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자 칼럼] 트럼프의 '코로나 3일'

입력 2020-10-07 17:47   수정 2020-10-08 00:26

BC 42년 10월 23일과 11월 14일 두 차례에 걸쳐 그리스 필리피에서 카이사르 사후 로마제국을 누가 이끌 것이냐를 결정하는 대격전이 벌어졌다. 이 중요한 일전에 카이사르가 지목한 후계자 옥타비아누스는 얼굴을 내비치지 못했다. 갑자기 찾아온 병으로 쓰러진 탓에 첫 전투 때는 병상에 누워만 있었고, 간신히 치른 두 번째 전투에서도 거의 기여하지 못했던 것이다. 공동지휘관 안토니우스가 카이사르를 암살한 브루투스 일파를 격파한 덕에 옥타비아누스는 로마 첫 황제로 나아가는 큰 고비를 넘을 수 있었다.

이처럼 거물 정치인들이 중요한 전환점을 맞은 시점에 치명적 질병에 걸려 운명이 뒤바뀔 위기를 맞는 사례가 역사에선 종종 발생한다. 옛 이야기에서나 나올 법한 장면이 얼마 전 또 현실에서 목격됐다. 지난 5일 코로나19에 감염된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입원 사흘 만에 군병원에서 퇴원해 백악관에 복귀한 것이다. 대통령 선거(11월 3일)까지 채 한 달도 안 남은 상황을 고려할 때, 트럼프 대통령이 무리하게 조기 복귀를 결정했을 것이란 관측이 많다.

트럼프 대통령의 건강에 대한 의구심은 여전하지만, 한편으론 그의 ‘복귀 쇼’가 코로나19의 ‘본질’에 대해 생각해보는 계기가 됐다는 시각도 나온다. 74세 고령이면서도 빠른 회복이 가능했다는 점, 앞서 코로나에 감염됐던 자이르 보우소나루 브라질 대통령, 후안 오를란도 에르난데스 온두라스 대통령 등이 간단한 약물치료와 자가격리만으로 병마를 이겨낸 사례들로 부각되면서 코로나의 ‘치명성’을 다시보게 됐다는 것이다.

전 세계 사망자가 100만 명을 넘어선 만큼, “코로나19가 독감보다 덜 치명적”이라는 트럼프 발언은 파장을 축소하려는 의도된 표현으로 봐야 할 것이다. 산소마스크를 쓰고 중증 치료를 받고 나서 “죽을 뻔했다”던 보리스 존슨 영국 총리 사례나, 심각한 고통과 후유증을 겪은 환자들의 체험담을 봐도 그렇다.

하지만 코로나19가 ‘평등하지 않게 와서, 고르지 않은 영향을 미친다’는 점은 시간이 지날수록 점점 뚜렷해지고 있다. 어느 나라든 취약계층의 감염률이 높고, 사망자는 65세 이상 고령자에 집중돼 있지만 병의 치명도는 기저질환 유무에 따른 개인차가 크다는 얘기다. 트럼프의 ‘코로나 3일’ 해프닝은 감염병의 불평등성을 상징하는 장면으로 후세 역사에 기록되지 않을까 싶다.

김동욱 논설위원 kimdw@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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