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름형 건강기능식품 세계 최초 출시…내년 매출 목표 1000억"

입력 2020-09-22 15:10   수정 2020-09-24 15:14


“구강붕해필름(ODF) 분야에서 우리 기술을 따라올 곳은 아직 어디에도 없습니다.”

장석훈 씨엘팜 대표는 회사 경쟁력을 묻는 질문에 이렇게 말했다. 발기부전 치료제로 나와 많이 알려진 필름형 의약품의 제조 특허 기술을 갖고 있는 이 회사는 의약품을 넘어 세계 최초로 건강기능식품까지 필름형으로 출시해 주목받고 있다. 면역력에 좋은 홍삼 프로폴리스 등을 간편하게 섭취할 수 있는 데다 효능도 즉각적으로 나타나는 필름형 제품의 장점이 알려지면서 홈쇼핑에서 매진 사례를 이어가기도 했다. 장 대표는 “미국 중국 등 해외로 진출해 수년 내 세계 1위 ODF 기업으로 키워내겠다”고 했다.
아메리칸 드림 일군 의류사업가
장 대표는 사업 수완이 남다르다는 소리를 듣는다. 그는 20대부터 의류사업으로 승승장구했다. 청계천에서 맞춤 와이셔츠를 만들어 납품했다. 기성복이 아니라 맞춤옷이 유행하던 시절이었다. 당시 국내에 흔치 않던 벤츠를 몰았을 정도로 잘나갔다. 남다른 노력 덕분이었다.

“일감이 몰리다보니 미싱판에 엎드려 선잠을 자기 일쑤였어요. 디자인에도 공을 많이 들였죠. 당시 국내에선 귀했던 명품을 해외에서 들여와 요모조모 뜯어보며 분석했습니다. 그런 노력이 통해서인지 우리 제품은 남다르다는 소리를 들었어요.”

순탄했던 사업에 급브레이크가 걸렸다. 1980년대 후반 불거진 백화점 사기 세일 사건의 유탄을 맞으면서다. 정가에 팔면서 마치 반값에 할인하는 것처럼 세일을 하던 백화점의 관행이 들춰진 것이다. 백화점에 납품하던 장 대표 사업도 한순간에 기울었다. 장 대표는 훌쩍 미국으로 떠났다. 머리라도 식히자는 심산이었다.

부동산 사업으로 성공한 친척집에 머물렀던 장 대표는 마음이 흔들렸다. “수영장과 테니스장까지 딸린 대저택에 사는 친척을 보면서 이런 게 아메리칸 드림이구나 싶더군요. 그래서 눌러앉기로 작정했어요. 현지 양복점에 곧바로 취업했죠.”

그는 쪽방에 살면서 성공을 꿈꿨다. 밤 늦게까지 와이셔츠 재단 연습을 했다. 1명이 1주일 걸리던 맞춤 양복 제작을 3명이 분업화하는 방식으로 하루 2~3벌을 만드는 공정 혁신도 그가 낸 아이디어였다. 2년6개월 만에 독립한 그는 할리우드에 입소문이 날 정도로 잘나가는 의류 사업가가 됐다.

그는 무역업으로 사업을 넓혔다. 1993년 미국 로스앤젤레스에 I&E라는 무역회사를 차렸다. 한국과 중국에서 만든 의류를 중남미 등 50여 개국에 수출했다. 하루 24시간이 모자랐다. 아침은 브라질에서, 점심은 아르헨티나, 저녁은 콜롬비아에서 먹었을 정도로 바빴다.
한눈에 알아본 ODF 가능성
의류 사업으로 잔뼈가 굵은 장 대표가 ‘외도’를 하게 된 계기는 우연이었다. 미국인 지인이 주름을 펴주는 화장품을 개발했으나 사업이 지지부진하자 장 대표에게 인수해줄 것을 제의했다. “바르면 금방 효과를 냈지만 백태가 생기는 현상 때문에 잘 팔리지 않았더군요. 이 문제만 해결하면 대박을 터뜨리겠다는 확신이 섰어요.”

