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 김종인…보수 구원투수인가, 트로이의 목마인가

입력 2020-09-27 17:51   수정 2020-09-28 01:04


“도대체 정체가 뭐냐.” 정치인 김종인을 말할 때 ‘꼬리표’처럼 따라다니는 질문이다. ‘진보인가 보수인가’ ‘시장주의자인가 사회주의자인가’라는 질문이 끊임없이 제기된다.

지난 25일 김종인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을 찾아간 것도 그의 경제철학과 정치적 지향점이 궁금해서였다. 경제민주화를 주장하면서 보수 야당 비대위원장이 된 인물, 양쪽 진영에서 늘 정체성을 의심받았던 노회한 정치인…. 이날 만난 김 위원장은 “이제 국민의힘을 보고 보수정당이란 소리 하지 말라”고 잘라 말했다. “(정당을) 지키기 위해선 변해야 하는데 지금 보수는 진짜 보수가 뭔지를 모른다”고도 했다.

4년 전 더불어민주당 비대위 대표였던 그는 지난 6월 국민의힘 비대위원장 취임 이후 당 정강·정책에 경제민주화를 명시하는 등 광폭 행보를 이어오고 있다. 자유시장경제를 지지하는 보수진영 유권자들은 김 위원장의 행보에 의구심을 나타내기 시작했다. 그는 인터뷰에서 “경제학원론 첫 장만 보면 시장경제가 뭔지는 알 수 있다”며 “시장경제가 어떻게 변화하는지, 일반 국민의 성향이 어떻게 바뀌는지 따라가지 못한다면 그 정당은 실패한다”고 했다. 자유시장경제 가치를 지키기보다는 유권자 요구에 맞춰 정권을 가져오겠다는 의지가 먼저 읽히는 발언이다.

김 위원장은 그동안 경제민주화 실현을 위해서라면 어떤 정치세력과도 손 잡을 수 있다는 태도를 보여왔다. 노태우 정부에서 경제수석을 지낸 그는 2004년엔 새천년민주당 국회의원으로, 2012년엔 다시 새누리당의 총선과 박근혜 당시 대통령 후보 지원에 나섰다. 2012년 김 위원장은 “내가 다른 후보(박 후보)를 대통령 만들려고 나와 있지만 대선이 끝나고 (문재인 후보가 당선돼) 나를 필요로 하면 도와줄 수 있다”고 언급하기도 했다. 그는 2016년엔 민주당 비대위 대표를 맡아 20대 총선 선거전략을 이끌었다.

김 위원장은 이날도 “국민의힘이나 민주당이나 따져보면 별로 다른 게 없다”고 했다. 정부·여당이 추진하는 ‘기업규제 3법’에 대해서도 “그 사람들(민주당) 제대로 못 할테니 너무 걱정하지 말라”고 냉소했다.
'이념 정체성' 의심받는 김종인…"보수란 딱지가 뭐가 중요한가"
경제민주화 위해 수차례 당 바꿔
비례대표로만 5선을 한 김종인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은 4선을 지내는 동안 한 건의 법안도 발의하지 않다가 20대 국회 들어 처음으로 법안 하나를 대표발의했다. 현재 ‘기업규제 3법(공정경제 3법)’ 중 하나인 상법개정안이다. 김 위원장이 당시 대표발의한 법안엔 다중대표소송제 도입과 이사회 투명성 제고 방안 등이 담겼다. 그는 인터뷰 내내 규제3법이 기업들의 경영활동을 위축시킬 수 있다는 비판에 전혀 개의치 않는 모습을 보였다.
“기업들, 사회 위해 뭐 했나”
그는 해당 법안에 대한 기업들의 우려에 “대한민국 경제를 자기네들(기업들)만 걱정하는 줄 아느냐”며 “한국 경제 잘못되는 입법 안 할 테니 걱정 말라”고 선을 그었다. 논의의 여지를 완전히 닫아버린 표현이다. 기업들이 ‘엄살’을 부리고 있다는 인식도 확연히 드러냈다. 그는 “(기업규제 3법) 된다고 해서 기업 못 하냐고 묻는다면 아니다”며 “다 재주가 있어서 살아갈 수 있는 양반(대기업)들”이라고 했다. “내가 과거에 다 경험해봤지만 법을 회피할 수단은 누구보다 많은 게 바로 기업하는 사람들”이라고도 덧붙였다. 그러면서 “투명하게 경영하고 사회적으로 지탄받을 짓을 안 하면 기업들이 걱정할 필요가 없다”고 했다.

