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는 어떻게 먹이사슬 정점을 장악했나[여기는 논설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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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2020-10-20 09:30  

정치는 어떻게 먹이사슬 정점을 장악했나[여기는 논설실]


먹이사슬은 생태계를 유지하는 기본 골격이고, 균형적 구조다. 광합성을 하는 식물부터 최상의 육식 포식자까지 먹고 먹히는 관계이지만 나름의 질서 속에 천적도 있다. ‘사회적 먹이 사슬’로 우리 사회를 보면 어떻게 될까. ‘옵티머스 스캔들’과 ‘라임 스캔들’이라는 게이트 급 양대 비리 사건에서 우리사회 내부의 먹이사슬 구조를 생각해보게 된다.
정치가 ‘게이트’에 통하는 현실
유감스럽게도 제일 꼭대기를 점하고 있는 최상위 포식자는 ‘정치’다. ‘여권의 핵심 실세’와 ‘여의도 권력’을 보호막으로 동원하려는 두 스캔들의 질 나쁜 시도부터가 그렇다. 수단과 방법 구별도 없다는 식이다. 바람막이 차원을 넘어, 아예 불법행위를 밀어붙이는 방패쯤으로 삼았다는 의심을 하게 한다. ‘게이트’형 비리 스캔들이 불거질 때면 늘 나오는 비호 리스트는 신흥권력의 부침 정도를 확인하게 할 정도일 뿐이다.

문제는 이런 게 아직도 통한다는 사실이다. 정치권의 이른바 실세들은 어엿한 국가기관과 공공기관, 공직사회를 주무른다. 때로는 은밀하게, 때로는 노골적이다. 가령 인사와 승진, 인맥과 연줄을 매개로 한 개입과 압력이라면 전자일 것이고, 국정감사장과 자료요구 같은 방식의 후자도 잦다.

금융감독원처럼 금융회사에게는 저승사자 같은 기관도 이런 정치적 압력과 간섭에 충분히 흔들렸다. 예전에는 국세청이나 검경, 공정거래위원회 같은 기관도 그렇게 휘둘렸다. 입법권, 국정조사권 같은 합법적 권한은 그렇게 오용되고 남용될 때가 많았다.

그런데 아직도 변하지 않은 것이다. 불편한 진실, 가려진 철칙, 숨은 사실이다. 정치가 예나 지금이나 이렇게 마지막 포식자로 발호할 수 있는 근본 요인은 무엇인가. 무엇보다 정치권의 ‘힘’ ‘권력’이 너무 세다.
사법·행정부까지 좌지우지
입법권이 대표적이다. 입법권은 본질적으로 의회(국회)에 속하는 것이기는 하지만, 법을 만드는 프로세서도 매우 중요하다. 민주적 절차, 합리적 공론화, 이성적 검증 장치가 있어야 한다.

하지만 한국 국회에서 규제법 하나 만들기 정도는 식은 죽 먹기다. 법 만능에 사회 모든 분야에서 규제투성이인 ‘관치·규제 공화국’에서 정치가 ‘갑(甲)중의 갑’이 되는 것은 아주 자연스런 현상이다.

여의도에서도 어디서도 법 만능인 사회이면서 준법정신은 바닥이다. 정치인들은 이런 저런 의혹에 연루되고 법위반 논란에 휩싸여도 무죄 되는 경우가 많다.

사회의 기본 중의 기본인 ‘법치’ 위에 정치가 있는 꼴이다. 이렇게 된다는 정치바람에 휘둘리고, 법정을 지키기보다 정치권으로 변신하려는 법관들이 적지 않은 법조계 스스로의 책임도 적지 않다.

인사도 중요한 요인이다. 정치권력이 공무원들 인사를 좌우하고, 삼권분립이라는 사법부 인사에도 큰 영향을 미친다.

‘어공(어쩌다 공무원)’이 ‘늘공(늘 공무원, 직업공무원)’ 인사를 좌우한다. 대통령은 물론 국회에 있는 인사 추천·제청권과 임명 동의권은 현실적으로 무섭다.

공무원들은 장·차관, 1,2,3급 등으로 퇴직 때 직급에 따라 낙하산 등으로 갈 수 있는 자리의 등급 자체가 달라진다. 거대한 공기업 사장이나 은행 등 금융기관·금융회사의 장으로 가느냐, 단순히 임원·직원으로 가느냐, 아예 한직으로 가느냐에 따라 인생 2모작의 신분과 수입 자체가 달라진다.

정치권 말 잘 듣지 않고, 쓴 소리나 해대다가 아예 몰락한 이들도 적지 않다. 늘공들이 보는 ‘공직 내 최상위 포식자’그룹은 사회적으로도 그대로다.

사법부나 검찰 등에서도 별반 다르지 않다. 이른바 법조계에는 그들 내부의 ‘리그 논리’가 있다.

“대법관 하고 퇴임하면 도장 값으로 100억원은 번다”는 법조계 내부의 말이 영 근거 없는 말 같지가 않다. 도장 찍어주기, 즉 수임 변호사로 이름을 올리는 것만으로도 이 정도의 보상이 보장될 정도로 전관예우가 만연했던 것이다.

‘전관예우 근절’은 과거 정부 때도 자주 나온 구호지만 현실은 어떤가. 검찰도 마찬가지다. 평검사, 부장검사와 달리 검사장을 단 뒤에 변호사 개업을 하거나 로펌에 들어가면 몸값이 달라진다.

검사는 직급뿐 아니라, 어디서 어떤 업무를 했는가도 평판과 ‘스펙’에 결정적 요인이다. 법률적 지식이나 판단 능력은 쉽게 가름이 안 되고, 전국에 몇 십 명뿐인 검사장의 희소성은 있다. 대법원장 임명부터 대법관 임명과 동의까지, 검찰총장부터 검사들 승진과 보직인사까지 모두 정치의 영향을 받는다.
결국은 유권자의 선택
사회 각 부문, 특히 전 분야 공직에서의 독립된 인사는 시급하지만 정치권력은 스스로의 존재 기반이자 현실적 파워인 이 권한을 쉽게 내놓지 않는다. 선출 권력이라는 게 본질적으로 무섭기는 하다. 다만 선출권력을 어떻게 써야 하는지가 중요한데, 이런 것까지 얘기하자면 민주주의와 민주정치에 대한 정치학 개론 수준으로 떨어질 것만 같다.

정치권 스스로 변해야 한다는 당위론이나 도덕적 관점도 연목구어다. 결국 유권자들의 선택으로 근본 문제는 귀결된다.

국민들 수준대로 정치인들은 행동하는 것이다. 그래서 “국민들은 위대한데, 유권자는 선한데, 정치인이 문제”라는 식의 말은 넌센스다. 판단력 없는 국민이 문제이고, 쉽게 선택한 유권자들이 근본 문제인 것이다.

그렇게 ‘적폐청산’을 외쳐놓고서도 ‘신(新)국기문란’이라 할 만한 게이트들이 몰아 터지는 것 보면 정치개혁은커녕 이런 식으로는 장기화되고 있는 눈앞에서 펼쳐지는 심각한 복합불황의 극복도 멀어질 뿐이다. 정치, 저급한 정치가 거듭 문제인 것이다.

허원순 논설위원 huhws@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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