회사를 인수한 장 대표는 박사급 연구원 3명을 채용해 연구개발에 매달렸다. 주름 없애는 화장품 미라보텍스는 그렇게 나왔다. 출시하자마자 물건이 달려서 못 팔 지경이었다. 연 매출이 100억원을 훌쩍 넘었다. 하지만 보톡스업체 엘러간의 소송에 발목이 잡혔다. ‘아직도 보톡스를 맞으십니까, 바르는 보톡스 미라보텍스’라는 광고 문구를 문제 삼으면서다. 결국 사업을 접어야 했다.

절망 속에서 장 대표는 새로운 기회를 봤다. 우연히 화이자가 개발 중이던 구강청결제 리스테린의 필름형 시제품을 접하고서다. 역한 맛이 나긴 했지만 혀에 닿으면 스르르 녹는 필름형 리스테린에서 의약품을 생각해낸 것이다. 그는 “이걸 약으로 만들면 이점이 많겠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했다.

그는 크리에이티브라이프라는 회사를 세웠다. ODF 기술을 개발하기 위해서였다. 그의 예상대로 리스테린 필름 제품은 큰 인기를 끌었다. 2001년 처음 출시된 이 제품은 한 해에 17000만달러어치 넘게 팔렸다. 편의성 때문이었다. 이후 노바티스 이노젠 온솔리스 등이 필름형 의약품을 잇따라 내놓았다.
빠르게 커지는 ODF 시장
ODF는 구강 점막의 모세혈관을 통해 약물이 흡수되는 방식이다. 알약이나 물약 등 기존 제형에 비해 흡수력이 월등히 좋다. 기존 제형 대비 흡수율은 200% 이상 높다. 흡수 시간도 3분의 1밖에 걸리지 않는다.

한 연구실험에서 발기부전 치료제인 화이자의 비아그라 정제와 이를 ODF로 만든 실데나필을 비교했더니 실데나필 흡수율이 확연히 뛰어난 것으로 나타났다. 이집트 남성 30~45세 12명을 대상으로 한 실험에서 실데나필 약물 흡수율이 225% 더 높았다. 45~66세 남성 36명을 대상으로 한 실험에서도 평균 흡수율이 190% 높은 것으로 확인됐다.

이 때문에 ODF는 21세기를 대표하는 의약품 신제형이라는 평가까지 받는다. 최근 10년 새 SCI(과학기술논문 인용색인)급 논문도 쏟아지고 있다. 이전까지 한 해 2~3건에 그쳤던 ODF 관련 SCI급 논문 건수는 2010년 이후 꾸준히 늘어나 한 해 60여 건이 나오기도 했다. 지금까지 나온 SCI급 논문은 300여 편에 이른다. 장 대표는 “ODF의 생체이용률이 우수하다는 연구 결과가 잇따르면서 글로벌 제약·바이오업체들의 관심이 갈수록 커지고 있다”며 “지갑 등에 간편하게 넣고 다닐 수 있는 휴대 편의성도 장점으로 꼽힌다”고 했다.

ODF 의약품 시장도 빠르게 커지고 있다. 2009년 2000억원에 그쳤던 세계 ODF 시장은 올해 2조3000억원 규모로 커질 전망이다. 다양한 의약품으로 개발되고 있어서다. 미국 모노솔, 독일 LTS, 미국 바이오딜리버리사이언스, 독일 라브텍 등이 시장을 주도하고 있다. 알레르기 치매 만성통증 아편중독 당뇨 루게릭병 등 치료 분야도 다양하다. 국내에서는 씨티씨바이오 CMG제약 서울제약 등이 필름형 의약품을 만든다.
세계 유일 캐스팅 방식 제조기술
기존 ODF 기술은 롤 방식이다. 약물을 분사해 도포하는 방식으로 얇은 비닐 같은 필름을 만든다. 이후 코팅 숙성 커팅 등 모두 8개 공정을 거친다. 최종 생산까지는 꼬박 1주일이 소요된다. 롤 방식의 단점은 약물 배합량을 정확히 맞추기가 쉽지 않다는 것이다. 이 때문에 수율이 50% 안팎에 그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장 대표는 “필름형 의약품을 제조하는 세계 16개 기업 모두 롤 방식이어서 엇비슷한 문제를 안고 있다”고 했다.

