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1위' 비트코인 선물거래소의 몰락…무슨 일 있었나 [김산하의 불개미리포트]

입력 2020-10-11 07:00   수정 2020-12-16 00:02


세계 최대 규모의 비트코인 선물 거래소 비트멕스(Bitmex)가 미국 법무부와 상품선물거래위원회(CFTC)로부터 '미등록 파생상품 거래소 운영 및 자금세탁방지법(AML) 위반 혐의'로 지난 5일 피소됐습니다.

이에 최고기술책임자(CTO)가 구속되고 최고경영자(CEO)를 비롯한 경영진이 줄사퇴하는 등 최악의 위기를 맞게 됐는데요. 불안감을 느낀 거래소 이용자들이 비트멕스 플랫폼을 대거 이탈하면서 전체 비트코인 예치액의 30%가 빠져나갔고, 결국 세계 1위 비트코인 선물거래소의 자리까지 내줬습니다. 도대체 이들에게 무슨 일이 있었길래 미 금융 당국으로부터 철퇴를 맞게 된 것일까요.
비트멕스, 계속되는 시세조작 논란이 화 자초했나
비트멕스는 2014년에 만들어진 비트코인 선물 거래소로, 시티은행 출신인 아서 헤이스 최고경영자(CEO·사진 왼쪽)와 JP모건 부사장 출신인 벤 델로 최고전략책임자(CSO), 컴퓨터 기술자인 새뮤얼 리드 최고기술책임자(CTO·사진 오른쪽) 등이 공동 설립했습니다.

홍콩에 본사를, 샌프란시스코에 지사를 두고 있었다가 지난 2017년 이후 전 세계적으로 가상자산에 대한 부정적인 정책 기조가 이어지자 사업 안정성을 위해 세이셸공화국으로 모회사를 이전해 운영을 지속해 왔습니다.

비트멕스는 비트코인이 고작 수 십만원대였던 시절부터 가상자산 선물 거래의 장을 열면서 업계 내에서 명실상부한 1위 선물거래소로 급부상했습니다. 개인투자자는 물론 수많은 기관투자자들이 비트멕스의 선물거래 플랫폼을 활용하기 위해 몰려들었고, 최근까지만 해도 하루 평균 2조~3조원대의 선물 거래량을 유지했습니다.

그러나 비트멕스는 수많은 논란 속에서 곤욕을 치르기도 했습니다. 가장 빈번했던 논란 중 하나는 비트멕스가 고의로 서버를 다운시키거나 비트코인 시세를 조작한다는 의혹이었습니다. 막강한 자금력과 정보력을 동원, 의도적으로 비트코인 시세를 움직이고 투자자들의 포지션 청산을 유발해 거래소 수익을 극대화 시켰다는 겁니다.

특히 비트코인이 크게 움직이는 시점에서 수시로 서버가 다운된다는 점도 의혹을 증폭시키기엔 충분했습니다. 비트코인 시세가 크게 움직이는 시점에서 서버가 다운되면 트레이더들이 갑작스러운 시세 변화에 대응할 수 없어 가지고 있던 포지션을 청산당하기 쉬워지기 때문입니다.

실제로 비트멕스는 세계 1위 선물 거래소에 걸맞지 않게 서버 다운이 잦았습니다. 올해만 해도 지난 3월 신종 코로나바이러스(코로나19) 사태로 인한 폭락 사태 때와 5월의 폭등장에서 약 1시간가량 서버가 멈추는 사고가 여러 차례 발생했죠.

이에 미국령 푸에르토리코에 위치한 가상자산 업체인 BMA LCC가 지난 5월 캘리포니아 지방법원에 비트멕스 경영진과 비트멕스 모회사인 HDR 글로벌 트레이딩을 사기와 시장조작, 자금세탁 등의 혐의로 고소하기도 했습니다.

BMA LCC는 "비트멕스가 세계 최대 암호화폐 선물거래소 지위를 악용해 비트코인 가격을 인위적으로 조작하며 마진거래 청산을 유도했다. 미국 역사상 가장 큰 금융 범죄를 주도한 것"이라고 주장했습니다. 그러나 비트멕스는 이 같은 논란에 대해 "사실 무근"이라면서 소송 절차를 통해 대응하겠다는 답변을 내놓은 바 있습니다.
논란 속에서도 '세계 최대 거래소' 수성했었지만…美 압박에 결국 무너졌다
수많은 논란 속에서도 비트멕스는 줄곧 '세계 최대 비트코인 선물거래소'라는 수식어를 지켜왔었습니다. 워낙 오래 전부터 수많은 투자자들이 비트멕스를 이용하고 있었다보니 그만큼 큰 유동성과 선점효과가 있었기 때문입니다. 가상자산 선물 투자를 하는 수많은 사람들이 이미 비트멕스에 익숙해져 있는 상태에서 그 어떠한 논란도 1위 플랫폼의 아성을 무너뜨릴 수 없을 것만 같았습니다.

