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켓인사이트]KDB인베 두산인프라 M&A 참여 논란…“한국의 골드만삭스는 사실 산업은행?”

입력 2020-10-19 17:57   수정 2020-10-19 18:06

≪이 기사는 10월13일(04:42) 자본시장의 혜안 ‘마켓인사이트’에 게재된 기사입니다≫

"정부가 한국의 골드만삭스같은 투자은행(IB)을 육성해야한다고 20년째 설파해왔는데, 산업은행이 직접 나서서 본보기를 보여주겠다는 의도 아닐까요?"

올 한해 M&A 대어 중 하나로 꼽힌 두산인프라코어 거래에 산업은행 자회사 KDB인베스트먼트가 지원군으로 나서면서 PEF업계에선 '뼈있는 농담'이 돌고 있다. 20여년 전 골드만삭스가 주류회사 '진로' 거래로 IB업무의 종합예술을 선보였다면, 이번엔 산업은행이 두산그룹 거래로 재현하는 것 아니냐는 시각이다.

익히 알려졌듯 골드만삭스는 IMF 당시 부도에 처했던 진로그룹에 투자해 1조원을 훌쩍 넘는 수익을 거뒀다. 액면가만 1조4600억원에 달했던 진로그룹 채권을 부실채권(NPL) 투자로 2742억원에 매입해 지배력을 확보한 이후, 2005년 회사를 하이트맥주에 3조4000억원에 매각하면서다. 채권·자기자본(PI)투자·M&A 자문에 이르는 IB업무에서 파생할 수 있는 모든 방법을 총동원해 거래를 성사했고, 지금까지도 글로벌IB 업무의 '교과서'로 알려졌다.

PEF 업계에선 두산인프라코어를 둔 산업은행의 행보도 이와 유사한 것 아니냐는 말이 나온다. 직접 재무적투자자(FI)로 에쿼티 투자에 나선 자회사 KDB인베 건 외에도 산업은행 차원에서 거둘 먹거리가 무궁무진하다는 것. 일각에선 "민유성 전 회장이 리만브라더스 인수 실패로 이루지 못했던 산업은행의 글로벌IB 도약을 이번 두산그룹 거래로 이루는 것 아니냐"는 관전평도 나온다.

우선 산업은행이 직접 현대중공업그룹 컨소시엄에 대출(인수금융)을 주선해 수익을 올리는 방안이 거론된다. 산업은행은 그간 타 금융기관 대비 낮은 금리 등 유리한 조건을 제시해 인수금융 고객을 선점했다. "시장을 교란시킨다"는 평가까지 받아왔다. 산업은행이 스스로 자사와 KDB인베의 의사결정은 독립됐다는 입장을 고수하는 상황에서, 그간 시장 포식자였던 산업은행이 이번 조단위 인수금융 기회를 그냥 지나치는 게 더 '수상한' 결정 아니냐는 평가다.

더 나아가 주채권은행으로 두산그룹 사정을 다른 IB보다 속속들이 꿰고 있는 만큼 이번 거래를 산업은행 M&A 컨설팅실의 자문 '트랙 레코드'로도 쌓을 수 있다. 우발채무 문제 등으로 참여를 주저하던 후보들을 자회사까지 직접 참여시켜 안심시키는 자문 전략은 어느 글로벌 톱티어 IB도 따라잡기 어려울 것이란 평가다. 크레디트스위스(CS)와 함께 리그테이블에 올려야 한다는 의견도 나온다. 이 경우 거래대금의 약 1%(100bp) 수준 수수료는 '덤'이다.

골드만삭스도 과거 진로 거래 당시 "매각 자문을 맡으면서 채권에 투자한 것 아니냐"는 '이해상충' 논란에 시달렸다. 대법원에서 공식 자문 계약을 체결하지 않았다는 무혐의 판결이 난 데다, 투자은행 업무 내 철저한 분리(파이어월·Firewall)를 강조하면서 해명했지만 여론은 가라 앉지 않았다. 이번 거래에서 이동걸 산업은행 회장이 "자회사 KDB인베의 의사결정과 자사의 의사결정은 별개"라는 논리로 IB 내 관행을 대변해준 만큼 이번 기회에 의식 개선을 이끌어야 한다는 응원(?)도 나온다.

이같은 날 선 관측들이 시장에서 나올만큼 이번 KDB인베의 두산인프라코어 인수전 참여는 M&A 업계에서 논란의 중심에 섰다. 두산인프라코어 매각이 외견상 두산그룹의 자발적인 구조조정 일환으로 이뤄지고 있지만, 실질적인 의사결정은 산업은행을 비롯한 채권단과 협의·보고 절차를 거치고 있다. 한 쪽에선 두산인프라코어 매각 절차에 개입한 산업은행이 다른 한 쪽에선 100% 자회사인 KDB인베를 통해 거래 초반부터 현대중공업그룹을 지원한다는 게 논란의 핵심이다. KDB인베 수장인 이대현 대표만 해도 산업은행 내에서 정책기획부문장에 수석부행장까지 요직을 두루 거친 인사다.

두산인프라코어의 3년·5년·10년 뒤 실적을 예상하고 적정 가치를 매기느라 밤을 꼬박 샐 인수후보들은 이제 산업은행의 동향까지 두루 살펴야 하는 모양새다. PEF 사이에서도 거래 흥행을 위해 산업은행이 현대중공업그룹을 끌어들인 건지, 정말 특혜 논란을 감수하고서라도 지원에 나선 건 지를 두고 의견이 분분하다. 민간 M&A에선 고려해보지 않아도 될 변수다. KDB인베 출범 직후 내 건 "시장 주도 구조조정"과 정확히 역행하는 현상이 펼쳐진 셈이다.

수익률을 위해서라면 컨소시엄 구성원과도 소송전까지 불사하고, 의사 결정 하나하나마다 투자자(LP)들의 이익을 최우선으로 대변해야 하는 민간 PEF 운용사들과 비교할 때 KDB인베가 현대중공업그룹에 자기 목소리를 낼 수 있을지 미지수라는 우려도 있다. 실제 현대중공업그룹은 입찰 직전까지도 복수의 대형 PEF들과 컨소시엄 구성을 논의해 왔다. 현대중공업그룹이 기존 논의를 백지화하고 "KDB인베의 권유로 입찰에 참여하게 됐다"고 공공연하게 밝힐 정도의 특별한 제안이 있었던 것 아니냐는 시각이다. 다시 말해 '돈 줄' 역할에 그치는 것 아니냐는 평가다.

PEF업계 관계자는 "1위 회사가 2~3위 업체를 인수해 규모와 시장 점유율을 더 늘리려는 목적이라면 모르겠지만 이번 거래는 후발 업체인 현대건설기계가 선두 업체 두산인프라코어를 인수하려는 목적이 뚜렷한 거래"라며 "특히 두산인프라코어는 현대건설기계가 안착하지 못한 굴삭기 엔진 생산에서 압도적인 기술력과 R&D를 보유하고 있기 때문에, KDB인베 지원이 없었더라도 자체적으로도 욕심을 냈을 상황인데 왜 산업은행이 스스로 나서서 특혜 논란을 만들었는지 이해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차준호 기자 chacha@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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