휴대폰·연필·우유·커피…'착한 가격'이 따로 있을까

입력 2020-09-21 09:00  


어떤 물건이나 서비스에 매겨지는 가격을 둘러싼 갈등과 논쟁은 오래전부터 있었다. ‘적정한 가격’ ‘과도한 가격’ ‘착한 가격’ ‘도덕적 가격’ ‘적정 이윤’ ‘과도한 이윤’이란 말은 모두 그런 갈등과 논쟁의 산물이다. 그리스 철학자 아리스토텔레스도 ‘과도한 가격’ ‘과도한 이윤’을 몹시 싫어했다고 한다. 그는 생산자와 소비자를 연결해주는 중간상인과 대금업자를 특히 싫어했다. 이들은 특별하게 하는 일 없이 중간에서 돈을 번다고 생각했다. 중간상인이 없으면 우리는 생산자를 일일이 찾아가서 직접 필요한 많은 것을 사야 한다는 생각은 한참 뒤에 ‘기회비용’으로 설명됐다. 어떤 가격과 이윤이 ‘과도한’이고 ‘적정한’이고 ‘도덕적’일까?

이런 생각은 자연스럽게 정부가 ‘가격을 통제해야 한다’는 생각을 낳았다. 생산해 파는 사람은 소수고, 사서 쓰는 사람은 다수이므로 정부는 다수의 편에 서야 한다는 생각도 ‘생각실험’에서는 자연스럽다. 그러나 이런 생각은 그 생각만큼 자연스러운 결과를 낳지 않는다.

A국 정부가 시중에서 판매되는 300원짜리 연필의 가격이 너무 비싸다고 생각해서 250원으로 내리겠다고 해보자. 시장가격 300원은 어떻게 나왔을까? 판매자가 그냥 300원이라고 하기 때문에 300원인 것이라고 하면 논리적인 대답이 아니다. 300원 안에는 정부조차 알기 어려울 만큼 엄청나게 많은 정보가 들어 있다. 연필 제조에 쓰이는 나무, 흑연, 고무, 철을 생산하고 운반하고 가공하고 만들고 판매하는 수많은 사람과 기계와 트럭과 배들이 투입된다(레너드 리드 교수의 ‘I, Pencil’ 참조). 정부는 300원을 250원으로 50원 내리라고 ‘간단하게’ 명령할 수 있지만 이 50원은 모든 단계에 부당한 영향을 미친다. 정부는 각 단계에서 왜 1원, 3원, 5원, 10원이 붙어서 최종 가격이 300원이 되는지 모른다. 시중에는 물론 250원짜리, 200원짜리 연필도 수없이 많다. 많은 사람은 모든 과정을 다 따지지 않고 가격이 주는 신호에 따라 얼마를 생산하고, 얼마를 소비할지를 정한다. 신기하지 않은가?

우유 가격과 관련한 재미있는 에피소드는 가격 통제가 어떤 비극을 낳는지를 잘 보여준다. 프랑스혁명 때 막시밀리앙 로베스피에르(1758~1794, 단두대 개발자)는 싼 가격으로 아이들에게 우유를 많이 먹여야겠다는 ‘착한 생각’을 했다. 그는 우유 가격을 강제로 내리는 조치를 내놨다. 가난한 아이들이 우유를 많이 마실 수 있게 됐을까? 낙농가는 그 가격에 우유를 생산할 수 없으니 젖소에게 주는 건초 가격을 내려달라고 호소했다. 로베스피에르는 재차 건초 가격을 통제했다. 그러자 건초를 만드는 사람들이 그 가격으로 건초를 줄 수 없다고 나자빠졌다. 로베스피에르는 이런 식으로 계속 다른 원가들을 통제해야 했다. 결국 우유산업이 몰락했고, 아이들은 이전보다 우유를 더 먹지 못했다.

조선시대에도 비슷한 이야기가 있다. 정조(1752~1800) 때 한양에 기근이 들어 쌀값이 치솟자 왕은 쌀값을 올려받는 자를 엄벌하라고 했다. 그러자 연암 박지원(1737~1805)이 명을 거둬달라고 호소했다. “지금 한양의 쌀값이 치솟고 있다는 소식에 지방 쌀장수들이 쌀을 가지고 한양으로 올라오고 있는데 왕이 그러시면 되돌아가고 말 것이고, 그러면 한양의 쌀 품귀현상은 다음 추수 때까지 해소되지 않을 것입니다.” 왕이 연암의 말을 알아듣고 명을 거뒀고, 시간이 지나자 한양 쌀값은 안정됐다.


그럼 정부가 가격을 통제해야 할 때는 없을까? 물론 있다. 전쟁이 벌어지면 정부는 모든 것을 통제한다. 일상의 체제가 전시총동원 체제로 변경되기 때문에 정부가 전시물품의 생산과 보급을 통제한다. 가격의 작동, 같은 말로 시장의 작동이 멈춘다. 너무나 많은 비용이 들어 정부가 아니고는 ‘규모의 경제’를 이루기 힘든 ‘자연 독점’ 상태일 때도 가격 통제는 일정한 정당성을 지닌다. 코로나19가 번졌을 때 정부가 마스크 가격을 통제하는 것도 단기적으로 지지를 받을 수 있다. 막 태동한 유치(幼稚)산업 보호를 위해 정부가 가격을 내리기보다 거꾸로 올리거나 유지해주는 가격 통제도 있을 수 있다. 최근 논란이 된 부동산 가격 통제는 어떨까? 은행 금리와 대출 이자율은? 단기적, 장기적, 정치적, 사회적 관점에 따라 가격 통제는 찬반 논란을 부른다. 독점 기업과 시장지배적 기업이 가격을 통제(담합)할 수도 있지 않으냐는 주장 역시 나올 수 있다. 이에 대비해 우리는 ‘반(反)독점법’을 두고 있다.

가격과 시장은 복잡계다. 너무나 많은 정보와 지식이 가격과 시장 안에 들어 있다. 연필, 우유, 커피, 빵, 휴대폰, 여행비에는 정부가 알 수 없는 수많은 단계와 사람에 대한 정보가 포함돼 있다. 이것을 통제한다는 것은 결국 정부가 모든 정보를 다 알 때만 가능하다. 로베스피에르의 우유 가격처럼 가격 통제가 실패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가격과 시장을 부정하는 사회주의 경제가 망했던 이유도 마찬가지다. 경제학에서 유명한 ‘사회주의 가격 계산 논쟁’은 더 긴 설명이 필요하므로 독자들이 직접 찾아보길 바란다.

고기완 한경 경제교육연구소 연구위원 dadad@hankyung.com
NIE 포인트
① ‘로베스피에르와 우유 가격’ ‘연암 박지원 쌀값’ 이야기를 자세히 알아보자.

② 레너드 리드 교수의 ‘I, Pencil’ 동영상을 유튜브에서 찾아보자.

③ 정부가 가격을 통제해야 할 경우는 없는지를 찾아보고 그 장단점을 토론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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