그러나 지난 5일 미국 법무부와 CFTC가 헤이즈 CEO를 포함한 임원 4명을 은행비밀보호법 위반 혐의로 기소하면서 상황은 달라졌습니다. 기소 당시 미 메사추세츠주에서 체류 중이었던 사무엘 CTO는 지난 1일 체포됐고, 나머지 3명의 임원에게는 수배 명령이 떨어지면서 한 순간에 도주자 신세가 된 겁니다. 지난 8일 비트멕스 경영진들이 돌연 총사퇴한 이유이기도 합니다.

미 법무부는 고발장에서 "비트멕스는 당국이 정한 자금세탁방지 규정을 의도적으로 무시하고 고객들에게 기본적인 신원 확인 절차도 진행하지 않았다"면서 은행기밀법(Bank Secrecy Act) 위반 혐의를 적시했습니다.

또 비트멕스가 미국 내에서 당국의 허가 또는 적법적인 라이선스 취득 없이 미국인들에게 불법으로 가상자산 파생 상품거래를 제공했다고도 지적했습니다. 고발장에는 헤이즈 CEO가 비트멕스 모회사를 세이셸로 이전한 이유에 대해 "규제당국에 내는 뇌물 규모가 미국보다 훨씬 저렴하기 때문"이라고 비아냥거렸던 발언까지 적혔습니다. 그야말로 미 규제 당국에 '제대로 찍힌' 셈입니다.

만약 이들의 유죄가 확정된다면 최대 5년의 징역과 함께 막대한 벌금형에 처해질 것이라는 관측이 나오고 있습니다.
"결국 美제도권 내 선물거래소만 키우겠다는 것"
이 같은 사태가 업계에 가져다 준 메시지는 확고합니다. 미 규제당국이 제시하는 규제의 틀 내에서 합법적인 비트코인 선물 거래 사업을 하라는 겁니다.

미국은 세계에서 가장 빠르게 비트코인 선물거래를 제도화한 국가입니다. 이미 2017년 시카고옵션거래소(CBOE)와 시카고상품거래소(CME)가 제도권 거래소 최초로 비트코인 선물거래 상품을 내놓았으며, 이후 뉴욕증권거래소(NYSE)의 모회사가 만든 백트(Bakkt) 등 다양한 거래소들이 합법적으로 비트코인 선물 거래를 지원하고 있습니다.

다만 미국 전통 제도권 거래소들이 제공하는 비트코인 선물 상품은 투자자들의 인기를 끌지는 못했습니다. 예컨대 지난 10일 기준 백트의 일간 비트코인 선물 거래량은 3200만달러(약 366억원) 수준으로 같은날 비트멕스 일간 거래량인 13억달러(약 1조4867억원)의 40분의 1 수준에 불과합니다. 최근 미 당국의 기소 이후 비트멕스의 거래량이 크게 줄어들었다는 점을 고려해보면 실제 격차는 훨씬 더 큰 셈입니다.

그나마 CME의 경우 비트코인 일간 선물 거래량이 적게는 1~2천억원에서 많게는 1조원 수준까지 나오기도 하지만, 여전히 비트멕스 등 가상자산 선물 전문 거래소에 비해 낮은 수준의 실적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그러다보니 미 당국에서는 비트멕스 등 '제도권 밖' 거래소들이 언제나 눈엣가시 같은 존재일 수 밖에 없었습니다. 합법적으로 미 당국에 라이선스 비용과 세금을 납부하는 제도권 거래소들과는 달리 이들은 세수확보 등에 아무런 이득을 주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미국인 트레이더들이 비트멕스에 몰려가 거래를 하면 할수록 세이셸 공화국의 국가재정만 풍부하게 키워줄 뿐이죠. 당국 입장에서는 이를 가만히 지켜보고만 있을 수는 없었던겁니다.

일단 미 당국의 철퇴는 곧바로 효과를 내고 있는 것으로 보입니다. 비트멕스로부터 빠져나온 비트코인이 미국 내 합법 거래소로 넘어가고 있는 정황도 포착됐습니다. 가상자산 분석기업인 체이널리시스의 필립 그래드웰 수석 애널리스트는 "비트멕스에서 인출된 비트코인이 제미니 등의 다른 암호화폐 거래소로 이동하고 있다"고 분석했습니다.

업계에서는 이번 비트멕스 사태가 단기적으로는 시장에 악재로 작용할 수 있지만 장기적으로는 제도권 내 비트코인 거래 활성화에 기여할 수 있다는 전망이 나옵니다. 유명 가상자산 분석가인 윌리 우는 "이번 사태는 중기적 또는 장기적인 관점에서 비트코인 채택 속도를 향상시키는데 긍정적인 역할을 할 것"이라고 진단했습니다.

≪이 기사는 10월 11일(00:56) 블록체인·가상자산 정보 플랫폼(앱) '블루밍비트'에 게재된 기사입니다≫

김산하 한경닷컴 기자 sanha@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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