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마을] 소설 속 인물들이 생생하게 풀어낸 근대건축

입력 2020-10-08 17:13   수정 2020-10-09 02:01

‘서 참위가 소개해준 윤 직원의 집은 140평 대지에 솟을대문까지 있었다. (중략) 방마다 한지 대신 유리 미닫이문을 달았고, 안채 대청에는 커다란 괘종시계를 두었다.’

서 참위는 이태준의 소설 ‘복덕방’에 나오는 인물, 윤 직원은 채만식의 ‘태평천하’ 주인공이다. 서로 다른 작품 속 인물들이 같은 시공간에서 새로운 관계를 형성한다. 채만식의 ‘레디메이드 인생’의 P, 박태원의 ‘천변풍경’ 속 안성댁이 같은 작품의 캐릭터처럼 등장한다. 근대소설의 등장인물과 배경을 통해 근대건축물이 어떻게 지어졌고 누가 사용했는지를 풀어낸 《건축, 근대소설을 거닐다》에서다.

저자는 당대 그 공간에서 펼쳐졌던 사람들의 삶을 통해 건축과 시대를 읽어낸다. 그래서 불러낸 것이 근대소설 속 인물이다. 강경애의 ‘인간문제’, 김사량의 ‘천마’, 김유정의 ‘따라지’, 이기영의 ‘고향’, 이효석의 ‘성찬’과 ‘화분’, 현진건의 ‘운수 좋은 날’과 ‘피아노’ 등 다양한 근대소설 속 인물들이 콜라주처럼 오려지고 붙여져 한 편의 이야기를 완성한다.

책은 대한제국 장교였다가 일제에 의해 군대가 해산된 후 ‘토지가옥소개소’, 즉 복덕방을 열고 전성기를 맞는 서 참위(대한제국 군대의 계급)의 이야기로 시작한다. 근대기에 북촌과 익선동 등에 건축업자들이 대형 필지를 잘게 나눠 여러 채의 집을 지었던 도시형 한옥, 주로 일본인이 짓고 부자와 권력자들이 살았던 서양식 문화주택 등의 이야기가 흥미롭다.

‘안 초시는 북촌에서 가장 높은 언덕마루에 지은 문화주택을 제일 부러워했다. 도도하게 서 있는 그 집은 도시형 한옥단지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여기서 안 초시는 이태준의 ‘복덕방’ 등장인물이다.

복합문화공간 부민관, 활동사진(영화)을 상영한 단성사와 우미관, 찻집인 다방과 술집인 카페, 종로거리의 빌딩과 야시장, 선술집 등 다양한 공간이 당대 인물들을 통해 생생하고 디테일하게 비춰진다. 역사적 사실(fact)과 소설 속 허구의 인물을 버무리고 변주해 팩션(faction)처럼 이야기를 빚어낸 솜씨가 탁월하다.

서화동 선임기자 fireboy@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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