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정원 간부 청탁에 세무조사 압력…前 지방 국세청장 집행유예

입력 2020-10-19 09:43   수정 2020-10-19 09:49

국정원 고위 간부로부터 '돈을 받게 해 달라'는 청탁을 받고 세무조사 중인 업체에 부당한 압력을 행사한 전 지방 국세청장에게 유죄가 확정됐다.

대법원 3부(주심 김재형 대법관)는 직권남용권리행사방해 혐의로 기소된 박동열 전 대전지방국세청장의 상고심에서 징역 1년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한 원심을 확정했다고 19일 밝혔다.

박 전 청장은 서울지방국세청에서 조사3국장으로 근무하던 2010년 4∼5월 당시 세무조사를 받고 있던 건설업체 대표 A씨를 사무실로 불러 임경묵 전 국가안보전략연구소 이사장 측에게 토지 매매대금과 웃돈을 지급하라고 압박한 혐의로 재판에 넘겨졌다.

임 전 이사장은 2006년 A씨의 건설업체와 토지를 4억7000만원에 매도하는 계약을 했지만, 잔금을 받지 못하고 있었다. 그는 박 전 청장을 찾아가 "매매대금을 받을 수 있도록 도와달라"는 취지의 부탁을 여러 차례 한 것으로 드러났다.

이에 박 전 국장은 세무조사 중 A씨를 불러 "임 전 이사장의 요구대로 해줘라"라고 압박했다. A씨는 얼마 지나지 않아 임 전 이사장에게 토지 대금 잔금과 추가금액 2억원을 지급했다.

1심 재판부는 박 전 국장에게 징역 1년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했다. 박 전 국장이 A씨를 사무실로 불러낸 것은 '세무조사'라는 직무상 권한을 위법·부당하게 행사한 것이라며 봤다. 다만 A씨가 임 전 이사장 측에 돈을 주도록 압박한 행위에 대해서는 지위를 이용한 불법행위일 뿐이라고 판단하고, 박 전 국장의 권한과 무관한 것이라며 무죄로 봤다.

2심의 판단은 달랐다. A씨가 임 전 이사장 측에 돈을 주도록 압박한 것 또한 세무조사 관련 질문·조사권의 남용에 해당한다며 직권남용권리행사방해죄로 처벌할 수 있다고 본 것이다. 그러나 박 전 국장이 형사처벌 전력이 없는 점, 세무조사가 통상적인 절차와 기준에 따라 이뤄진 사실 등을 고려해 형량은 1심과 동일하게 유지했다.

박 전 국장은 이에 불복하고 상고했지만, 대법원은 기각했다. "원심이 직권남용권리행사방해죄의 성립에 관한 법리를 오해한 잘못이 없다"고 본 것이다.

박 전 청장은 박근혜 정부 시절 최서원(개명 전 최순실) 씨의 전 남편 정윤회씨의 국정 개입 의혹 등을 박관천 전 청와대 공직기강비서관실 행정관에게 제보한 인물이다. 이를 계기로 작성된 이른바 '정윤회 문건'이 2014년 공개되면서 박근혜 정부 때 '비선 개입' 논란이 일었다.

안효주 기자 joo@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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