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의 창] 스가는 어떻게 일본 총리가 됐을까

입력 2020-09-28 18:02   수정 2020-09-29 00:21

지난 16일 제99대 일본 총리 스가 요시히데(菅義偉) 정권이 출범했다. 스가가 총리가 된 것은 아주 이례적인 일이다. 일본에서 정치가로 출세하려면 간반(看板·학벌), 지반(地盤·지연), 가반(·돈)이라는 ‘삼반’이 필요하다고 회자되곤 한다. 간반은 높은 지명도, 지반은 충실한 후원 조직, 가반은 풍부한 선거자금 동원력을 뜻한다. 삼반이 없던 스가가 어떻게 일본 총리가 됐는지, ‘기대려면 큰 나무에 기대라’ ‘계속은 힘이다’ ‘무파벌의 파벌 제어와 소외자 파고들기’라는 세 가지 요인으로 풀어갈 수 있겠다.

우선 스가는 ‘기대려면 큰 나무에 기대라’는 일본의 속담 전략을 잘 이용했다. 135년의 의원내각제 역사에서 가장 큰 힘을 발휘해 온 정치세력은 메이지(明治) 신정부를 세우는 데 핵심 역할을 한 야마구치현(山口縣) 출신이다. 지금까지 65명의 총리가 있었는데 야마구치현 출신이 9명이나 된다. 동북지방은 메이지 신정부 측과 에도(江戶) 막부가 싸울 때 막부 편에 섰던 연유도 있어 정치 기반이 약했다. 실제로 동북지방 아키타(秋田)현 출신 총리는 스가가 처음이다. 스가는 자기에 비해 삼반이 월등히 강한 야마구치현 출신 아베 신조(安倍晋三)를 내세웠고 자신은 막후 역할을 자처했다. ‘아베 도령’을 무동 태워 총리에 앉히는 전략이었고 그 전략은 잘 맞아떨어졌다.

다음으로 스가는 ‘계속은 힘이다’라는 뚝심으로 밀고 나갔다. 그는 아베에 대한 충성으로 일관하며 정치적 잡음을 잠재우는 해결사로 나섰다. 가장 오랜 기간 총리를 지낸 아베를 보좌하며 제2차 아베 정권(2012년 12월~2020년 9월) 내내 최장수 관방장관으로 꾸준히 자신의 지명도를 높여갔다. 아베가 말실수하거나 무리수를 둬도 거기에 토 달지 않고 비호하고 언론과 여론의 비판을 잠재우며 정권을 옹호하는 쪽으로 유도했다. 지속적인 보좌 역할의 처신을 높이 사는 곳이 일본이다. 그런 처신술을 능히 익힌 스가는 ‘계속은 힘이다’를 믿으며 ‘2등으로부터 1등 전략’을 구사했고 이 또한 주효했다.

마지막으로 ‘무파벌의 파벌 제어와 소외자 파고들기’ 전략이다. 아직도 파벌이 큰 힘을 발휘하는 자민당 내에서 스가는 어떤 파벌에도 속하지 않은 무파벌이다. 그는 당내에서 실질적 권한을 행사하는 니카이 도시히로(二階俊博) 간사장에게 가장 먼저 접근해 니카이파의 지지를 얻어냈다. 그 후 아베 전 총리가 속했던 최대 파벌인 호소다(細田)파 지지를 이끌어내자 정치 지분(장관이나 당 간부) 상실을 우려한 아소(麻生)파, 이시하라(石原)파, 다케시타(竹下)파도 덩달아 편승했다. 스가는 소외자 파고들기에도 공을 들였다. 집단주의가 강한 일본에선 많은 개개인이 소외감이나 무력감을 느끼며 지내곤 한다. 스가는 말 붙여주기를 기다리는 국회의원들을 파고들어 식사시간 등을 활용하며 한 사람 한 사람에게 우호감을 심어나갔다.

스가가 총리가 된 과정은 처신술의 표본을 보여준다. 더불어 한국이 일본을 어떻게 상대해야 하는지에 대한 힌트를 얻을 수 있다. 일본은 사전 조율이나 물밑 조정을 통한 합의를 선호한다. 그런 일본을 상대할 때는 조금씩 신뢰를 쌓아가는 축적 방식이 힘을 발휘한다. ‘터놓고 담판을 보자’며 들고 나와서는 진전을 보기 어렵다. 다행히 스가가 아베 정권과 차별화를 내세우는 것이 ‘디지털청(廳)’의 신설이다. 일본보다 디지털화에 앞서 있는 한국이 이를 계기로 한·일 관계 개선의 물꼬를 트는 기회로 활용할 수 있겠다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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