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파푸아뉴기니의 바이닝족을 이해하는 데는 100년 가까운 시간이 필요했다. 관심을 갖던 연구자 대부분이 우울증에 걸려 연구가 계속될 수 없었기 때문이다. 1920년대의 유명 인류학자인 그레고리 베이트슨, 1960년대의 제러미 풀 모두 마찬가지였다. 원인은 지루함이었다. 그들의 문화는 지독하게 지루했던 탓에 바이닝족과 함께 생활하던 연구자들은 우울증에 빠져 귀국할 수밖에 없었다.
오히려 데이비드 그레이버 런던정치경제대 교수는 일자리의 소멸이 아니라 의미 없는 일자리의 증가가 문제라고 지적한다. 로봇, AI에 의한 일자리 감소가 발생하는 한편에서 본인조차 ‘쓸모없다’고 느끼는 새로운 일을 만들어내는 현상이 발생한다는 것이다. 그는 다소 도발적인 제목의 에세이 《Bullshit Jobs》를 통해 사회가 항상 새로운 일자리를 만들어 고용을 늘려야 한다는 커다란 압박을 받는 탓에 기업과 정부는 필요 없는 것들을 처분하기보다 의미 없는 일을 조금씩 만들어 간다고 설명한다. 그는 오늘날 많은 화이트칼라 일자리의 비효율성을 설명하면서, 1980년대 진행된 블루칼라 업무의 효율성 촉진으로 남은 돈을 불필요한 사무직원을 고용하는 데 쓰고 있다고 지적한다. 1960년대와 1970년대 모스크바에서 빵을 사면 계산대에 3명의 점원이 존재했던 과거를 떠올리게 하는 대목이다. 한 사람은 빵의 무게를 재고, 다른 사람은 빵을 봉투에 넣으며, 남은 한 사람은 돈을 받고 영수증을 건네줬다. 모든 사람이 월급을 받아야 한다고 주장했던 옛 소련은 이런 비효율적인 경제구조 탓에 더 이상 번성하지 못했다.
사람을 구성하는 요소는 육체와 정신이다. 오늘날 4차 산업혁명, 디지털 전환이라는 용어가 ‘효율성’이라는 가치와 연관돼 그 정당성을 주장하지만, 이는 육체적인 만족만을 높여줄 뿐이다. 아직 효율성을 높일 여지가 여전히 남아 있지만, 동시에 삶의 질에 대한 고민도 필요한 시점이다. 디지털 전환은 단지 개별 공장, 개별 기업의 생산성 향상만을 위해 필요한 것이 아니다. 이는 사회 전체의 최적화를 찾기 위한 하나의 방식이다.
즉, 4차 산업혁명을 통해 양적 성장만이 아니라 질적 성장의 목표가 동시에 추구될 때 이전 시대의 혁신과 차별화되는 결과를 기대할 수 있을 것이다.
디지털 전환의 궁극적 목적은양적·질적 측면의 동반성장 추구
삶의 질에 관한 다양한 고민 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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