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 칼럼] 집값 안정, 수급부터 풀어야

입력 2020-09-27 18:17   수정 2020-09-28 00:14

겸재 정선의 웅혼하고 장엄한 ‘인왕제색도’에 나오는 기와집에는 간절한 우정이 담겨 있다. 그 집에 사는 사람은 임종을 앞둔 60년 절친. 일흔여섯의 정선은 기적처럼 그가 다시 일어나기를 염원했다. 긴 비가 그친 뒤 인왕산이 다시 햇빛을 맞는 것처럼….

제주도에 유배된 추사 김정희가 그린 ‘세한도’의 허름한 집은 염량세태(炎凉世態)를 꾸짖는 선비의 올곧은 의지를 나타낸다. 공자가 “겨울이 돼서야 시들지 않는다는 것을 알게 된다”는 소나무와 잣나무가 이 집의 벗이다.

그렇다면 2020년 한국의 집에는 어떤 의미가 새겨져 있을까. 요즘 집 하면 떠오르는 단어는 ‘갭투자’ ‘강남’ ‘패닉바잉(공황 구매)’ 등이다. ‘주거 공간’이라는 인식은 이미 상당히 퇴색했다. 이제 투자 가치를 고려하지 않고 실거주 목적으로만 집을 사는 사람은 거의 없다.
증시처럼 바뀐 부동산 시장
투자 대상이 되면서 집은 점차 주식을 닮아가고 있다. 과거에는 전철역이 들어서면 발표 때 집값이 오르고, 짓는 동안 뛰고, 완성되면 또 상승했다. 즉 오랜 기간에 걸쳐 호재가 인식됐다. 하지만 지금은 다르다. 호재가 나오면 너무나 많은 부동산 전문가의 꼼꼼한 분석을 거쳐 곧바로 시세에 반영된다. 현재 실적보다 미래 성장성을 중요시하는 주식 시장과 같다.

정부가 지난 6월 강남구 청담·대치·삼성동과 송파구 잠실동을 토지거래허가구역으로 묶은 것은 증시에서 급등주를 투자경고 종목으로 지정해 30분 단위로 단일가 매매만 가능하도록 한 것과 비슷하다. 둘 다 과열을 막겠다는 것인데, 다르게 말하면 토지거래허가구역은 가만히 놔두면 급등할 곳이라고 정부가 인정한 셈이다.

부동산 시장을 증시에 빗대 보면 이번 정부가 23번의 대책을 쏟아내고도 집값을 잡지 못한 이유가 더 뚜렷해진다. 규제는 수급 불균형을 가져오는 것이 대부분이었다.

종합부동산세 등 보유세를 높여 주택을 소유하고 있기 힘들게 만들었지만, 그렇다고 팔 수도 없게 만들어 놨다. 양도세 등 세금을 내고 나면 남는 게 없기 때문이다. 그뿐만이 아니다. 서울에서 15억원 초과 주택은 담보 대출을 전혀 받을 수 없다. 즉 수익이 났다고 삼성전자 주식을 팔면 다시는 삼성전자를 살 수 없는 구조다. 보유세가 힘겨워도 계속 들고 갈 수밖에 없다.
집값 진정세 오래 못 갈 수도
공급 쪽은 더하다. 강남에 많은 재건축 사업을 꽉 틀어막았다. 모두가 투자하고 싶어 하는 우량주의 상장을 막은 것과 뭐가 다른가. 하남 교산 ·남양주 왕숙 등 3기 신도시를 지어 수급 불안을 잠재우겠다고? 요즘 대세인 ‘BBIG(바이오·배터리·인터넷·게임)’ 종목을 사고 싶어 하는 투자자들에게 다른 업종의 상장을 대거 늘릴 테니 기다리라고 말하는 것과 마찬가지다.

합리적인 투자자는 주당 가격이 비싸더라도 더 높은 수익을 안겨줄 수 있는 우량주로 갈아탄다. 부동산 시장도 다르지 않다. 주택보급률이 100%를 넘어도 강남 등 상급지로 옮겨가고 싶은 욕구와 수요는 사라지지 않는다. 다 아는 이 사실을 정부만 모른 척한다.

압구정, 개포 등 인기 지역에서는 아직 신고가 매매 거래가 심심찮게 터지고 있다. 하지만 정부 바람대로 과열 양상은 상당히 진정되고 있다. 특히 다주택자들이 커진 보유세 부담을 견디기가 만만치 않을 것 같다.

그러나 ‘수급은 모든 재료에 우선한다’는 증시 격언이 떠오르는 건 왜일까. 억지 규제에 눌린 시장이 다시 폭발할 에너지를 축적하고 있는 건 아닌지 불안하다.

venture@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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