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TS 때리기'·'콘서트 도둑질'…미중 대립 속 피곤한 K팝 [연계소문]

입력 2020-10-17 09:59   수정 2020-10-17 11:53


미중 갈등이 격화하면서 중간에 낀 한국의 난처한 입장이 한류 영역까지 침범한 모양새다. 그룹 방탄소년단(BTS)의 말 한마디를 두고 제멋대로식 해석을 하며 날을 세운 중국, 그리고 이를 막아선 미국의 묘한 신경전 속에서 K팝 팬들의 피로도만 높아졌다. 세계 음악 시장을 무대로 활약 중인 대중문화예술인을 외교 영역으로 끌어들이는 게 과연 합당하느냐는 지적과 함께 소비 '큰 손'인 중국을 상대로 이렇다 할 뾰족한 수를 쓰지는 못하는 상황에도 우려도 쏟아진다.

중국의 'BTS 때리기'는 방탄소년단이 밴플리트상을 수상하면서 밝힌 소감에서 시작됐다. 방탄소년단 리더인 RM은 최근 한·미 양국 우호 발전에 이바지한 사람에게 수여하는 밴플리트상을 받은 후 "올해는 한국전쟁 70주년으로 우리는 양국이 함께 겪었던 고난의 역사와 많은 남성, 여성의 희생을 기억해야 한다"고 소감을 전했다. 중국은 '한국전쟁'을 '항미원조(抗美援朝·미국에 맞서 북한을 도운)라고 부른다. 이러한 사상을 토대로 RM의 발언은 돌연 6·25 당시 중국군의 희생을 무시했다는 의미로 변질됐다.

"중국을 떠나라", "한한령을 강화하자" 등 방탄소년단은 중국 네티즌들로부터 십자포화를 당했다. 중국의 관영 매체 환구시보는 "방탄소년단의 수상 소감이 중국 네티즌의 분노를 일으켰다"는 기사를 홈페이지 메인 기사로 게재하기도 했다. 애국주의를 강조하며 논란을 부채질한 셈이었다.

그러나 방탄소년단의 발언을 빌미로 삼은 중국의 역사 공세는 외신들이 일제히 비판을 쏟아내며 역풍을 맞았다. 뉴욕타임스(NYT)는 "중국 네티즌들이 방탄소년단의 악의 없는 한국전쟁 관련 발언을 공격했다"고 보도했고, 블룸버그통신은 "중국 내에서 BTS 비판 여론이 커지고 있는 가운데 중국판 트위터 웨이보가 여론 선동의 장이 됐다"고 지적했다. 파이낸셜타임스(FT)는 "중국에 진출한 외국 브랜드가 중국의 편협한 민족주의에 희생된 최신 사례"라고 꼬집었다.

단순히 네티즌의 반응을 옮겨 적은 것일까. 보다 넓게 보면 중국의 'BTS 때리기'는 가벼운 트집으로 넘기기엔 다소 무리가 있다. 과도한 애국주의와 맞물려 외교 문제가 문화 영역까지 침범한 잘못된 사례로 보는 시각이 더욱 많다. 중국 정부는 미국과의 갈등을 겪고 있는 가운데 최근 항미원조 70주년 행사를 여는 등 '항미원조' 사상을 내부 결속에 적극 활용하고 있다. 방탄소년단 논란 보도를 한 환구시보는 공산당 기관지인 인민일보의 자매지로, 국제뉴스를 주로 다루는 중국의 대표 매체다.

논란이 커지자 중국 자오리젠 외교부 대변인은 정례 기자회견에서 "관련 보도와 이번 일에 대한 중국 네티즌의 반응에 주의하고 있다"며 "역사를 거울삼아 미래로 나아가며 평화를 아끼고 우호를 도모하는 건 우리가 공동으로 추구하고 노력할 가치가 있는 것"이라고 말했다. 이후 환구시보의 해당 기사가 삭제되면서 논란이 수그러드는 듯했다. 하지만 하루 뒤 환구시보는 재차 한국 네티즌들의 반응을 토대로 한 기사에 "BTS의 발언은 잘못이 없고, 우리는 중국 팬이 필요 없다"는 자극적인 제목을 달아 불씨를 지폈다.




중국의 'BTS 때리기'가 계속되는 상황에 결국 미국도 나섰다. 모건 오테이거스 미 국무부 대변인은 트위터에 방탄소년단 공식 계정을 태그하며 "긍정적인 한미 관계를 지지하는 데 노력해 줘서 감사하다"고 적었다. 그러면서 "당신들은 코리아소사이어티의 밴플리트상을 받을 자격이 충분하다. 음악은 세상을 하나로 만든다"고 덧붙였다. 미중 갈등이 심화한 상황에서 묘한 'BTS 신경전'이 펼쳐졌다.

일각에서는 중국이 거대한 소비 시장을 빌미로 K팝을 쥐고 흔들며 경제적, 문화적 가치까지 훼손하려 든다고 걱정한다. 실제로 이번 논란으로 국내 기업들은 중국 현지에서 방탄소년단 지우기에 나섰다. 올 7월부터 중국 내에서 '갤럭시S20플러스 BTS 에디션'을 판매해온 삼성전자는 해당 페이지를 삭제했고, 현대차 역시 공식 웨이보 계정에 게재했던 방탄소년단 콘텐츠를 내렸다. 휠라도 마찬가지였다. 사드 보복으로 직격탄을 맞았던 기업들의 경우, '큰 손' 중국의 눈치를 볼 수밖에 없는 상황. 엔터테인먼트 업계도 예외는 아니다.

그러나 중국의 역사 공세가 처음이 아닌 반복적으로 이뤄지고 있는 행태이기에 우려의 목소리는 더욱 높아지고 있다. 방탄소년단 이전에 가수 이효리는 예능프로그램에서 활동명을 짓던 중 '마오 어떠냐'고 언급했다가 맹공을 당했다. 과거 트와이스의 대만 출신 멤버 쯔위가 한 방송에서 태극기와 함께 대만 국기를 흔들어 '하나의 중국 원칙'을 어겼다며 거센 비난에 시달리는 사례도 있었다.

한한령(한류 금지령) 해제 기대감이 있는 상황에서 벌어진 이번 사태로 업계의 긴장감은 다시금 고조됐다. 그럼에도 중국은 KBS2에서 방송된 나훈아 콘서트부터 방탄소년단의 유료 온라인 콘서트까지 통으로 가져다 불법 유포하며 기본적인 문화 가치마저 훼손하고 있다. 욕하면서도 그들의 공연은 보겠다는 모순이다. 여전히 나훈아, 방탄소년단 콘서트 1·2일차 모두 중국 사이트에서 버젓이 불법 유통되고 있다. 제 살 깎아먹기식의 편협한 애국주의가 안타깝기만 하다.

김수영 한경닷컴 기자 swimmingk@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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