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한보름 송학농장 대표 "로열티 받는 프리미엄 축산이 농촌 살리죠"

입력 2020-09-15 17:57   수정 2020-09-16 00:54

인간이 기르는 가축은 세계적으로 38종이다. 교배종을 합치면 약 8800종에 달한다. ‘종 다양성’을 지키는 것은 다가올 기후 위기에 대응할 체력을 기르는 것과 같다. 세계 각국의 가축 지도가 기후 변화의 바로미터가 되고, 식량자원으로서 어떤 종이 멸종했을 때 또 다른 교배종이 이를 대체할 수 있기 때문이다.

유엔식량농업기구(FAO)는 기후 변화로 인해 축산업 위기, 식량 위기에 처했다고 보고 있다. 2015년부터 182개국에서 기르고 있는 고유 품종을 조사, 한눈에 볼 수 있는 지역동물다양성 정보시스템(DAD-IS)을 만든 이유다. 다음달 이 시스템에 경북 포항 송학농장에서 자라고 있는 ‘경상북도 재래돼지’가 이름을 올린다. 국내에서 생산되는 돼지 품종으로는 30번째, 민간 돼지농가로는 최초의 성과다.

이한보름 송학농장 대표(41·사진)는 15일 “일제강점기 이전 수천 년간 한반도에 정착했던 재래돼지 품종 DNA를 2대에 걸쳐 복원했다”며 “FAO 등재로 재래돼지가 식량 자원으로서의 가치를 인정받고 국제무대에서 로열티를 받으며 상업적으로 거래될 수 있는 물꼬를 튼 것”이라고 밝혔다.

송학농장은 유일한 민간 재래돼지 사육 농가다. 현재 일반 돼지 3500마리, 재래돼지 300마리를 키운다. 재래돼지는 ‘털이 검고 코가 길며 안면 주름이 있고 턱이 곧다’는 특징이 있다. 맛과 품질이 뛰어나지만 생산성이 낮다. 수입 품종을 교배한 흰 돼지(삼원교잡종)는 6개월 키우면 100~115㎏까지 큰다. 재래돼지는 그 두 배인 1년을 키워도 90㎏에 불과하다. 투입 대비 산출이 턱없이 적다. 그런 이유로 대량 생산에 집중하던 1970~1980년대 거의 자취를 감췄다.

송학농장의 재래돼지 사육은 이한보름 대표의 부친인 이석태 씨가 1992년부터 제주, 남원, 고성, 김천 지례 등 전국 산지의 흑돼지를 사들이며 시작됐다. 수년간 5세대에 걸친 교배 체계로 한국 재래돼지의 외형적 특징을 갖춘 집단을 만들었다. 영남대와 재래돼지의 고유 유전형질 8개도 발굴, 복원에 성공했다. 이 대표는 2007년 영남대 동물생명과학대학원 연구팀에서 아버지가 복원한 재래돼지 DNA 연구를 해 재래돼지 DNA 분석 관련 특허를 냈다.

이번 FAO 등재는 재래돼지를 바탕으로 프리미엄 축산업으로 가고자 하는 이 대표가 내딛는 첫걸음이다. 경북축산기술연구소와 함께 2년여간 재래돼지의 특성 등을 토대로 등재 작업에 매진했다. 해외에서 재래돼지 품종을 기르고 싶다면 송학농장에 로열티를 내고 돼지를 사가야 한다.

“재래돼지는 시중 돼지 가격에 비해 7~10배 비쌉니다. 사육비 등을 고려해 ㎏당 9만원까지 거래됩니다. 1990년대에 전문식당도 열어봤지만 소비자가 없었어요. 지금은 다릅니다.”

이 대표는 프리미엄 축산이 쇠락한 농촌을 살리는 길이라고 믿고 있다. 기업형 축산으로 돼지 가격이 떨어져 사육을 포기한 농민들도 높은 가격을 받을 수 있는 재래돼지를 키워 수익을 보전한다면 축산도 발전 가능성이 있다는 것이다. 그는 최근 포항에 숙성연구소인 에이징랩을 열었다. 재래돼지를 숙성해 가치를 더 끌어올리는 실험을 하고 있다.

김보라 기자 destinybr@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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