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년 전, 추석에 가족이 모여 앉은 자리에서 오가는 ‘살벌한 대화’의 의미를 날카롭게 풍자했던 김영민 서울대 정치외교학부 교수(사진)가 이번엔 ‘공부의 의미’를 성찰한 책《공부란 무엇인가》를 들고 나왔다. 지난 8월말 나온 후 꾸준히 종합 베스트셀러 상위 20위권에 올랐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때문에 ‘집콕 생활’이 길어지면서 공부, 교육 분야 책을 고르는 독자들이 많아졌다. 추석에도 집콕이 이어진다 해도, 학생과 학부모의 스트레스가 없어질 리는 없다.
김 교수와 이메일 인터뷰를 했다. 역시 우문에 현답이었다. 코로나19만 아니었다면 직접 만나 인터뷰했을 것이다. 코로나19 시국이 더욱 원망스러워졌다.
▶《공부란 무엇인가》에 ‘서평이란 무엇인가’라는 꼭지가 있지요. 거기에 보면, 정작 서평 대상이 된 책 이야기는 별로 언급하지 않고 자기 이야기만 늘어놓는 현상에 대한 문제 제기가 실려 있습니다. 토론 시간에 주제에 맞지 않는 장광설을 늘어놓곤 하는 현상에 대한 문제 제기도 실려 있습니다. “학문의 드레스 코드가 없다”는 말은 그런 현상들을 지칭하신 걸로 이해했습니다. 왜 비평과 토론의 장이 이 지경에 이르고 말았을까요. 어쨌거나, 그런 문제에는 일종의 권위 의식이 깃들어 있는 것 같습니다. 상대, 청중, 상황보다는 말하는 자신 혹은 자신의 권위가 너무나 소중하면 일어날 수 있는 현상 같습니다. 적절한 상황, 청중, 장르에 맞게 자기 이야기를 조율하는 것 역시 공부의 중요한 부분 같습니다. 시민의 중요한 덕성이기도 하고요. 이 공부가 부족할 때 논의의 장이 난장판이 되는 것은 시간 문제 같습니다.▶자기계발서의 정의에 따라 다를 텐데요. 자신에게 잠재되어 있거나 의식하지 못하는 것을 일깨워 주는 것’이라는 사전적 정의에 충실하다면, 긍정적인 면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자신을 계발하되, 타력에 의존하지 않는다면, 그것은 스스로 동기부여하고 노력할 수 있다는 말이기도 하니까요. 다만, 개인의 노력으로 도저히 해낼 수 없는 것을 자기계발서가 개인에게 떠넘기고 있다면, 그것은 문제라고 봅니다. 결국, 자기계발서도 어떤 자기계발서냐에 따라 평가가 달라질 수 있습니다.
요즘처럼 코로나19로 인해 대면 수업을 못하고 비대면 수업을 해야만 할 때, 저는 아우라에 관한 질문을 “과연 대면 수업의 독특한 분위기와 힘을 유지할 수 있느냐”는 질문으로 받아들이고 싶습니다. 전시 기획자나 예술가들이 온라인으로 대면 전시를 대체할 때 과연 작품의 아우라를 유지시킬 수 있을까 묻듯이, 선생은 비대면으로 학생을 만났을 때 과연 무엇을 잃어버리게 될까 물어볼 필요가 있습니다. “비대면 수업이야말로 이 시대의 새로운 뉴노멀”이라고 서둘러 선언하기 이전에, 과연 우리가 무엇을 잃고 있는지 교육 당국자들이 좀 더 논의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어떤 아우라, 어떤 영감, 어떤 배움의 즐거움을 잃고 있는지를 좀 더 이야기할 필요가 있습니다. 결국 대면수업으로 다시 돌아가지 못한다면, 새로운 환경에 맞게 아우라가 재정의될 수 있겠지요. 혹은, 대면 수업에서 가능한 아우라는 소수만이 누릴 수 있는 아주 특권적인 경험으로 변할 수도 있을 겁니다.
어쨌든 학교에서 가르치는 사람 중 한 명으로서 저는 이 질문을 과연 비대면 상황에서 영감(inspiration)을 충분히 줄 수 있는 수업을 할 수 있느냐 여부로 받아들이고 싶습니다. 영감을 주는 수업이 전에 비해 한층 더 어려워졌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저는 인터넷 강의와 학교의 대면 강의 사이에 분명한 차이가 있다고 믿습니다. 대면 수업을 통해 가르치는 자와 배우자는 자가 함께 누릴 수 있는 기쁨을 저는 쉽게 포기하고 싶지 않습니다.
이미아 기자 mia@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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