그는 이전에도 여러 차례 기업에 대한 부정적 인식을 표출해왔다. 김 위원장을 잘 아는 한 중견기업 회장은 “헌법에 들어간 경제민주화 조항(119조2항)을 (김 위원장이) 가장 자랑스러워 한다”고 전했다. 당시 거세게 반발했던 고(故) 정주영 현대그룹 명예회장과 김우중 전 대우그룹 회장과의 악연 등으로 지금도 재벌에 대한 반감을 갖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그의 인식은 과거 노태우 정부 시절 경제정책을 주도하면서 ‘관치경제’를 겪었던 경험 때문이라는 평가가 많다. 삼성이 과거 자동차 사업 진출을 위해 정관계에 요청한 것을 거론하면서 “이런저런 루트를 통해 로비를 하도 많이 벌이니까 노태우 전 대통령이 ‘그냥 그거 해주면 안 될까?’라고 조심히 물어봤을 정도”라며 “국가 경제의 합리성이란 개념은 안중에도 없는 사람들”이라고 언급하기도 했다. 그는 ‘시대가 달라져 기업들의 행동 방식이 변하지 않았느냐’는 질문에도 “과거에 한번 시스템이 그렇게 만들어진 이상 지속될 수밖에 없다”며 기업들이 달라지지 않았다는 의견을 내놨다.

김 위원장 스스로 자유민주주의와 시장경제를 얘기하면서 시장에 반하는 정책을 쏟아내고 있다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이 때문에 보수정당의 핵심 지지층은 그가 정말 보수의 대표가 맞는지 의문을 갖는다. 그는 이날도 손경식 한국경영자총협회 회장이 지난 23일 찾아온 것을 언급하면서 “국가가 사회적으로 어려움에 처했을 때 기업들이 진정시키려는 노력을 했냐고 (손 회장에게) 물었다”며 “미국은 부호들이 먼저 나와서 ‘우리한테서 세금 더 걷어가라’고 했다”고 비교했다.
자유시장경제 가치 버리나
김 위원장은 노태우 정부 경제수석으로 일하던 시절 재벌의 비업무용 부동산을 강제 매각하도록 한 조치를 단행했다. 이 조치는 지금까지도 역대 최강도의 재벌규제로 평가받는다. 정주영 전 명예회장이 김종인이라면 자다가도 일어나 치를 떨었다는 일화가 전해질 정도다.

그는 차기 대권에 보수정당 대표로 나설 인물에 대해 “당 안팎에 후보 너덧 명이 있다”면서도 “지금 이 자리에서 이름을 공개할 수는 없다”고 했다. 대신 “보수니 진보니 하는 엉뚱한 이분법에는 상관하지 않는다”고 진영을 열어놨다. 그는 국민의힘에 대해서도 “이제는 보수정당이란 소리 하지 말라”고 했다. “시대의 변화에 맞게 방향을 설정하고 자유민주주의 정당이라 하면 되는 거지, 거기에다가 보수 딱지 딱 붙이려고 하면 안 된다”고 했다.

일각에선 기회가 온다면 김 위원장 스스로 대선에 나설 것이란 관측도 나온다. 국민의힘의 한 중진의원은 “지난 8월 광주의 5·18 국립묘지 앞에 무릎을 꿇고 사죄하는 김 위원장을 지켜본 후 ‘대선 후보의 꿈을 버리지 않고 있나’라는 당내 관측이 크게 늘었다”고 전했다.

80세가 넘은 나이에 국민의힘 비대위원장으로 나선 것부터가 경제민주화라는 자신의 숙원을 이루기 위한 ‘마지막 승부수’를 던진 게 아니냐는 분석이다. 단순히 국민의힘의 ‘법정관리인’ 역할을 넘어 정권 창출에 적극적으로 관여하려는 의지가 강하게 엿보인다는 평가다. 일각에선 그가 보수진영이 오랫동안 지켜온 자유민주주의와 시장경제라는 가치를 형해화시키는 ‘트로이의 목마(몰락의 계기가 되는 결정적 사건)’가 될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국민의힘 한 중진 의원은 “정권만 되찾아오면 된다는 목표 아래 보수정당의 가치는 아예 저버려도 되는지 의문”이라며 “대한민국 역사 속에서 발전시켜온 소중한 가치들이 근본부터 흔들릴까 겁난다”고 했다.

■ 김종인 대표는…

△1940년 서울 출생
△중앙고
△한국외국어대 독일어과
△독일 뮌스터대 경제학 석·박사
△서강대 경제학과 교수
△11·12·14·17·20대 국회의원
△보건사회부 장관
△대통령비서실 경제수석비서관
△새누리당(현 국민의힘) 국민행복추진위원장
△건국대 경제학과 석좌교수
△더불어민주당 비상대책위원회 대표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


좌동욱/고은이/김소현 기자 leftking@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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