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연·우주·생명…존재의 본질 묻는 大作 향연

입력 2020-09-16 17:54   수정 2020-09-17 10:49


최근 정년 퇴임한 조기주 단국대 미술학부 명예교수(65)는 2014년 서울 삼청동 금호미술관에서 연 24번째 개인전에서 야심 찬 신작을 공개했다. 1998년부터 전시 직전까지 제작한 유화 작품 ‘Triple Ⅰ’. 세로 190㎝, 가로 60㎝의 캔버스 30여 개를 합친 초대형 연작이다. 크고 작은 원들로 가득한 작품은 길이가 19.5m에 달했다.

그의 이 작품이 미술관이 아니라 갤러리에서 다시 관람객을 맞이하고 있다. 16일 서울 인사동 토포하우스에서 개막한 ‘화화사유 畵話思惟’전에서다. 크기는 원래 작품의 절반 정도인 길이 9m로 줄였지만 점과 선, 원 등 조형의 기본 요소를 통해 우주와 생명의 탄생과 순환 등을 표현한 뜻은 그대로 읽힌다. 유화인데도 마치 한지에 그린 수묵 같은 느낌이다.

이번 전시는 한국을 대표하는 세계적 작가인 이우환을 비롯해 엄태정(조각) 차우희(회화 및 설치) 김종원(현대 서예) 김병태(사진) 조기주 등 현대미술 거장 6명의 대작(大作)을 통해 예술정신의 순수함에 대해 다시 생각하게 한다. 천장 높이가 4.6m에 달하는 전시장에 걸린 작품 수는 적지만 대작이 뿜어내는 아우라가 남다르다. 전시 제목 ‘화화사유’에서 드러나듯 그림-대화-사유의 공간으로 전시장을 구성해 존재의 근원과 본질을 돌아보게 한다.

이우환(84)의 1986년작 ‘Untitled’(168㎝× 184.4㎝)는 ‘바람’ 시리즈의 모태가 되는 작업이다. 종이에 먹으로 그은 획들의 몰아치는 움직임과 함께 여백이 생성되고, 비움과 채움의 관계 속에서 공간이 모습을 드러낸다. 이우환은 “공간은 시간 속에 나타나고, 공간을 생성하는 과정이 끝날 때 시간 역시 사라진다”고 했다.

서울대 교수를 지낸 조각가 엄태정(82)은 조각을 할 뿐만 아니라 조각을 그리는 작가다. 반원과 사각형으로 분할한 화면에 작은 사각형을 무수히 새겨넣은 2018년작 ‘만다라’(145㎝×435㎝)를 통해 그는 우주법계의 진리를 표현한다. 그는 “만다라는 우주다. 공(空)의 세계다. 하늘도 둥글고 땅도 둥글다”고 했다. 그의 또 다른 작품 ‘끝없는 기둥(Endless Column-Galaxy)’은 작가가 좋아했던 루마니아 조각가 콘스탄틴 브랑쿠지(1876~1957)를 오마주한 작품이다. 세로 290㎝, 가로 145㎝의 화면을 사선으로 분할하고 기하학적 도형으로 탑을 쌓듯 수직으로 세웠다.

경남도립미술관장을 맡고 있는 김종원(66)은 2018년 베를린 전시 때 캘리그라피의 미학을 현대 회화적 정신으로 표현했다는 극찬을 받은 서예가다. 현대 회화의 원형을 글씨(書)에서 찾는 그는 텍스트와 이미지가 분리되지 않은 서화동체(書畵同體)를 추구한다.

이번 전시에는 문자, 기호, 상징이 어우러진 ‘신화’ 시리즈 두 작품과 ‘법화경’ 등 3점이 나왔다. 종이에 먹과 붉은색 경면주사로 표현한 글씨와 그림은 주술성이 다분한 부적과 흡사하다. 이를 통해 그는 전통과 현대, 동양과 서양, 글과 그림의 이분법을 거부하고 예술의 통합적 원형을 보여준다.

1981년부터 베를린과 서울을 오가며 활동 중인 차우희(75)는 동양의 유산과 서양의 경험을 다다이즘적으로 작업에 투영해온 작가다. 그의 1989년작 ‘동쪽에서 온 소포는…’은 흑백의 강한 콜라주와 대조로 자신의 내면을 상징적으로 드러낸 작품. 검은색은 ‘무(無)’가 아니라 존재의 시작임을 상징한다.

1993년부터 케냐에 살고 있는 사진작가 김병태(58)의 ‘달밤’은 나이로비에서 자동차로 6시간을 달려간 초원에서 지평선을 보며 렌즈 없이 조리개만으로 찍은 작품이다. 형상 없이 빛과 색으로 표현된 하늘이 ‘텅 빈 충만’의 미학을 담고 있다. 사진인데도 단색화 같은 느낌을 준다.

이번 전시를 기획한 김순주 쿤스트라움 대표는 “지금까지 한국미술은 아트페어 위주로 해외에 소개하다보니 대작의 아우라를 제대로 전할 수 없었던 데다 전시 기간도 짧아서 아쉬웠다”며 “K아트의 원류가 되는 한국의 정신이 담긴 대작들을 유럽에 시리즈로 소개하기 위한 첫 전시”라고 설명했다. 전시는 오는 28일까지.

서화동 선임기자 fireboy@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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