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형규 칼럼] 20~30대 '영끌 투자'의 부수효과

입력 2020-09-23 17:54   수정 2020-09-24 00:26

‘요리에 백종원이 있다면 주식에는 존 리가 있다.’ 백종원 대표가 누구나 요리할 수 있음을 알려줬다면, 존 리 메리츠자산운용 대표는 주식 투자로 부자가 될 수 있음을 일깨웠다는 얘기다. 20~30대 MZ세대(밀레니얼+Z세대) 사이에선 ‘존 리 어록’이 복음처럼 회자되고, 그를 녹두장군 전봉준에게 빗대 ‘존봉준’으로 부른다.

올 상반기 신규 증권계좌 60% 이상이 2030 소유고, 동학개미·서학개미의 중심에 그들이 있다. 올 들어 국내외 증시에 들어온 개인 자금이 100조원을 넘을 만큼 그 위세가 당당하다. 크고 작은 투자공부 모임을 통해 경제신문과 유튜브로 학습한 ‘주린이(주식+어린이)’들이 거침없이 베팅한다.

코로나 위기 국면에서 MZ세대의 주식 입문은 어쩌면 필연에 가까웠다. 부동산은 너무 멀고, 예·적금은 너무 심심하기 때문이다. 주식이라도 잡지 않으면 영영 ‘부의 추월차선’을 탈 수 없을 것 같았다. 이미 비트코인, 옵션, 원유ETN(상장지수증권), 곱버스(2×인버스) 등 초위험 자산을 두루 경험한 이들이다.

최근 증시가 조정에 들어가면서 이들의 시름도 적지 않다. ‘영끌(영혼까지 끌어모아)’ ‘빚투(빚내서 투자)’ ‘주식세끼(하루 세 번 매매)’ 같은 유행어에 잠재됐던 위험성도 드러나고 있다. 지난 반년간 강세장에서 수익을 낸 것이 자신의 ‘실력’인 줄 알기 쉽다. 물이 들어올 때는 모든 것이 뜨지만 누가 알몸으로 수영하는지는 물이 빠져봐야 안다.

백종원 대표가 아무나 식당을 하면 안 된다는 점을 경고했듯이 존 리 대표도 누구든 주식을 사면 부자가 된다고 하진 않았다. 오히려 그 반대다. ‘존 리 어록’의 요지는 한마디로 우량주를 사 모아 장기 보유하는 정공법으로 투자하라는 것이다. 5~10년 뒤를 보고, 꾸준히 돈 버는 기업을 골라야 한다. 사실 그게 가장 어렵다.

‘영끌 투자’가 MZ세대를 부의 추월차선으로 이끌지, 비싼 수업료가 될지는 현재로선 속단하기 어렵다. 다만 단기적으로 ‘초심자의 행운’이 작용할 순 있어도 길게 보면 ‘평균으로의 회귀’로 이어진다는 점을 명심해야 한다. 과도한 기대수익, 단타 매매, 탐욕과 공포가 그렇게 만든다. 젊은 세대가 보유한 최대 자산이 ‘시간’임을 깨닫고 긴 안목에서 봐야 성공 확률을 높일 수 있을 것이다.

미래 주역인 MZ세대가 주식에 눈을 뜬 것은 한국 경제에 다양한 부수효과를 가져올 듯하다. 주식을 산다는 건 해당 기업을 소유한다는 의미다. 아는 만큼 보이고, 알면 사랑하게 된다고 했다. 주식에 투자하며 경제뉴스에 흥미를 느끼고 이해하기 시작했다는 청년이 많다. 학교에선 시장경제 교육을 제대로 받은 적이 없지만 투자한 기업은 물론 해당 업종·연관 산업과 국내외 정치·경제 동향까지 두루 주목하게 된 것이다. 해외 주식을 사놓고 매일 새벽 외신까지 찾아볼 정도다. 이들에게 엉터리 경제정책을 강요하면서 ‘묻지마 투자’는 위험하다고 했다간 ‘너나 잘하세요’라는 답을 듣게 될 것이다.

지난 10년을 돌이켜보면 한국 사회의 경제 지력(知力)이 과연 성장했는지 의문이다. 정치인들은 말로는 미증유의 위기라면서 거꾸로 반(反)기업·반시장의 극한으로 치닫는다. 세상에서 제일 센 규제, 어디에도 없는 규제로 자국 기업을 이토록 못살게 구는 나라가 또 있을까 싶다. 기업 족쇄가 될 법안을 ‘공정경제’라고 포장하고, 표(票)퓰리즘을 경제민주화라고 화장한다. 소련 북한 베네수엘라 등 국가 간섭의 계획경제로는 경제가 번영할 수 없음을 숱하게 목도하고도 자꾸 그 길로 가려고 한다.

전직 청와대 정책실장은 “아파트를 사면 보수화된다”고 했지만, MZ세대가 주식 투자로 경제에 눈뜨면 ‘친(親)시장·친기업’이 될 것이다. 이들은 무작정 친기업이 아니라 ‘올바른 혁신 기업’일 때 전폭적으로 지지한다. 이게 진정한 시장에서의 공정경제가 아닐까.

송해 선생이 “기업이 살아야 일자리가 늘고, 나라가 산다”고 했던 게 벌써 8년 전이다. 이제 MZ세대가 주식을 통해 간판기업들의 글로벌 위상과 경제가 돌아가는 메커니즘을 체득하며 그 말의 의미를 체감하고 있다. 여기서 우리 경제의 희망을 본다.

ohk@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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