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을 어떻게 삽니까. 대체 결혼을 하라는 건지 말라는 건지", "결혼해서 애 낳은 친구 봐. 세금 낸적 한 번도 없는데 혜택은 다 받어. 나는 20년 넘게 직장 한번 못 쉬고 세금 냈어도 혜택은 커녕 남들 받는 것도 하나도 못 받는다고"….
3040세대 싱글남녀들의 불만이 폭발하고 있다. 자유의 대가라고 하기엔 부동산 대책에서 너무도 소외됐기 때문이다. 특히나 수능세대라고 불리는 X세대와 에코세대라고 불리는 Y세대인 30대 중반~40대 중반의 불만은 셀 수 없다. 언제일지 모르는 결혼을 위해 아파트를 사놓지도 않았다. 직장생활 중에 외환위기와 금융위기까지 겪으면서 치열한 사회생활을 해왔다. 집값이 이렇게 뛸 줄 알았다면 갭투자로 작은 아파트라도 마련해 둘걸이라는 생각에 후회막심이다.
저마다 붙들고 얘기하는 하소연을 들어보면 한숨이 절로 나온다. 40대 초반의 싱글남인 김모씨는 '결혼과 집'의 관계는 모순이라고 얘기한다. 결혼을 해야 집을 사던 시절에서 집이 있어야 결혼을 할 수 있는 시대가 되서다. 창원 출신인 그는 대학 합격과 함께 서울살이를 시작해 20년을 살면서 서울사람이 다 됐다. 학교, 군입대, 취업준비 등으로 서울의 원룸을 전전하다 이제 풀옵션 오피스텔에 전세로 자리잡았다. 번듯한 차는 있지만 보금자리는 마땅히 없다.
마음 한켠에는 '결혼하면 집 사는데 좀 보태주시겠지'라고 생각하지만 막상 말을 꺼내기도 어렵다. 여자친구도 없는데 돈 얘기부터 할 수도 없어서다. 그렇다고 고향집에 서울 집값 얘기를 꺼내면서 부담을 드리기도 싫다. 그는 "어차피 해주실 거 결혼 하건 말건 해달라고 하고 싶다"면서도 "부모님이 어느덧 연로하셔서 철없이 이런 얘기하기도 쉽지 않다"고 말했다.
그는 "친구들은 집에서 나는 사회에서 각자 열심히 살았을 것이다"라면서도 "공공주택에 싸게 들어가거나 특별공급으로 아파트에 당첨되고 프리미엄이 몇억이니 불었다는 소리를 듣고 있으면 나는 뭔가하는 마음이 든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직장생활을 15년동안 꼬박하면서 세금은 다 냈는데 이번에 2만원 통신비 지원도 못받는다"며 씁쓸해했다.
내년 봄 결혼을 준비중이던 45세의 임모씨는 내 집 마련의 험로를 걷고 있다. 신혼부부 특별공급을 비롯해 정부가 공급하는 공공주택을 받을 수 있는 조건이 넘쳐서다. 그는 "월평균 소득에서 모든 조건을 넘다보니 어떤 혜택도 받을 수 없다"며 "대기업도 아니고 중소기업에서 20년 가까이 근속하다가보니 연봉이 오른건데 어떻게 해야할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임씨는 무주택자지만 보금자리론, 디딤돌대출 등 공공기금을 통한 대출조건이 모두 걸리는 상태다. 이리저리 따져보던 그는 혼인신고를 나중에 할 생각이다. 그는 "신규분양은 어렵고 기존 아파트를 사려다보니 예비신부와 영끌을 해야할 판"이라며 "계산해보니 각자 대출을 끌어오는 게 나을 것 같아서 혼인신고를 미루려고 한다"고 말했다. 그는 "솔직히 지금 연봉은 높다고 해도 앞으로 소득 보장이 되는 기간이 짧다"며 "애들이 대학도 가기전에 퇴직을 하게 될텐데 인생계획을 어떻게 세워야 할지 모르겠다"고 토로했다.
임씨의 친구인 김모씨는 아내 자녀 둘과 수도권 신도시에 살고 있다. 김씨는 "미혼인 친구들은 결혼이나 출산·육아 휴가도 못가고 열심히 살았다"며 "자기 짝을 늦게 만났다는 이유로 주택정책에서 배제되는 건 불공평하다는 생각이 든다"고 전했다. 김 씨는 미혼기간이 길어진 싱글남녀를 위해 생애최초주택의 조건을 새로 만드는 게 필요하다는 아이디어를 내기도 했다.
한편 미혼남녀들의 현재 포기 1순위는 결혼과 내 집 마련이라는 조사 결과가 나왔다. 결혼정보회사 듀오가 지난 8월26~31일까지 미혼남녀 총 500명(남 250명/여 250명)을 대상으로 ‘2030 걱정거리와 미래 기대감’ 설문조사를 실시한 결과다.
경제적으로 가장 큰 근심은 ‘높은 집값’(39.2%)이었고 ‘낮은 임금’(21.2%), ‘높은 물가’(16.6%) 순으로 조사됐다. 2030 미혼남녀가 현재 가장 포기하고 있는 부분은 ‘결혼’(15.6%)과 ‘내 집 마련’(15.0%)이 비슷한 수치로 가장 높았다. 남성은 ‘연애’(17.6%), 여성은 ‘결혼’(17.2%)을 현재 가장 포기하고 있는 부분으로 꼽았다.
김하나 한경닷컴 기자 hana@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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