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희정 피해자가 박원순 피해자에게…"고통 끝나지 않았다" [전문]

입력 2020-10-15 11:39   수정 2020-10-15 11:48


안희정 전 충남도지사에게 당한 성폭력 피해를 폭로한 김지은 씨가 고(故) 박원순 전 서울시장의 성폭력 의혹 피해자에게 연대 메시지를 보냈다.

한국성폭력상담소, 한국여성의전화, 한국여성민우회 등으로 구성된 서울시장위력성폭력사건공동행동(이하 공동행동)은 피해자가 박원순 전 시장을 고소한 지 100일째 되는 15일 서울시청 앞에서 출범 기자회견을 열었다.

이 자리에서 김지은 씨는 대독 발언을 통해 "힘겨움은 성폭력 범죄 피해자만의 것이 아니다. 진실의 편에 선 증인들은 일자리를 잃기도 한다"면서 "가해자 측에 섰던 증인들은 2차 가해를 하는 중에도 나라의 힘 있는 자리에서 승승장구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그는 "노동자로서의 제 삶은 미투 이후 모두 파괴됐다. 직장에서도 책임 어린 사과와 어떠한 보호 조치도 받지 못한 채 해고당했다"며 "직장에서 동료라고 불렀던 사람들은 2차 가해를 일삼았으며 가해자의 측근들은 진실을 왜곡하여 거짓이 사실인 양 돌아다니게 했다. 얼굴도 모르는 분들의 심한 욕설과 가혹한 비난들은 저와 제 가족들에게 여전히 날카로운 칼이 되어 날아오고 있다"고 전했다.

이어 "박원순 사건 피해자분께서 겪고 계시는 현실을 보면서 제가 앞서 말씀드린 지난 시간을 반복해 보고 있다는 기시감이 든다"며 "앞서 비슷한 일을 겪은 한 사람으로서 굳건한 연대와 변함없는 지지의 마음을 전한다. 하루하루 버티고 또 버텨내셔서 내년 가을에는 일상의 햇볕을 느낄 수 있기를 간절히 기원드린다"고 덧붙였다.

다음은 김지은 씨의 입장문 전문
<svg version="1.1" xmlns="http://www.w3.org/2000/svg" xmlns:xlink="http://www.w3.org/1999/xlink" x="0" y="0" viewBox="0 0 27.4 20" class="svg-quote" xml:space="preserve" style="fill:#666; display:block; width:28px; height:20px; margin-bottom:10px"><path class="st0" d="M0,12.9C0,0.2,12.4,0,12.4,0C6.7,3.2,7.8,6.2,7.5,8.5c2.8,0.4,5,2.9,5,5.9c0,3.6-2.9,5.7-5.9,5.7 C3.2,20,0,17.4,0,12.9z M14.8,12.9C14.8,0.2,27.2,0,27.2,0c-5.7,3.2-4.6,6.2-4.8,8.5c2.8,0.4,5,2.9,5,5.9c0,3.6-2.9,5.7-5.9,5.7 C18,20,14.8,17.4,14.8,12.9z"></path></svg>사건을 고발하고 세 번째 가을입니다. 올해의 가을빛은 조금 다르지 않을까 잠시나마 기대했습니다. 두 번의 가을을 검찰 수사와 재판이라는 기자긴 통로 속에서 지냈고, 법원의 명확한 판단을 받았기에 모든 고통은 끝날 거라고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여전히 가을의 단풍은 제게 사치임을 느끼고 있습니다. 평범한 일상은 아직도 저 멀리 있습니다.

노동자로서의 제 삶은 미투 이후 모두 파괴됐습니다. 직장에서도 책임 어린 사과와 어떠한 보호 조치도 받지 못한 채 해고당했습니다. 힘겹게 쌓아왔던 제 경력과 노력들은 아무 의미 없는 것이 되어버렸습니다. 직장에서 동료라고 불렀던 사람들은 2차 가해를 일삼았으며 가해자의 측근들은 진실을 왜곡하여 거짓이 사실인 양 돌아다니게 했습니다. 최근 법원에서 2차 가해에 대한 엄정한 판결을 내려주고 있지만 얼굴도 모르는 분들의 심한 욕설과 가혹한 비난들은 저와 제 가족들에게 여전히 날카로운 칼이 되어 날아오고 있습니다.

고통을 참으며 고등법원과 대법원에서 범죄의 사실을 입증해도, 한낱 지라시에 밀려 믿지 않는다면 우리 사회에 법과 약속은 왜 있어야 할까요? 지엄한 법 앞에서 유죄 판결을 받아도 억울하다고 주장하며 속죄 없이 피해자를 다시 고통 속에 가두고, 버젓이 2차 가해를 하는 일이 지금도 여전히 일어나고 있습니다. 법의 테두리에서 인정받은 사람도 이와 같은 상황이 있는데, 법으로 공정한 수사조차 받지 못하는 분들의 억울함은 어디에 하소연할 수 있을까요.


힘겨움은 성폭력 범죄 피해자만의 것이 아닙니다. 진실을 위해 정의롭게 일부 증인들은 일자리를 잃기도 합니다. 가해자 측에 섰던 증인들은 2차 가해를 하는 중에도 나라의 힘 있는 자리에서 승승장구하고 있지만. 진실의 편에 선 분들은 며칠 만에 직장에서 밀려나고 있습니다. 여성의 인권 보호를 외치는 유력 정치인조차 자신의 눈앞 현실에는 눈 감고 있습니다. 이런 부조리 속에서 우리의 인권과 안전을 보장받을 수 있을까요. 감히 평안을 소망해도 되는 걸까요.

박원순 사건 피해자분께서 겪고 계시는 현실을 보면서 제가 앞서 말씀드린 지난 시간을 반복해 보고 있다는 기시감이 듭니다. 노동자로서의 일상에 대한 보호, 사실에 대한 엄정한 판단, 2차 가해자들에 대한 비판과 연대자에 대한 지지는 쉽게 찾아보기가 어렵습니다. 권력형 성범죄는 폐쇄적인 조직 구조와 노동권의 문제, 권력 남용, 성차별 등이 만들어낸 사회 문제입니다. 어느 직장에서도 일어날 수 있고, 내 가족, 나의 동료가 피해자가 될 수도 있습니다.

당사자만이 알 수 있는 그 고통의 깊이를 제가 헤아릴 수는 없지만, 앞서 비슷한 일을 겪은 한 사람으로서 굳건한 연대와 변함없는 지지의 마음을 전합니다. 하루하루 버티고 또 버텨내셔서 내년 가을에는 일상의 햇볕을 느낄 수 있기를 간절히 기원드립니다. 용기와 연대만이 우리를 보호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감사합니다.
조준혁/김기운 한경닷컴 기자 presscho@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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