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 '경제민주화 유령'이 배회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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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2020-10-04 18:26   수정 2020-10-05 00:09

[시론] '경제민주화 유령'이 배회하고 있다

김종인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이 지난달 24일 상법과 공정거래법 개정안, 금융그룹감독법 제정안 등 ‘기업규제 3법’에 원칙적으로 반대하지 않는다는 입장을 밝혔다. 그의 반대입장 포기 기저에는 경제민주화 논리가 자리잡고 있다.

그의 지론은 “경제력이라는 것이 자연적으로 보이지 않게 사회, 문화 전반적으로 넓어져 경제세력을 정치세력이 통제할 수 없는 상황까지 간다. 경제세력 내부의 의사결정 과정을 민주화할 수밖에 없다. 지나치게 경제세력이 강해지는 것을 시정하기 위해 경제의 민주화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시장권력을 제어하지 못하면 경제가 정치를 좌지우지한다는 것이다.

경제권력은 탐욕적인가. 기업은 소비자와 투자자의 신뢰를 얻지 못하면 ‘계속기업’(going concern)이 될 수 없다. 소비자가 물건을 구매해야 생산비가 회수되고 투자자가 주식을 사 줘야 필요자본을 조달할 수 있다. 경제권력은 ‘기업 경쟁력’의 다른 표현이다.

대한민국의 경제질서는 헌법 제119조에 의해 규정된다. 제1항과 2항을 연결하면, “자유와 창의를 경제상의 기본질서로 하되, ‘필요한 경우’ 규제와 조정을 할 수 있다”로 축약될 수 있다. 이는 전형적으로 ‘원칙과 보칙’의 관계이다. ‘필요한 경우’는 ‘경제의 조화를 위해서’로 압축될 수 있으며 ‘소득재분배 및 공정거래정책’ 등이 개별정책이다. 따라서 제119조 2항을 ‘경제민주화’로 통칭할 이유는 없다.

우리나라에서 경제민주화는 일종의 정치용어로, ‘과학적 지식’의 대상이었던 적은 없었다. 비유하면 그것은 신앙으로, 논증 없는 확신이었다. 경제민주화의 ‘본질과 논거’가 제시되기보다 ‘당위성’이 강조됐다. 부족하다 싶으면 ‘패러다임, 시대정신, 헌법 가치’가 동원됐다.

김종인 위원장의 기업관은 도그마에 빠져있다. 그는 지난달 24일 공개 토론회에서 기업은 정부 지원과 탈법·위법으로 급성장했으며 국가경제의 합리성은 안중에 없다고 극언을 서슴지 않았다. “새로 법을 규정한다고 해도 법을 회피할 수단이 누구보다 많은 게 바로 기업하는 사람들”이라고 했다. 규제를 하더라도 대책을 세워 빠져나간다는 것이다.

그가 반대하지 않은 기업규제 3법 중 ‘공정거래법 개정안’은 지주회사의 자회사 의무 지분율을 20%에서 30%로 높이는 것을 포함하고 있다. 추가 지분 매입을 위해 투입하는 돈은 경제효과를 가질 수 없는 ‘매몰비용’이다. 투자를 독려해도 모자랄 판에 엉뚱한 곳에 돈을 쓰게 하는 것이다. 지주회사 지분율 강화와 일감 몰아주기 규제 대상 확대는 상호 충돌한다. 지주회사 지분율 강화는 자·손자회사 지분을 높이라는 규제이고, 일감 몰아주기 규제 대상 확대는 자·손자회사의 지분을 줄이라는 규제다. ‘상법 일부개정안’에는 감사를 분리 선출하도록 돼 있다. 이때 최대주주의 의결권은 3%로 제한된다. 자본주의의 근간을 흔드는 악성 규제다.

이들 법안은 새로운 것이 아니다. 20대 국회에서 발의됐지만 타당성을 담보하지 못해 폐기됐다. 비슷한 법안이 과거에는 옳지 않다가 지금 옳을 수는 없다. 경제민주화 깃발을 들고 국회의원 176명의 힘으로 밀어붙인다면 이는 다수의 폭거다. 김종인은 경제민주화라는 정치상품을 팔기 위해 대열에 합류한 종범이다.

“경제권력 내부의 의사결정을 민주화해야 한다”는 김종인의 주장을 받아들이면, 경제민주화는 경제의 의사결정 권한을 당사자인 기업(주주)에 돌려주는 것으로 해석돼야 논리적으로 맞다. 정치권이 움켜쥔 경제권력을 내려놓는 것이 경제민주화다. 재벌 규제가 경제민주화일 수는 없다.

규제완화, 노동개혁 등을 통해 관료, 노조 등에 집중돼 있는 경제권력을 시장에 돌려주는 경제운영의 코페르니쿠스적인 전환 없이는 한국 경제의 질적 도약을 기약할 수 없다. 김종인식 경제민주화에 함몰될수록 청년실업 문제 해결은 요원할 수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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