고 한은도 예외는 아니다. 이런 국채 매입은 기본적으로 시장 안정화가 목적이며, 이 목적이 달성되면 정상적인 수준으로 돌아가기 위해 점진적인 국채 매각이 이뤄지는 것을 전제로 한다. 이런 국채시장 개입은 중앙은행의 ‘금융안정’ 기능과 관계가 있다고 할 수 있는데, 지난주 국고채 매입 때도 한은은 매입 목적이 “시장금리 급변동을 선제적으로 완화하기 위함”을 포함한다고 했다. 또 “금번 단순매입과는 별도로 시장금리 급변동 등 필요시 시장 안정화 조치를 적극적으로 실시할 계획”이라고 강조했는데, 지난 3월의 국고채 단순매입에서도 이런 목적이 명시됐다.

4차 추경용 7조원대 국고채 발행 대응?
이번 국고채 매입이 관심을 받은 이유는 아마 4차 추경과 관련돼 있기 때문일 것이다. 정부는 (내년 예산을 집행하기 위한 국고채 발행과는 별도로) 7조원 후반대의 추경도 모두 국고채 발행을 통해 조달할 계획인데, 추가 발행이 예상되면 채권시장에서는 국고채 가격이 하락하고 국고채 금리는 상승할 것이다. 한은이 “향후 국고채 발행이 확대될 것으로 예상돼 이에 따른 채권수급 불균형”에 선제적으로 대응한다고 발표한 것도 이런 맥락일 것이다. 지난 7월 단순매입 당시 3차 추경 재원용 국고채 발행에 대비한 매입이 아니라고 설명한 데 비춰 보면 이번 국고채 매입의 의미는 7월과는 분명히 다르다고 할 수 있겠다.

‘금융시장 안정화’를 위한 국고채 매입이 이후의 정상화를 염두에 두고 진행되고 있다면 ‘채권수급 안정화’는 매입한 국고채의 매각 계획을 반드시 동반할 필요는 없을 것이다. 그렇다면 금융시장은, 특히 외국의 금융시장은 5조원이라는 국고채 매입이 어떻게 이 두 부분으로 나뉘는지 많은 설왕설래가 있을 것이다. 이런 설왕설래는 우리나라 국고채 가격을 결정하는 데 상당한 영향을 미칠 것이다.
채권시장 통하지 않고 직접 매입 가능성도
위에서 말한 세 가지 국고채 매입 이유(공개시장 운영, 금융시장 안정화, 채권수급 불균형 대응)는 모두 한은이 채권시장에서 매입한다는 점에서 공통점이 있다. 그런데 외국 금융시장의 설왕설래에 우리가 관심을 갖는 이유 중 하나는,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에도 언론에 언급됐듯이, 한은이 채권시장을 통해서가 아니라 직접 국고채를 매입할 가능성 때문일 것이다. 당시 기획재정부 장관과 한은 총재가 모두 직접 매입은 “최종 대부자 기능으로서 마지막 수단”이라는 데 의견 일치를 봤다. ‘마지막 수단’까지 가는 것을 아무도 원하지 않더라도 그 길이 어떤 모습인지 알아보고 준비해 놓는 것은 나쁘지 않을 것이다.
세계 중앙은행들 ‘비전통적 통화정책’ 쏟아내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에 여러 중앙은행이 대책을 내놓으면서 ‘비전통적 통화정책(Non-traditional monetary policy)’이라는 말이 생겼다. 초반에는 미국 중앙은행(Fed)에서 ‘Non-traditional monetary policy’라는 용어를 사용했는데 어감이 좋지 않다고 해서 이후에는 주로 ‘Unconventional monetary policy(비관습적 통화정책)’라고 불렀다. 아마 금융위기가 오래지 않아 끝날 것이라는 기대가 사라진 것과도 관련이 있을 것이라는 게 개인적인 경험이다. 이런 비전통적 정책이 10여 년을 끌어오다가 제대로 마무리하기도 전에 코로나19 사태가 터지고 이후 추가적인 비전통적 통화정책이 쏟아져 나오고 있다.

유럽 중앙은행이 1999년 출범한 이후, 통화 통합은 이뤘으나 재정 통합에는 도달하지 못했기 때문에 유럽 경제의 불안정이 계속됐다고 볼 수 있다. 그런데 코로나19는 이전의 재정위기와는 다른 방향으로 영향을 미쳤다. 재정위기 당시에 재정이 튼튼한 국가는 다른 나라의 약한 재정을 그 나라 책임이라고 생각하고 공동으로 해결할 문제가 아니라는 의견을 갖고 있었다는 걸 부인할 수 없다. 반면 코로나19라는 방역 위기는 다른 나라의 문제가 자기 나라에도 언제든 닥칠 수 있다고 생각하도록 만들었으며, 따라서 이전에는 생각지도 못한 방식으로 다른 나라를 재정적으로 도와줄 수 있는 정책을 펴고 있다.

Fed도 코로나19 이후에 매입하는 채권의 범위를 상당히 확장했다. 회사채를 매입하기로 한 결정은 Fed 역사에서 가장 큰 변화 중 하나라고 할 수 있으며, 고용시장 움직임에 더 많은 신경을 쓰고 더 많이 개입하는 것도 코로나19 사태 이전에는 상상하기가 어려웠다. 지난달 말 온라인으로 열린 잭슨홀미팅에서 제롬 파월 Fed 의장의 연설과 더불어 공표된 ‘장기 목표 및 통화정책전략 개정’은 중앙은행 변혁의 끝이 어디인지를 궁금하게 만들었다.

