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성황후 시해현장 목격한 러시아 청년 사바틴을 만나다

입력 2020-10-20 04:01   수정 2020-10-20 07:53

1895년 10월 8일 새벽 4시, 경복궁 내 건청궁 곤녕합(坤寧閤). 조선 주재 일본공사 미우라 고로를 비롯한 한성 주둔 일본군 수비대와 공사 관원, 낭인 무리 등이 난입해 명성황후를 시해했다. 취약시간대에 벌인 이 사건을 목격한 두 사람이 있었다. 러시아 건축가 사바틴과 미국인 다이 장군. 사건 전날 경복궁에서 당직을 서기 위해 출근한 이들은 시해 현장을 고스란히 지켜봤다.

사바틴이 남긴 시해 장소의 약도와 증언서를 영상으로 볼 수 있게 된다. 문화재청이 한러 수교 30주년과 상호 문화교류의 해를 맞아 19일부터 여는 특별전 '1883 러시아 청년 사바틴, 조선에 오다'를 통해서다. '사바틴이 남긴 공간과 기억'을 부제로 한 이번 전시는 이날 온라인 공개에 이어 20일부터 덕수궁 중명전에서 현장관람을 시작한다.

아파나시이 이바노비치 세레딘-사바틴(1860~1921)은 스물세 살 때인 1883년 9월 인천해관 직원으로 조선에 입국한 러시아 건축가였다. 1904년 러일전쟁 후 조선을 떠날 때까지 제물포항의 부두를 축조하고, 조선의 궁궐 건축물과 서울 정동 일대 근대 건축물의 설계와 공사를 맡았다. 명성황후가 시해된 을미사변 이후 신변에 위협을 느낀 고종과 왕세자가 몸을 피했던 아관파천의 현장인 러시아공사관 건축에도 참여했다.

이번 특별전은 프롤로그와 3부로 구성된다. 프롤로그에서는 을미사변의 목격자로서 사바틴이 남긴 기록을 소개한다. 제정 러시아 대외정책문서보관소가 소장 중인 시해 장소 약도와 사바틴의 증언서를 영상으로 보여준다.

1부 '조선에 온 러시아 청년 사바틴'에서는 사바틴의 활동을 볼 수 있는 자료들이 전시된다. 사바틴은 처음에 인천해관에서 승선세 감시원으로 일하다 1888년 한성에서 궁궐 건축을 담당했다. 을미사변 목격 후에는 신변의 위협을 느껴 조선을 떠났다가 1899년 돌아와 건축과 토목사업에 참여했다. 사바틴의 활동 외에 1884년 7월 조러수호통상조약과 관련된 조선 측 비준 문서(제정러시아 대외정책문서보관소 소장) 사진도 볼 수 있다.

사바틴은 러시아공사관 건축에도 깊이 관여했다. 러시아공사관은 당시 대리공사 겸 총영사였던 베베르가 건축을 주도했는데, 러시아 건축가 류바노프가 최초 설계안을 만들고 일본인 하도급자가 견적과 도면을 작성했다. 하지만 예산 문제로 최초 설계안은 실현되지 못했고, 사바틴이 예산과 설계를 수정해 공사를 완료했다. 2부 '러시아공사관, 사바틴의 손길이 닿다'에서는 최초 설계안과 준공안의 비교, 당시 기축통화였던 멕시코 달러로 계산된 견적서, 준공에는 이르지 못한 대한제국 황제 사저, 공사관 공사 대금을 요청하는 사바틴의 청원서 등을 통해 공사관 건립의 전후 사정을 살펴볼 수 있다.

3부 '사바틴, 제물포와 한성을 거닐다'에서는 제물포와 한성에 있는 12개 건물의 모형과 사진을 전시한다. 그중 사바틴의 관여가 분명한 것은 러시아공사관과 관문각이다. 제물포구락부, 독립문, 중명전, 정관헌, 손탁호텔 등 사바틴이 관여한 것으로 추정되는 건물들의 사진과 모형도 볼 수 있다.

서화동 선임기자 fireboy@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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