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정환의 데스크 칼럼] 같은듯 다른 韓·日의 '미래지향적'

입력 2020-09-23 17:55   수정 2020-09-24 00:22

스가 요시히데 내각이 지난 16일 출범했다. ‘아베 시즌2’로 불린다. 스가 총리는 아베 신조 내각의 각료 11명을 재기용했다. 전체 20명 중 절반을 넘는다. 아베 전 총리의 친동생인 기시 노부오 의원은 방위상에 임명했다. 자민당 내 최대 파벌이자 아베가 속한 호소다파 등 주요 5개 계파의 지지 속에 탄생한 만큼 어느 정도 예견된 조각이다. 스가를 민 아베 전 총리는 19일엔 보란듯이 A급 전범이 합사된 야스쿠니신사를 참배했다. 이른바 ‘상왕정치’로 외교·안보 분야에서 영향력을 행사하려는 의도가 느껴진다.

스가 내각 출범이 얼어붙은 한·일 관계를 획기적으로 바꾸긴 힘들다는 관측이 지배적이다. 스가 총리는 아베 내각에서 7년8개월간 최장수 관방장관을 지냈다. ‘아베의 입’으로 국정철학을 공유했다. 스스로도 “아베 정권의 온전한 계승”을 말한다.
한·일 외교, 정상화 조짐
지난해 강제징용 배상 문제를 둘러싼 한·일 간 갈등은 아베 정부의 한국 수출규제, 군사정보보호협정(GSOMIA·지소미아) 중단 위기로 이어졌다. 아베 전 총리는 작년 12월 한·중·일 정상회의에서 문재인 대통령을 만난 뒤 9개월간 전화 한 통 없었다. 그걸 지켜본 스가 총리다. 문 대통령과의 첫 전화 통화도 24일 있을 것이라고 한다. 나흘 전 이미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스콧 모리슨 호주 총리 등과 통화했다. 당분간 보수·우익 진영의 지지를 얻기 위한 행보를 이어갈 공산이 크다.

그렇다고 아주 나쁘기만 한 건 아니다. 스가 총리는 ‘전략적 외교’를 표방했다. 아베 전 총리는 ‘이념적 보수주의자’인 데 비해 스가 총리는 ‘현실적 보수주의자’라는 평가(조양현 국립외교원 교수)다. 관방장관으로 있으면서 야스쿠니 신사를 한 번도 참배하지 않았을뿐더러 아베의 참배를 만류하기도 했다. 아직 ‘스가 본색’을 드러낼 때는 아니라지만 ‘실용주의’가 근저에 깔려 있다고 한다.

최근 한·일 정상 간 외교의 물꼬도 터졌다. 문 대통령이 취임 축하 서한을 보냈고 스가 총리는 사흘 만에 답신했다. 강민석 청와대 대변인은 “문 대통령이 미래지향적으로 양국 관계를 개선해나가자는 뜻을 전했다”고 했다. 스가 총리도 “어려운 문제를 극복해 미래지향적 한·일 양국 관계를 구축해나가기를 기대한다”고 답했다.
국적은 바꿔도 이웃은 못 바꿔
일본과의 관계에서 한국 측은 ‘미래지향적’이란 말을 다소 꺼린다. ‘과거사에 대한 진정한 사죄와 반성’이란 전제가 늘 있어야 하기 때문이다. ‘친미’ ‘친중’이란 말은 스스럼없이 쓰지만 ‘친일’ 대신 ‘지일’을 고집하는 것과 비슷한 이유다. 우리는 과거사 정리를 기반으로 한 미래지향이지만 일본은 ‘이제 그만 덮고 가자’는 의미다. 이를 잘 아는 문 대통령이 미래지향적이란 말을 먼저 쓴 건 분명 달라진 분위기를 보여준다.

한·일 관계 경색은 지난 2년간 경제와 안보 측면에서 악영향을 미쳤다. 위안부·강제징용 등 과거사 문제에서는 해결 방안을 모색해가면서도 경제·문화·인적 교류 등은 지속해야 한다.

2014년 5월 일본 도쿄 오쿠라호텔에서 열린 한·일 경제인회의에 간 적이 있다. 일본 측 단골 참석자인 아소 유타카 아소시멘트 사장이 있었다. 아소그룹 창업자의 증손자이자 아소 다로 부총리의 동생이다. 그는 “국적은 바꿀 수 있지만 이웃나라는 바꿀 수 없다”고 했다. 전범기업의 후손이란 게 꺼림칙하지만 맞는 말이다. 경제·문화 등 상호 이익을 위해 협조할 분야가 많다. 문 대통령이 ‘투 트랙 전략’에 속도를 내야 할 때다.

ceoseo@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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