중앙은행의 초기 역사에서 전쟁을 비롯한 국가의 재정수요 충족은 자주 등장했다(물론 금융안정과 물가안정도 이에 못지않게 자주 등장했다). 20세기 말까지 확립된 경제정책의 큰 틀 중 하나는, 선출된 권력이 행하는 재정정책과 이와는 독립적으로 운영되는 통화정책의 분리라고 할 수 있다. 이 분리는 수요와 공급을 분리해 경제학을 공부하는 것만큼이나 받아들여졌다고 할 수 있다. 그런데 최근의 비전통적 통화정책에 와서는 이 분리가 신성한 것인지에 관해 의심의 눈초리가 가시지 않고 있다.

이런 맥락에서 중앙은행의 국채를 시장에서 매입하든 직접 매입하든 그 의미에 대해 앞으로 많은 논란이 있을 것이다. 물론 학문적으로 분석되기 이전에 금융시장이 먼저 반응할 것이다. 세계 금융시장이 어떻게 반응할지, 특히 한은의 국고채 매입과 우리나라의 재정건전성에 관해 어떻게 판단하고 있는지에 대한 분석을 게을리해서는 안 될 것이다. 20여 년 전 해외 금융시장의 국가재정건전성 판단에 따라 한국의 국고채 금리가 15~20% 수준으로 올라간 경험을 잊어서는 안 되기 때문이다.

■ 국고채

국고채는 국가 재정정책 시행에 필요한 자금을 조달하기 위해 국채법을 근거로 해 공공자금관리기금 부담으로 발행되는 국채의 한 종류다. 국채에는 국고채, 외화표시 외국환평형기금채권, 국민주택채권, 재정증권이 있으며, 국가가 공공목적에 필요한 자금을 확보하거나 기발행된 국채 상환 목적으로 발행한다. 국고채는 만기까지 상환금액과 이자 액수가 정해져 있는 (일반)국고채와 원금과 이자가 물가 수준에 따라 조정되는 물가연동국고채로 분류할 수 있다. 현재 원금과 이자가 고정된 국고채는 3·5·10·20·30·50년 만기의 6종류가, 물가연동국고채는 만기 10년으로 발행되고 있다.
■ 코로나와의 전쟁 때라 예외?
통화·재정정책 분리는 역사에서 얻은 교훈
재정정책의 시행은 화폐 존재와 무관하게 충분히 가능하다. 정부 혹은 다른 권력이 행하는 세금 징수와 재정 지출은 임의의 재화나 용역을 통해서도 원칙적으로는 가능하기 때문이다. 직접적으로 징수하거나 지출하는 방법도 있고, 여러 재화 간의 상대가격을 정부가 원하는 방향으로 바꾸는 간접적인 방법의 재정정책도 세금이나 보조금의 이름으로 가능하다. 이런 재정정책은 한 시기(혹은 한 세대) 내에서 가능할 뿐만 아니라, 세금을 거뒀다가 미래에 지출할 수도 있고 공채를 발행해서 미래의 세금을 미리 지출할 수도 있다.

화폐를 사용하는 대부분 경제에서 (중앙은행을 포함하는 광의의) 정부가 화폐 공급을 조절한다. 무릇 어떤 재화의 공급이 늘거나 줄면 그 재화의 가격이 변동하듯이, 화폐의 공급을 조절한다는 것은 곧 화폐의 상대가격을 변동시킨다는 것과 같은 말이다. 화폐의 상대가격은 세 측면에서 바라볼 수 있다.

첫째는 경제 내에 존재하는 재화와의 상대가격이 물가 수준인데, 통화량이 늘면 물가가 오르는 경향이 있다. 둘째는 외국 화폐와의 상대가격인 환율인데, 우리나라의 통화량이 늘면 환율이 오르곤 한다. 셋째로는 화폐와 채권의 상대가격, 즉 오늘의 화폐와 내일의 화폐의 상대가격인 이자율이다. 한국은행이 기준금리를 정하는 것은 이 세 번째 상대가격을 변동시킨다고 볼 수 있고, 이는 전통적 통화정책의 가장 대표적인 수단이다.

대부분 나라에서 행정부가 국회 동의하에 재정정책을 시행하는 반면, 통화정책의 실행은 독립성이 상당히 보장된 중앙은행의 몫이다. 이는 경제정책의 역사에서 얻은 교훈이다. 그리고 중앙은행의 발권력은 곧 국민이 중앙은행에 ‘무한대의 마이너스 통장’을 줬다는 의미다. 전통적으로 재정정책과 통화정책은 분리돼서 수행돼 왔다. 물론 과거에도 전쟁 시기에는 (잉글랜드은행이나 Fed 역사에서도 볼 수 있듯이) 중앙은행의 통화정책이 재정정책 부담을 덜어준 적이 있기는 하다. 지금의 코로나19 위기를 인류가 벌이는 전쟁에 비유하는 경우도 많은데, 재정정책과 통화정책 간 관계의 관점에서도 올바른 비유인지 절실한 고민이 필요한 시점이라고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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