씨엘팜은 캐스팅이라는 새로운 공법으로 문제를 해결해냈다. 마치 프린팅하듯 필름을 찍어낸다. 이 공법은 불량 검수, 포장 등에 걸리는 시간을 감안해도 이틀이면 완제품을 출하할 수 있다. 수율도 90% 안팎으로 높다. 캐스팅 방식은 씨엘팜이 특허를 갖고 있는 세계 유일의 기술이다. 장 대표는 “조제와 건조 두 가지 공정만 거치면 되는 데다 10분이면 제품을 만들 수 있어 경쟁 제품 대비 가성비가 월등히 뛰어나다”고 했다.

2003년 귀국해 씨엘팜을 세운 그는 국내 반도체 장비업체와 손잡고 15년에 걸쳐 캐스팅 방식 ODF 제조 기술을 개발했다. 기존 롤 방식으로는 승부를 보기 어렵다는 판단에서였다. 어렵사리 기술을 개발했지만 식품의약품안전처의 허가 문턱에 막혔다. 의약품은 허가를 받았지만 필름 제형의 건강기능식품은 허가를 내주지 않았다. 최초 제품이다보니 허가 기준조차 없었던 탓이다. 건강기능식품 허가에는 꼬박 6년이 걸렸다. 2018년 필름형 홍삼 제품이 첫 허가를 받았다.

이 회사가 현재 생산 중인 ODF 제품은 17종이다. 의약품은 타다라필 실데나필 등 발기부전 치료제, 도네페질 성분의 알츠하이머 치매 치료제 등 12종이다. 닥터필 브랜드의 건강기능식품은 홍삼 프로폴리스 유산균 등 5종이다. 개발 중인 의약품과 건강기능식품은 100여 종에 이른다. 장 대표는 “작년 10월 내놓은 필름형 프로폴리스 제품은 NS홈쇼핑 등에서 연속 매진될 정도로 큰 인기를 끌고 있다”며 “홈쇼핑 재구매율이 60%에 이를 정도로 효능을 인정받고 있다”고 했다.
“올해 매출 작년 2배 성장 전망”
씨엘팜의 연구소와 공장은 충남 아산에 있다. 전체 직원 61명의 절반이 넘는 43명이 이곳에서 근무한다. 최근 50억원을 들여 공장을 증설해 생산능력을 3배로 늘렸다. 코로나19 영향으로 건강기능식품 세계시장이 급성장하고 있어서다.

씨엘팜은 올 상반기에 76억원의 매출을 올렸다. 작년 매출 81억원에 버금가는 수준이다. 올해 매출 목표는 150억원이다. 매출의 20%는 수출이다. 내년에는 증설 효과가 가시화되면서 매출이 1000억원대로 껑충 뛸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해외 진출도 추진 중이다. 미국 중국 등에 합작사를 세워 ODF 의약품과 건강기능식품을 생산할 계획이다. 작년에만 30개국 80여 바이어가 씨엘팜을 찾아 합작 제의를 했을 정도로 이미 해외에선 기술력을 인정하고 있다. 장 대표는 “코로나19 여파로 합작사 설립이 늦춰지고 있지만 2년 내에 해외 생산기지를 가동할 계획”이라며 “2028년께는 세계 1위 ODF 기업으로 발돋움할 수 있을 것”이라고 했다.

박영태 기자 pyt@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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